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면
㈜쇼박스
개인적으로 제19대 군왕인 숙종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극단적 정권교체인 '환국'과 여성 문제 등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왕이었지만,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단종을 복권시키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1698년에 단종과 왕후 송씨의 위호를 회복시켰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 신하의 관직도 회복시켰다. 단종의 무덤도 '장릉'으로 정비됐으며, <노산군일기>도 <단종실록>으로 바뀌었다.
숙종은 나름대로 유교적 도덕 질서를 재정비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동기도 있었다. 당시 정치권의 주류 세력이었던 서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서인의 본류는 사림으로, 이들은 세조의 친위 세력이었던 훈구파와 대립하며 성장했다. 일찍이 세조 집권의 정통성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단종의 복권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중종 등 이전 군왕들의 시대에는 완수될 수 없었던 숙원 사업이 숙종을 만나서야 비로소 완수될 수 있었다. 다만 한계점도 있었다. 숙종은 세조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세조를 부정할 경우, (세조의 혈통인) 이후 군왕들의 정통성이 모두 부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숙종 대에서 시작된 단종 복권 운동은 영정조 시대 등에도 계속됐다. 그러면서 단종은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완전히 되살아났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는 단종을 기리는 문화제가 많이 열리고 있고, 각종 매체에서 단종 관련한 프로그램들을 내보내고 있다. 반면 수양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기억한다. 수양의 정치적 업적이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은 망각할 따름이다. 사람들은 업적보다 정의의 가치를 훨씬 중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단종은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그렇기에 단종은 더 이상 불행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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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겸 기자.
저서로 '전쟁의 역사', '정변의 역사', '암살의 역사', '숙청의 역사-세계사편', '숙청의 역사-한국사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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