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산마을 금강산의 돌무더기 앞에 선 방문객. 작은 돌 하나까지도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을 보여준다. 생존과 존엄 사이에서 선택된 노동의 흔적이다.
정남준
지난 21일, 경남 진주 지수면 승산마을에는 '금강산'이라 불리는 작은 돌산을 찾았다. 이름만 들으면 웅장한 산세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마을 사람들의 손으로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돌무더기다. 그 시작에는 조선 말기 진주 지수의 만석꾼 허만진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야기는 소박하다.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할 때, 허만진은 마을 사람들에게 방어산에 있는 돌을 자신의 집 앞마당에 가져다 놓게 하고, 그 품삯으로 곡식을 내주었다. 겉으로 보면 노동의 대가를 지급한 '거래'였다. 그러나 속내는 달랐다.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돕기 위한 배려였다고 마을은 기억한다. 시혜가 아니라 '일한 만큼 받는' 구조를 만들어 공동체의 체면을 지켜준 것이다.
돌무더기 위에 얹힌 작은 돌탑들은 그렇게 쌓였다. 생존의 절박함이 만든 풍경이었지만, 동시에 관계의 윤리를 세운 흔적이기도 하다. 이곳을 두고 사람들은 '승산마을 금강산'이라 부른다. 거대한 자연의 절경 대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를 닮았다는 의미일까.
오늘날 우리는 자본을 둘러싼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착한 자본가'는 존재하는가. 자본은 본질적으로 이윤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윤의 방식과 태도는 선택의 문제다. 만석꾼 허만진의 일화는 자본의 소유자가 공동체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최소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그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주였고, 분명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행위는 온정주의적 통치였을까, 아니면 윤리적 자본의 한 사례였을까. 인문학은 이 지점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미담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선택이 가능했던 사회적 토양을 성찰하는 일이다.
당시 농촌 공동체는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회였다. 자본의 축적과 소비가 지역 안에서 순환했다. 오늘날의 글로벌 금융 자본과는 조건이 다르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묻게 된다. 관계가 사라진 시장에서 '배려'는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을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 ESG 경영이라는 이름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은 비용 항목으로 계산된다.
승산마을 금강산의 돌들은 거창한 구호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쌓여 있다. 돌 하나는 작지만, 모이면 산이 된다.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축적의 방식이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도, 떠받칠 수도 있다. '착한 자본가'가 존재하느냐는 물음은 결국 이렇게 귀결된다. 선의에 기대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선의가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허만진의 선택이 완전무결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한 시대의 인간적 고민을 보여주는 사례임은 분명하다.
돌무더기 앞에 서면, 바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의 자본은 어떤 산을 쌓고 있는가. 그리고 자본에 가려진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 층층이 쌓인 돌기둥들. 흉년의 시간을 건너며 쌓인 공동체의 기억이 기념비처럼 서 있다. 자연의 산이 아니라, 사람의 윤리가 만든 ‘금강산’이다.
정남준

▲ ‘승산마을 금강산’을 설명하는 안내판과 마을 풍경. 지역의 구전과 기록이 만나 한 인물의 나눔을 오늘까지 전하고 있다.
정남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회 사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드러나지 않은 삶과 소외된 이들의 희망을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사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그 긴 여정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공유하기
[사진] '금강산'이라 불리는 돌무더기, 그 앞에서 던진 물음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