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의미로 시작한 독립운동가 일러스트

[독립운동가 그림쟁이의 기록실] '독립운동가 어벤져스'를 그리면서

등록 2026.02.23 13:32수정 2026.02.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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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가 개봉했다. 극장가에는 수십 명의 영웅들이 한 화면에 모여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허구의 영웅들이 우주를 구하기 위해 힘을 합치는 장면을 스치듯 보다가, 문득 다른 이미지를 떠올렸다.

오래전 일제강점기 사진 속에서 안창호와 김구가 함께 서 있고, 또 다른 사진 속에는 김구와 김원봉이 함께 서 있었다. 서로 다른 노선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프레임 안에 담긴 얼굴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그것을 '독립운동의 어벤져스'라고 불렀다.


그 생각은 오래 남았다. 그렇다면 내가 그 이미지를 직접 그려보면 어떨까. 허구의 영웅이 아닌, 실존했던 영웅들을 한 자리에 모아보면 어떨까. 초능력이 아니라 기록과 증언으로 남은 사람들. 영화적 상상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그림. 그날 이후, 나는 그 상상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았다.

일러스트 첫 스케치 독립운동가를 한곳에 모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스케치를 남겼다. 그냥 시작한 낙서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일러스트 첫 스케치 독립운동가를 한곳에 모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스케치를 남겼다. 그냥 시작한 낙서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주환선

그때도 이미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꾸준히 회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 작업의 중심은 '나의 감정'이 있었다. 독립운동가를 통해 나 자신의 감정과 해석을 드러내는 그림이었다. 그것도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어느 순간 '설명에 가까운 그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의 영역보다 기록의 영역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료를 모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선명한 사진은 드물었고, 한 장뿐인 경우도 많았다. 흑백의 흐릿한 눈매를 확대하고, 빛이 번진 부분을 다른 자료와 대조했다. 가려진 부분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맥락 속에서 조심스럽게 상상으로 메웠다.

수감 당시 사진만 남은 인물도 많았고, 인물의 얼굴만 동그랗게 잘려 남은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먼저 그들에게 '몸'을 돌려주기로 했다. 시대의 복장을 참고하고, 비슷한 시기 사진들을 찾아 옷을 입혔다. 얼굴의 표정과 빛의 방향을 보며 손끝으로 그들의 자세를 되살렸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그린다.

독립운동가 어벤져스 스케치 한명씩 작업한 독립운도가 일러스트의 스케치를 모아 배치하였다.
▲독립운동가 어벤져스 스케치 한명씩 작업한 독립운도가 일러스트의 스케치를 모아 배치하였다. 주환선

처음에는 10명을 한 묶음으로 정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나갔다. 널리 알려진 인물과 덜 알려진 인물을 섞어 그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독립운동가 관련 소식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국가보훈처의 서훈 발표, 각 지역 기념사업회 소식, 독립운동사 박물관의 게시판까지 하나씩 살폈다. 그렇게 그려야 할 얼굴들이 끊임없이 늘어난다. 매년 새로 이름이 밝혀지고, 그 이름들은 자연스럽게 그려야할 목록에 저장된다.


이 작업은 단지 독립운동가의 일러스트가 아니다. 잊혀진 이름을 다시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의 결심과 희생이 대한민국이라는 결과의 씨앗이었다는 사실을 남기는 작업이다. 화려한 영웅담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존재'다. 나의 그림이 그 얼굴을 한 번 더 소환하고, 누군가가 그 이름을 다시 부르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주항일 3대맹장과 남만 3천 일러스트 만주항일 3대맹장 김동삼, 오동진, 김좌진의 일러스트와 남만 3천 지청천, 김경천, 신팔균(동천)의 일러스트.
▲만주항일 3대맹장과 남만 3천 일러스트 만주항일 3대맹장 김동삼, 오동진, 김좌진의 일러스트와 남만 3천 지청천, 김경천, 신팔균(동천)의 일러스트. 주환선

마블의 포스터를 보며 시작된 상상은 결국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만들었다. 한 장의 희미한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과정을 글로 남긴다. 그렇게 그림과 글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의 책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화가의 손을 대신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스타일을 학습시키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초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독립운동가 일러스트를 디지털 페인팅으로 작업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연필과 타블렛 펜을 놓을 생각이 없다. 화면 위에 한 선, 한 색을 그리고 지우며 축적되는 시간, 그 축적이 주는 감각은 아직 인공지능이 완벽히 재현하기 어렵다고 믿는다.

"뭐라도 남겨놓으면 누군가는 보게 되어 있으니까요. - 작가노트"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잊힌 얼굴을 되살리는 것, 한 명이라도 더 그리고 글을 써서 대중 앞에 소개하는 일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사명일지도 모른다. 독립운동가 마주하는 시간이 쌓여가며 만들어가는 세계관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께 닿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일러스트 #일러스트레이션 #독립운동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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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그림쟁이 개인전 8회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할 독립운동가 100인> 출판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매일 역사를 그려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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