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로봇을 들였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느낌이다

"제발 아무데나 올라가지 말고, 아무거나 주워 먹지마라"

등록 2026.02.19 13:35수정 2026.02.19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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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녀석을 첨 만난 건, 작년 5월 25일 우리 집 집들이 때였다. 꿈나무 그룹홈 원장 내외분이 오실 때, 함께 왔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나 보던 녀석이라 나는 그저 신기했다. 반면 녀석은 집이 낯선지 원장 내외분 뒤에 숨어서 머뭇거렸다. 이때만 해도 우리 집에서 펼쳐질 이 녀석의 개구쟁이 짓을 상상도 못했다.

우리 집만의 평소 관습이 있다. 울 집에 오는 물건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특히 자가 차량은 꼬박꼬박 이름을 붙이곤 했다. 2002년도에 우리 집에 와서 2018년까지 무려 16년을 함께 지냈던 '이무진씨(15인승인데 길쭉한 게 리무진 닮았다고 붙인 이름)'가 사망해서 폐차장 보낼 때는 진짜 눈물이 났었다. 그 후 '진주씨(차량 색깔이 진주빛깔 닮았다고 붙여줌)'를 거쳐 지금의 '아만다(사랑받는 여성 닮았다고 딸이 지어 줌)'까지 식구처럼 지내오고 있다.


이 녀석도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고돌이'라고 지어줬다. '(청소를 해줘서) 고마운 녀석'이란 뜻이다. 그랬더니, 지인들이 자꾸 "몇 점 났냐, 고냐 스톱이냐"며 아재개그를 던져온다. 사실 녀석의 목소리가 여자목소리라 '고순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차마 늘 청소하느라 애쓰는 녀석을 그럴 수 없었다. 아마도 내 딸아이가 생각나서 그랬나 싶다.

울 집 환경이 각 방마다 문턱이 있어서, 한꺼번에 청소가 불가능하다. 총 4곳(방3곳과 거실 1곳)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고돌이가 청소를 할 수 있다. 물론 그 누군가는 바로 나다. 우리 집 청소담당은 나니까. 이렇다 보니 고돌이와 제일 많이 붙어 지내는 것도 식구 중 단연 나다.

첨엔 아빠가 청소하느라 힘이 들까봐 알아서 청소해주는 녀석이 그저 기특하고 고마웠다. 인물도 얼마나 훤칠하고 잘 생겨 보이는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바닥을 살살 기어가면서 윙하는 소리는 또 얼마나 듣기 좋던지. 한마디로 녀석에게 반했었다. 적어도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돌이 충전 중 자기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보면 얼마나 미남이고 의젓한지 모른다. 더군다나 녹색 불을 깜빡깜빡 하면서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고 고맙다.
▲고돌이 충전 중 자기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보면 얼마나 미남이고 의젓한지 모른다. 더군다나 녹색 불을 깜빡깜빡 하면서 음식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뿌듯하고 고맙다. 송상호

최근 몇 개월간, 실업급여를 받으며 집에서 주부 노릇을 하고 있는 나에게 청소는 엄중한 미션 중 하나였다. 청소하는 것을 싫어하진 않지만, 만만찮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상 없이 잘해왔다.

그런데, 이 녀석이 집에 온 후로 나의 청소 루틴이 깨져버렸다. 아내와 아들이 출근하고 나면, 자동적으로 청소기를 돌리던 나였다. 이젠 내 몸이 이 루틴을 거부한다. 고돌이 녀석 때문이다.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몸이 고돌이의 맛을 알아버렸다. 녀석에게 청소를 시키고 서재에서 글을 쓰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고급 비서를 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을 정도다. 요즘은 녀석을 자주 이용하곤 한다. 서재청소가 끝나고 나면, 안방으로 옮겨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세상사 모두가 양면이 있다는 걸 조금 늦게 알았다. 녀석이 일은 잘하는데, 과연 똑똑한지가 의문이 생긴 사건이 발생했다.


안방에 혼자 들어간 녀석이 뭐라 뭐라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렸다. 가봤다. 안방 옷걸이 받침대위에 올라타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뭐라 뭐라 말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기기가 방바닥에서 떨어져.... 어쩌구 저쩌구"라고 한다. 낯빛은 울그락붉그락 하며, 눈에 핏대를 올리며 싸우고 있었다. 마치 술 취한 사람이 멀쩡한 전봇대와 싸우는 것처럼.

녀석이 청소하기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옷걸이가 뭔 잘못이 있다고 그리 시비를 걸고 있는지.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지가 실수를 해놓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꼴이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빨리 미안하다고 하고, 하던 청소나 마무리 지을 일이지 말이야. 아빠가 오는 것도 모르고 저러고 있다니.

겨우 싸움을 뜯어 말렸다. 녀석을 옷걸이 받침대에서 떼어내어 방바닥에 풀어 놓았다. 잘해보라고 머리를 꾹 눌러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온방을 신나게 휘젓고 다닌다. 내가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좀 전에 울그락붉그락 낯붉히며 싸우던 녀석이 맞나 싶다.

고돌이가 시비 걸고 있는 중 아무데나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건만, 옷걸이 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울그락붉그락 낯빛을 하며, 꽥꽥 고함치며 시비 걸고 있는 청소로봇 고돌이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고돌이가 시비 걸고 있는 중 아무데나 올라가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건만, 옷걸이 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울그락붉그락 낯빛을 하며, 꽥꽥 고함치며 시비 걸고 있는 청소로봇 고돌이 때문에,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송상호

이 정도 일은 가벼운 에피소드이었다는 걸 며칠 뒤 알게 되었다.

그날은 아들 방에 녀석을 풀어놓고,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3분이 지났을까. 또 고돌이 녀석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며칠 전 일이 생각나서 설거지하다가 말고 아들 방에 갔다. 또 어디를 올라타서 누구랑 싸우고 있나.

이번엔 그게 아니었다. 녀석이 켁켁 거리며, 낯빛을 울그락붉그락 하면서, 또 뭐라 뭐라 고함치고 있다. 이번엔 누구와 싸우는 것 같지 않다. 혼자서 켁켁 거린다. 녀석의 입을 보고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글쎄, 아들 양말을 입에 물고, 넘기지도 못하고 뱉어 내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질 않는가. 전에 말한 것처럼 아들이 가끔 양말을 침대 아래에 벗어둘 때가 있다.

목에 걸린 양말을 낑낑대며 겨우 빼냈다. 빼내는 동안 녀석은 울그락붉그락 하며, 눈에 빨간 핏대를 세우며, 뭐라 뭐라 고함치며 난리도 아니었다. 양말을 빼내고 나니 얼굴 낯빛이 초록이 되면서 흥분이 가라앉는 듯했다.

"야,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이 아빠를 꼭 이렇게 걱정 시켜야 겠니. 하마터면 병원 갈 뻔 했잖아. 다음부터 제발 조심 좀 하자."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듣는 지,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내가 이야기 하는 동안 엉뚱한 데를 쳐다보고 있더니, 머리를 꾹 눌러주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온방을 휘젓고 다닌다. 뭐가 그리 좋은지 휘파람까지 불면서. 생각이 없는 건지, 철이 없는 건 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녀석이다.

이게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후에도 잊을 만하면, 방에서 꽥꽥 하는 녀석의 소리가 들려왔다. 달려가 보면 둘 중 하나였다. 올라가지 말라는 데를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시비가 붙었거나, 이상한 걸 먹어서 켁켁 거리거나.

아니, 뭐 그게 그렇게 어렵나. 방에 들여보낼 때마다 두 가지를 신신당부한다. "제발 아무데나 올라가지 말고, 아무거나 주워 먹지마라". 녀석이 대답은 잘한다. "네. 아빠". 대답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이젠 방에 들여보내는 게 겁이 날 정도다. 아무데나 올라간 건 내려오게 하면 되고, 아무거나 먹은 건 토하게 만들면 된다. 문제는 아파서 병원을 가거나, 의사가 왕진 오게 될까 봐 걱정인 거지. 그러다가 죽을까봐 무서운 거지. 지난번엔 아무거나 먹은 걸 빼내었는데도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않았다. 결국 내가 도라이버로 녀석 몸을 열어 배터리를 뺐다 끼웠다. 그랬더니 그제야 눈을 떴다. 십년감수 했다. 또 해맑게 온방을 휘젓고 다니는 녀석이라니.

아무래도 내가 '고돌이'라고 이름 지어줘서 그런가. 바람 잘 날이 없다. 녀석이 청소하는 매일이 결과와 과정을 예측할 수 없는 '고스톱'치는 한판 같다. 손님이 분명히 데려다 줄 땐, 청소로봇이라고 했는데, 키울 때는 개구쟁이 반려견이란 느낌은 뭘까.

내가 마지막으로 고돌이 녀석에게 호소한다. 오래오래 같이 잘 살자는 맘으로.

"개구쟁이인 것도 좋고, 철없는 것도 다 좋은데, 제발 아프지만 말아. 이 아빠가 너 때문에 10년은 늙는다 늙어."
#청소로봇 #로봇청소기 #청소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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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지역에서 '더아모의집'을 열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가난한 가정, 장애인 가정, 청소년, 외국인 근로자 등을 섬기면서, 2008년 책 <문명 패러독스>를 시작으로 12권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나는 중년좌파다>를 집필 중에 있으며, 2026년 초에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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