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도 도시의 불빛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학원 셔틀버스가 골목을 오가고, 부모는 결제 문자를 보며 한숨을 쉰다. 초등학생 학원비가 월 100만 원을 넘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시대다.
통계는 더 냉정하다. 2024년 우리나라 초·중·고교생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 원에 달한다. 10년 전보다 60% 넘게 늘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학생 수는 18%가량 줄었다.
아이는 줄었는데 지출은 크게 늘어난 셈이다. 이 현상은 단순히 "교육열이 높아서"라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가계로 돌아온다. 사교육비는 가정에서 가장 부담이 큰 지출 항목 중 하나다. 그만큼 소비 여력은 줄어든다. 부모 세대는 노후 준비를 미루고, 젊은 부부는 둘째 아이를 망설인다.
사교육 격차는 학군지 집중으로 이어지고, 집값 격차는 다시 지역 격차를 키운다. 학력 격차가 경제 격차로 굳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저출생과 저성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사교육을 억누를 것인가, 아니면 구조를 바꿀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전쟁이 아니라 전환이다.
첫째, 공교육을 더 정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많은 학부모가 학원을 찾는 이유는 "학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불안 때문이다. 공교육이 평균적인 수업을 넘어, 아이 한 명 한 명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맞춤형으로 보완해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기반 맞춤학습 시스템을 도입해 기초 반복 학습은 학교 안에서 충분히 해결하고, 교사는 토론·탐구·프로젝트 수업에 집중하도록 역할을 재설계해야 한다. 아이의 학습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성장 과정이 보인다면, 학원에 대한 의존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둘째,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접근 대신 방향을 바꿔야 한다. 사교육에는 이미 많은 인력과 콘텐츠가 축적돼 있다. 이를 배제하기보다 공교육과 연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수한 민간 강의와 에듀테크 콘텐츠를 공공 플랫폼에 연계해 학교와 협력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구조를 완화하고, 질 중심 체계로 재편하는 것이다. 시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공적 목표 안으로 재배치하는 일이다.
셋째, 돌봄과 예체능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 맞벌이 가구에게 학원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돌봄 공간이다. 이 현실을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은 줄지 않는다. 학교를 방과 후에도 운영되는 AI·코딩·예체능 허브로 전환해 실습 중심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교사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정규 수업 이후 프로그램은 전담 인력과 외부 전문 인력이 맡고, 교사는 수업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반복적인 행정 업무는 AI 시스템으로 줄여 교사의 전문성을 보호해야 한다.
넷째,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 암기 중심 시험이 유지되는 한 문제풀이 사교육은 사라지지 않는다. AI를 활용해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서술형과 프로젝트 기반 평가를 확대하고, 대학 선발도 문제 해결 역량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시험이 바뀌면 공부 방식이 바뀌고, 공부 방식이 바뀌면 사교육 구조도 달라진다.
이 개혁은 교육 정책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제 전략이다. 지금처럼 왜곡된 경쟁에 쓰이는 거대한 교육 비용의 흐름을 바꾸어 가계의 가처분 소득과 미래 산업 투자로 돌릴 수 있다면, 한국 경제는 1%대 저성장의 구조적 관성을 깨고 3% 성장의 잠재력을 회복할 수 있다.
소비가 살아나면 소상공인이 숨을 쉬고, 지역 경제가 회복된다. 부모의 불안이 줄어들면 출산 결정도 달라질 수 있다.
AI 시대에 교육은 더 이상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생산성과 직결된 성장 엔진이다. 사교육과의 전쟁은 또 다른 갈등과 비용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구조적 전환은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교육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결국 대한민국의 성장 경로를 바꾸는 일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설계다. 그 전환이 시작될 때, 교육은 부담이 아니라 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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