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윤석열씨의 모습
서울중앙지법
단죄(斷罪). 죄를 끊어버린다는 뜻이다. 이는 범죄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벌을 내려야 가능하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신호, 이는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한 이후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물론 그 기준이 늘 논란이지만. 이를테면, 공직에 종사했으니 너무 엄하게는 대할 수 없다는 황당한 감형 사유 말이다.
사회 안에 깊숙하게 개입된 단어가 단죄이니, 일상적으로 흔히 사용되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이전 한국사회에서 단죄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 것은 네 번이다. 1960년이 첫 번째다. 4.19 이후, 언론에서는 그 원흉을 단죄한다는 식의 표현으로 혁명의 의미를 짚었다.
그리고 1980년이다. 자신들을 개혁의 새로운 주체로 포장해야만 했던 신군부 일당들은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며 단죄를 부르짖었다. (박정희 정권 때는 혁명 과업의 일환으로 구악 척결 등의 표현이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재건, 정화 등의 단어로 새출발의 의미를 더 강조했다.) 한때는 사회악을 척결하는 전두환이 인기가 있었다. 아직도 "전두환은 깡패들 죄다 잡아서 삼청교육대에 처넣곤 했지"라면서 그 시절이 그립다는 이들이 있다. 깡패만 대상이었겠는가. 그리고 깡패도 그런 식으로 처넣어선 안 된다. 민주공화국이라면 말이다.
1987~1988년에도 단죄는 굵직한 단어였다. 민주화운동이란 강력한 사회적 물결이 5공화국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 번의 반동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단죄'라는 단어가 사회를 지배했던 적이 있다. 바로 1995년이다.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그 해다.
1995년의 '단죄'는 앞선 경우와 성격이 좀 다르다. 4.19 혁명과 87년 민주항쟁이라는 큰 사건의 물결 위에서 외쳐진 것도 아니었고, 결은 매우 다르지만 1980년처럼 권력의 프로파간다로 활용되지도 않았다. 단죄라는 여론이 스스로 달아오르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말인데, 1995년의 단죄는 온전히 시민의 힘이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YS의 의지가 불쏘시개인 건 사실이지만, 이를 횃불로 살린 건 평범한 이들의 집합적 분노였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만을 마주한 사람들은 역사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면서 뭉치고 또 뭉쳤다. 이 공분의 감정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를 넘어 사회적 압력으로 작동했다. 정치는 이를 연료로 삼아 12.12 내란의 민낯과 5.18 학살의 진실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었다.
나는 당시 고등학생이라 저 열기를 몸으로 체험하진 못했다. 1997년에 대학에 입학해서는 1995년도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선배들을 자주 만났지만, 장황하게 들렸다. 시대정서가 학생운동의 방향을 서서히 틀고 있었고 외환위기는 역사를 짚을 시간조차 청년들에게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야, 전두환이라는 인물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분위기가 거저 주어진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지귀연 판사의 판결문을 들으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의 공분이 재판정까지 충분히 다다르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다. 고령이고, 공직자였고, 초범이라는 이 황당무계한 말이 문장 속에 들어갈지는 몰랐다. 지금 70대 노인이 배고파서 빵이라도 가져갔단 말인가. 감형 사유라는 건 "어쩌다가"라는 아쉬움을 통해 사회시스템의 결함을 짚기 위함이다. 내란에, 적용될 리 만무하다.
하지만 선명하게 기록되었고 또렷한 목소리로 그것도 생방송으로 전국에 울려 퍼졌다. 아마, 처음부터 판결문 속에 있었던 문장이리라.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물리적 충돌을 자제하려고 했다는 궤변도 속속 추가되었을 거다. 내 분노가 컸다면 재판부는 두려움에 이 문장들을 뒤늦게라도 삭제했을 거다.
언젠가부터 윤석열만 보도하는 뉴스를 멀리했다. 지루한 재판이 짜증 났고 괴이한 변론을 듣는 게 싫었다. 이를 '피로감'이라고 표현하는데, 정확히는 나 자신을 내란의 피해자로서 인식하는 게 점점 옅어진 거였다. 시민으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래서일까? 무기징역이란 음성을 들었을 때도, 이제 일단락되었다는 느슨한 생각이 먼저 스쳤다. 비상계엄의 역사이기도 한 한국의 현대사와 판결문이 제대로 연결되었는지를 즉각적으로 따져 묻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1995년도 많았다면, 전두환과 노태우는 집행유예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된 단죄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철저한 사회적 산물이다. 시민이 과거를 바르게 기억하고, 그 기억을 연료로 공분이 지속 가능해야 가능하다. 약간만 느슨해져도, 그들은 빈틈을 찾아 괴상한 추임새를 넣는다. 그게 일상의 대화로 스멀스멀 침투하면, 이런 말이 툭 등장한다. "뭘 그만한 일을 가지고 무기징역이냐."
내게 묻는다. 설마, 이게 지겹냐고. 정신 차리라고. 제대로 단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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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를 시작으로 <진격의 대학교>,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 등 여러 책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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