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엄마의 새해 첫 도전, 성공 끝에 얻은 것

30일 독서 챌린지로 읽은 <달과 6펜스>... 오롯이 '나를 위해 쓰는 시간'

등록 2026.02.23 09:24수정 2026.02.2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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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생일 선물로 현금 5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잊어버릴 즈음 건네받은 거였다. 그 돈은 남편이 단 며칠 만에 주식으로 벌어 들인 돈이었다. 투자한 금액이 딱 5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났을 때 바로 팔았고, 그렇게 선물을 마련했다고.

기뻤다. 남편은 그 돈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쓰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위해 미용실도 가고, 화장품도 사고, 옷도 사고, 신발도 사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 돈을 나를 위해 단 한 푼도 쓰지 못했다.


고기도 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했던가. 엄마가 된 이후로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소비를 해 본 적 없던 나는 대부분 우리 가족의 식비로 그 돈을 썼고, 그 외에 아이의 기저귀, 물티슈 등과 같은 생필품 구매에 사용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후회라는 감정이 밀려 들긴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써 버린 돈을 다시 생기게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나를 위해 시작한 일

1월 한 달간 기록했던 독서 후기 독서 인증과 후기라는 미션이 있었기에, 완독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1월 한 달간 기록했던 독서 후기 독서 인증과 후기라는 미션이 있었기에, 완독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박정은

그런 내가 지난 1월, 새해를 맞으며 평소와 좀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해 보자' 물론 나를 위해 꾸준히 글을 써오긴 했다. 막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약 2년 전부터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수필 쓰는 법을 배웠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본 글들이 대부분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찼지만, 그것은 나를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가족을 빼고서 나를 논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무언가 오롯이 나를 위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그때 눈에 띄었던 것이,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날아온 광고 문구였다.

"1만 명이 함께하는 독서챌린지. 건강한 독서 습관을 만드는 30일간의 도전."


나에게 '도전'이라는 단어는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구수한 방앗간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독서, 책을 읽는 일이다. 혹자는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기만 하면, 다른 어떤 것을 다 제쳐두고도 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10년이 훌쩍 넘는 육아의 시기를 지나오며, 좋아함이 모든 것의 1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지금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일 앞에서, 나의 좋아함 또는 즐거움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세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는 결코 느긋하게 그 즐거움을 맛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고, 손이 덜 간다고 해도 나의 즐거움보다 더 먼저 해치워야 하는 일들이 나의 독서를 언제나 가로막았다. 나를 위해 돈을 쓸 줄 모르는 것처럼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은 사치요, 낭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 건강한 마음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겨울철 각질처럼 자리 잡은 병든 마음은 좀처럼 완전히 제거되지 못했다.

그렇게 2026년 새해가 밝았다. 도전 의지를 자극하는 그 챌린지를 신청했다. 전혀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30일이라는 여정 동안 성실히 책을 읽고, 인증 사진을 올리고, 독서 후기를 작성해야 하는데 과연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공연히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내 모습에 실망만 더 얹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함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이 될 때마다 자꾸만 광고가 눈앞에 떠올랐다. '잘 모르겠어'라고 고개를 돌렸다가 '해 볼까?'라는 마음으로 다시 들여다보기를 수차례.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작성한 것이다. 그때 읽을 책을 선정하라는 안내에 책상 위, 가장 내 손에 가까운 책을 집어 들었다. 최근 아들이 읽었던 고전(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이었다. 언젠가 읽어야지, 마음만 먹고 좀처럼 펼치지 못했던 꽤 두꺼운 책이었다.

한 달간 나는 그 책을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눌러 앉아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세 아이의 방학에 삼시세끼 밥상을 차려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야금야금 읽을 때마다 읽은 페이지의 인증 사진과 함께 짧은 후기를 써냈다. 16편의 후기가 쌓였고, 한 달에 1권을 정독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나를 잘 돌보는 마음

독서챌린지 참가 후 받은 선물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2판 8쇄본과 키링, 책갈피
▲독서챌린지 참가 후 받은 선물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2판 8쇄본과 키링, 책갈피 박정은

다독하고 속독하는 이들에게 이 결과가 하찮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로서는 꽤 의미 있는 결과물이었다. 한 권의 책을 그 의미를 생각하며 진득하게 읽어낸 일이 최근에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았고, 다른 책을 기웃거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챌린지 중이라는 인식이 언제나 나로 하여금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기어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신청자 만 명 중 천 명에게 챌린지 리워드 당첨의 행운이 주어질 거라고 했다. 유명 작가(이슬아 작가)의 저서와 두 가지의 굿즈가 전달되는 것이었는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나를 위한 도전'에 의의를 두었고 '완독'을 목표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리워드 당첨'까지 되는 기쁜 일이 발생했다.

그 선물이 도착했다. 이슬아 작가의 책과 굿즈를 이리저리 살피는 내 입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이제 나는 '나를 위해 시간을 써 본 적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한 번 멋지게 성공해 보았으니, 다음에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삶의 유의미함을 발견하도록 돕는 이런 시도들이 더 자주, 더 많은 곳에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소비가 더 이상 사치로만 느껴지지 않기를. 나를 잘 돌볼 때, 가족이나 이웃을 더 온전히 돌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더 믿어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독서챌린지 #나를위한시간 #도전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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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평범한 주부. 7권의 웹소설 e북 출간 경력 있음. 현재 '쓰고뱉다'라는 글쓰기 공동체에서 '쓰니신나'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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