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2.20 14:21수정 2026.02.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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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했던 며칠이 지나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명절이 돌아오면 딸들 가족은 서로 의견 조율을 하고 겹치지 않게 군산에 내려온다. 일 년 중 자녀들을 만나는 가장 기쁜 날, 반갑기도 하지만 이젠 살짝 긴장이 되고 신경이 쓰인다. 우리도 명절 문화를 바꿔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까지 음식 준비하는 일이 불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작년과는 다른 느낌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이라는 세월의 무게는 속이지 못함을 알게 된다. 명절을 보내려면 장보기부터 시작이다. 가족이지만 입맛이 제각각이라서 가족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좋아하는 식재료를 사야 한다. 명절이 돌아오면 재래시장에 가야 명절답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것도 사람 사는 재미다.
사실은 장 보기가 두렵다. 물가가 너무 올라 장 보는 일이 멈칫거린다.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생선도 야채도 모든 물가가 올랐다.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 하기에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겹다. 지난여름 남편이 운전면허를 반납하고 나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택시 타기도 애매한 거리다.
차도 없어지고 나이 많은 남편의 도움도 이젠 바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90이 다 되어가는 남편은 올해부터 집안일에 손을 놓고 무심하다. 그렇다고 야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신 몸 잘 챙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 때문이다.
일 년 사이 바뀌어진 우리 집 변화를 실감한다. 어쩌겠는가. 세상도 변하고 삶의 형태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직시하고 변화에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이건 아니라고 거부해도 소용없는 현실이다. 지금은 모든 걸 사람을 대신해 AI가 해준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이다. 이처럼 변화하는 세상에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이 두렵다
설 명절은 우리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민족의 축제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하고 시대도 변하면서 예전과는 다른 쓸쓸한 풍경이 마음을 시리게 한다. 가족 전체가 모이던 풍습은 서로 불편함 때문에 단출하게 자기 가족끼리 모이거나 아니면 해외여행을 가고 떠들썩하던 명절의 모습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 집안만 해도 큰댁 부부가 세상을 뜨시고 달라졌다. 온 가족이 모여 세배하고 덕담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윷놀이 하던 화기애애한 풍습이 사라졌다. 형제도 만나지 않고 각자 가족들끼리 산소에만 다녀가고 따뜻하고 훈훈했던 예전 모습이 모두 사라진 지금, 너무 쓸쓸하고 마음 한 편이 시려온다.
그때는 몰랐던 그 시절 그 추억이 눈물 나게 그립다. 너나 할 것 없이 불편을 줄이고 온 가족이 만나던 정겹던 문화는 사라진다. 이젠 친척이란 개념도 잊고 사는 세상이 오지 않을지.. 부모가 돌아가시면 형제조차 만나지 않고 사는 건 아닐지, 참 허망하다.
우리 집도 딸들 가족이 함께 모이면 잠자리며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어 릴레이 방식으로 친정인 우리 집을 찾아온다. 맨 먼저 둘째 딸이 찾아와 반가운 마음에 전이라도 같이 붙이자고 했으나 "엄마, 나 전 부치려고 일찍 온 게 아니거든요. 엄마 아빠랑 맛있는 것 먹고 놀려고 일찍 왔어요." 그 말을 듣고 그 말이 맞다 싶어 일을 시키지도 못하겠다.

▲ 소고기 야채 샐러드
이숙자

▲ 오징어 리조또
이숙자
겨울 동안 집안에만 있던 남편과 셋이 오랜만에 은파호수공원 산책 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 같으면 일이 있으면 쉬지 못하고 해야 하는데 나도 이젠 느긋해져 그래 내일 손자랑 사위랑 오면 하려는 마음으로 쉬었다. 이젠 무리하면 몸이 신호를 보낸다.
옛날 같으면 며느리에게 밥 얻어먹을 나이지만 지금은 어림없는 소리다. 현실은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다음날 둘째 사위와 손자가 와서 함께 전을 부쳤다. 손자가 생전 처음으로 전을 부치면 하는 말, 재미있는데요. "그래, 전을 부쳐야 명절 기분이 나지." 노부부만 살던 집은 가족이 모이고 사람 소리에 활기가 돈다. 다음 날은 시부모님 산소도 가고 남편의 추억을 찾아 청암산도 가고 사위 좋아하는 럭셔리한 레스토랑 가서 점심도 먹고 여유를 부린다.
먼저 온 둘째네 짐 챙겨 보내고 나니 다음 팀은 셋째 딸네 가족 손자들이 왔다. 몇 달 사이 얼마나 자랐는지 아주 의젓한 모습에 반갑다. 그다음 날은 막내딸과 사위가 먹을 것 준비를 해서 왔다. 남편 좋아하는 연어를 잔뜩 진공 포장해서 매일 드시라고 가져오고 조카들과 우리 장어 초밥에 스파게티 준비까지, 세프 막내 사위 때문에 입 호강을 한다. 차 없는 우릴 위해 큰 마트도 가서 생필품도 사다가 주고 집에서 막내 사위가 해준 스파게티가 레스토랑 맛과 다르지 않다.
다음 날 먹을 것 죄다 싸서 보냈다. 나물부터 마른 생선, 전 부친 것도.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은 어미 마음은 어느 누구라도 똑같을 것이다. 이마저도 우리 세대가 세상을 뜨면 이어질지 그게 궁금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게 우리들의 삶일 것이다. 변했다고 말하는 지금이 그나마 눈물 나게 고맙고 감사하다.
모두 다녀가 집안은 고요만 맴돈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과 차 한잔 우려 마시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김광균의 '설야' 에 나오는 시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그래도 당신이 곁에 계셔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울 수 있어 이 얼마나 감사한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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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보내면서... 나이 들며 느끼는 명절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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