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허용여부를 둘러싼 여야의 대립이 고조된 가운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찬반입장도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말미암아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당했을 때 당사자인 국민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기본권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를 말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공권력'에는 국가의 모든 권력작용 즉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이 모두 포함된다. 말하자면, 헌법소원제도의 본질은 국가권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됐을 때 이를 구제하는 방편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행 헌법소원제도는 입법권이나 행정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만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사법권(법원의 재판)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핵심논거에 대해서만 간략히 살펴본다.
첫째, 대법원은 헌법 제101조에서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제1항), "법원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법원으로 조직된다"(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4심제가 되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제1항의 규정은 '(입법권이 국회에, 행정권이 정부에 속하듯이) 사법권이 법원에 속한다'는 권력분립의 원리를 천명하는 취지일 뿐이고, 제2항은 대법원이 '법원조직 중에 최고법원'이라는 뜻이지 헌법재판소에 대해서까지 최고법원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법원, 헌법재판소에 관한 규정을 각기 제5장, 제6장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체계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석이다.
둘째, 대법원은 "재판소원을 허용하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고 입법(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개정)으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다"라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을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으로 명시하면서 헌법소원의 내용·절차 등에 관한 사항을 모두 법률에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법원의 위헌 주장은 중대한 논리적 결함이 있고, 대법원의 주장내용 자체가 오히려 위헌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리 헌법은 제2장(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27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재판'에는 모든 법적 쟁송 즉 '법원(제5장)에 의한 재판'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제6장)에 의한 재판'이 모두 포함된다고 할 것이므로 재판소원 불허는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입법권·행정권의 작용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허용하면서 유독 사법권의 작용에 대해서만 헌법소원을 불허하는 것은 사법권(재판)을 치외법권의 영역에 둠으로써 법치주의(법의 지배)에 대한 커다란 예외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미국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남긴 명언 중에 "어떤 곳이든 부정의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디에서든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라는 말이 있다. 인권 보호에 사각지대(blind spot)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큰 선박이라 하더라도 작은 틈(chasm)이나 구멍(hole)이 있으면 결국 그 선박은 항해 중에 기필코 침몰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인권 보호의 법적 장치에 사각지대나 작은 틈 또는 구멍이라도 있으면 인권 보호는 실패하고 사회 전반에 인권 침해가 만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권 보호의 법적 장치는 완벽해야 한다. 바라건대, 대법원은 기존의 불합리한 주장을 내려놓고 재판소원 허용을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대법원이 국민의 인권 보호에 기여하는 참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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