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구 등을 1976년 10월 19일 구속 보고했다는 문서가 존재한다.
김정구 가족
수사관들의 폭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씨를 유치장 창살에 매달리게 하거나 허리와 다리를 구둣발로 짓밟는 가혹행위를 하며 약 일주일 가까이 폭행을 지속하였다.
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뎌오는 동안 김씨의 몸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고문 직후부터 핏물이 섞인 소변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평생 성생활이 불가능한 신체 불구와 오른쪽 귀의 청력 상실이라는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김씨를 목격했던 신명구씨는 "화장실을 가다 김정구를 보았는데, 고문 당하며 조사를 받는 상황이라 말 한마디 붙일 수 없었다"며 그 참혹했던 현장을 증언했다. 결국 김씨는 경찰이 원하는 대로 "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허위 자백을 한 뒤에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라는 판결을 받고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를 이어간 '반공법'의 저주
판결문 속 형량은 짧았으나, '반공법 위반'이라는 주홍글씨는 김정구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앞길까지 철저히 가로막았다. 김씨는 생전 진술서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아들의 입사 취소 사건을 꼽았다. 여수 한국전력공사에 합격해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던 아들은 당일 직장 상사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아버지가 반공법 위반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고, 그 길로 입사가 취소되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딸 역시 대한항공 입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 벽에 걸려 채용이 거부되었고, 김씨 본인 또한 선장 자격으로 취업하려하거나 시청 청소부로 지원하는 것조차 번번이 무산되었다. 국가는 그를 고문한 것으로 모자라, 그의 가족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며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가난의 굴레에 가두었다. 김씨는 나중에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고문받아 다쳤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배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만큼 평생을 공포 속에 살았다.
죽어서야 마주한 진실, 남겨진 자들의 숙제
김씨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당시 그가 수사 과정에서 자백했다는 점,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고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2024년 7월 끝내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기각 결정을 받은 김씨는 평생의 한을 품은 채 그해 세상을 떠났다.

▲ 군산지원은 고 김정구 씨의 재심을 기각했다. 불법감금이 명확함에도 재판부는 김정구 씨의 재심사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변상철
하지만 이대로 끝날 같았던 고 김정구씨의 명예는 동료들의 무죄 판결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다. 2025년 4월, 사건의 핵심이었던 신명구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백상빈)는 납북 어부 신명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통해 고 김정구씨에게 적용됐던 혐의 자체가 경찰의 고문으로 조작된 허구였음이 증명된 셈이다.
또 지난 1월 29일 또 다른 동료 고 신충관씨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같은 재판부는 이날 반공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 신충관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 판결 현장에서 김씨의 아내는 "내 남편은 죽어서도 눈을 못 감았다"며 오열하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똑같이 끌려가 고문 당했는데 누구는 무죄를 받고, 내 남편은 기각 결정문을 손에 쥔 채 죽음을 맞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물었다.
이제 공은 다시 사법부와 국가로 넘어왔다. 고인이 된 김정구씨가 남긴 낡은 진술서는 국가 폭력의 잔인함을 증언하는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무덤 앞에 놓일 '무죄 판결문'을 위해, 그리고 50년 넘게 이어진 연좌제의 고리를 끊기 위해 또다시 법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가가 걷어찬 것은 한 청년의 신체만이 아니라, 한 가족의 존엄과 미래였다는 사실을 법원은 이제라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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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간첩이 아니었다"... 국가가 짓밟은 이 가족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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