등록 2026.02.19 12:06수정 2026.02.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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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일 오전 8시 35분]
"아버님, 어머님, 이번 설에는 용돈을 많이 못 챙겨드릴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아무 걱정 말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조심히 내려오너라. 엄마, 아빠가 다 준비할테니께!"
결혼생활 19년 동안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녔고, 나는 언어재활 전문가로 맞벌이를 했기 때문이다. 재작년 첫째의 학교폭력으로 퇴사를 하면서 외벌이가 되었다. 퇴직금과 실업금여가 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실업급여 마지막 달이 되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편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1월 급여가 미지급되었고, 그에 따라 설보너스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상금에서 생활비를 꺼내 써야 하는 상황에서 세뱃돈과 부모님 드릴 용돈이 부담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우리집 경제 사정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최소한의 경비로 설을 지내기로 했다. 세뱃돈은 줄었지만, 정성과 마음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었기에 최대한 봉투에 사랑을 담아서 준비했다.
설 당일, 옹기종기 모여 세배를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은행 봉투에 금일봉을 담아 내밀었다. 남편은 내가 준비한 100억 자기앞 수표 봉투를 부끄러운 듯 부모님께 드렸다. 시부모님은 봉투를 보자마자 와하하 웃으며 좋아하셨다. 아이들에게도 '행운가득, 마음가득' 봉투에 메모를 해서 세뱃돈을 주었다. 아이들도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며 고맙게 받았다.

▲ 시부모님과 조카들 세뱃돈 봉투
박이연
직장을 다니면서부터 부모님께 세뱃돈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시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매년 세뱃돈을 주셨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이날도 다 큰 자식들에게 이름을 꾹꾹 눌러 쓴 봉투에 덕담과 사랑을 담아 한 장씩 건넸다. 봉투를 받아 든 우리는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했다. 곧이어 시어머니가 내게 두둑한 봉투 한 장을 더 내밀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이내 참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시부모님은 LA갈비, 소불고기를 양념에 재어놓고, 소갈비살과 꼬막, 홍어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갖가지 나물은 덤이었다. 78세의 시어머니와 82세의 시아버지 두 분이 명절 준비를 마치고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감사하게 준비된 것들을 차리고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먹기만 했을 뿐인데도 나는 너무 피곤했다. 상을 정리하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둘째, 셋째 시누이들이 도맡아 해주었다. 시부모님과 시누이들의 배려로 나는 이번 명절에 온전히 쉴 수가 있었다. 덕분에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모든 남매가 모여있는 마지막 날, 우리는 시부모님의 은퇴식을 준비했다. 지난해 6월, 모내기 날짜를 묻는 질문에 시어머니가 말했다.
"이제 농사 안 할 거여. 안 내려와도 돼."
"엄마, 그럼 우리는 뭐 먹고 산 단가?"
"이제 쌀 사다 먹어."
시어머니와 셋째 시누이의 카카오톡 대화였다. 시부모님은 농사 은퇴를 선언했다. 결혼 후 매년 모내기 철마다 온 가족이 모여 농사일을 도왔었다. 이제는 현충일에 온전히 개인 일정을 가질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허탈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60평생 농사를 지어온 시부모님의 마음은 어떨까.
늦여름, 주요 농작물인 양파와 마늘 수확을 끝으로 시부모님 소유의 땅들도 휴지기에 접어들었다. 결혼하고 시부모님이 보내준 쌀, 양파, 마늘, 고춧가루, 참기름 등의 질좋은 농산물들로 아이들도 우리도 모두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시부모님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세 명의 시누이들과 조촐한 은퇴식을 하기로 했다. 시부모님이 평생을 바친 논과 밭에서 은퇴식을 하고 싶었지만, 논밭은 황량하고 추웠다. 그래서 따뜻한 집에서 작은 파티를 하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부모님의 정직한 노력의 결실들을 보자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 시부모님의 농사 은퇴식
박이연
2박 3일의 일정이 끝나고 상경을 준비하고 있었다. 역시나 시부모님은 트렁크 한가득 먹거리들을 꽉꽉 채워 주었다. 나는 무엇을 주셨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먹거리를 배분할 때도 나는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자본적이 없는데, 자꾸만 잠이 쏟아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깨우거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시골에서 별들이 우리를 향해 빛을 비추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는 계속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잘 먹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내려올게요."
인사를 하는 찰나에 내 코트 주머니에 무엇인가가 쑥 들어왔다. 화들짝 놀라 쳐다보니 시아버지였다.
"아버님, 이게 뭐예요?"
"별것 아니다. 고생했다. 조심히 가라."
급하게 인사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서울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내 왼쪽 주머니에는 두둑한 봉투가 반으로 접혀 있었다. 너무 궁금했지만, 차 안에서 꺼내볼 수 없었다. 집으로 오는 6시간 내내 궁금증을 참고, 짐 정리를 마치고, 모두가 자러 간 그 시간 나는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5만 원짜리 20장. 시어머니가 주신 봉투에도 5만 원짜리 12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며느리'라고 적혀있는 세뱃돈으로 10만 원. 시부모님은 남편이 아닌 며느리인 내게 두 분 모두 금일봉을 주셨다. 돈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아가, 걱정하지 말아라. 다 잘될 것 잉께. 엄마, 아빠가 있잖니!'

▲ 시부모님의 금일봉과 세뱃돈
박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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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예요?" 시아버지가 몰래 넣어준 봉투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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