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나물을 먹으면서 느끼는 감회

거들떠보지 않던 대보름 나물을 챙겨 먹게 된 외국에서의 에피소드 하나

등록 2026.03.03 16:56수정 2026.03.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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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월대보름 나물모음
정월대보름 나물모음 이혁진

 대보름 찰밥
대보름 찰밥 이혁진

오늘은 정월대보름, 아내가 찰밥과 나물을 만들었다. 부럼으로 호두도 준비했다. 어제부터 새벽까지 구색을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릇에 담긴 시금치, 머위, 콩나물, 시래기, 버섯의 색깔이 선명하고 먹음직스럽다.

어제는 바깥에 외부 행사가 있어 집을 비운 사이, 아내가 대보름 음식을 서둘러 만든 모양이다. 귀가하자 아내가 간을 보라며 볶은 시래기를 입에 넣어주었다. 보름 밥상을 받아보기는 오랜만이다. 코로나 이전에 아내를 도와 장을 보고 나물을 함께 다듬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내' 혼자 준비했다. 아내의 정성을 생각하니 미안하고 먹기가 아깝다.


 아내가 만든 정월대보름 나물
아내가 만든 정월대보름 나물 이혁진

 대보름 시래기
대보름 시래기 이혁진

먹어야 할 시간이다. 나물의 근원을 생각하면 하나하나 맛 보야 하지만 나는 한데 섞어 비벼 먹기로 했다. 요즘 '봄동 비빔밥'이 대세라고 하니 '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고추장 대신 참기름을 넣어 비볐다.

그럴듯한 나물 비빔밥이 완성됐다. 나물 향 물씬 나는 비빔밥이 입맛을 돋우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우리 비빔밥은 대보름 나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양한 나물들이 비빔밥 식재로 근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릴 때는 대보름 나물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하필 먹기 싫은 나물만 애써 만드는지 의문을 가졌다. 설날과 추석은 고기라도 먹어 기다리던 명절이었다. 언젠가 어머님이 하던 말씀도 기억난다. '네가 이 맛을 알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잊을 수 없는 명언이다.

대보름에 기억에 남는 것은 달맞이하며 깡통에 구멍을 뚫어 소나무 관솔에 불을 붙여 돌리던 추억뿐이다. 어른들은 온갖 좋은 말을 동원해 나물을 먹이려고 했지만 맛있게 먹은 기억은 별로 없었다.

 나물비빔밥
나물비빔밥 이혁진

대보름 세시 음식을 제대로 먹은 것은 한참 이후다. 1980년대 직장을 다니며 해외 출장을 갔을 때다. 파리 한인 식당에서 정월대보름을 맞아 우리 일행에게 나물을 내놓았다. 타국 멀리에서 대보름 나물을 대접 받다니 새삼 놀랐다.


푸대접하던 대보름 나물과 오곡밥을 마주하면서 나는 숙연해졌다. 그때 한인 식당 주인의 말이 생생하다. "고국을 떠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명절음식인데 대보름 음식은 한인은 물론 프랑스인들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함께 갔던 일행들은 큰 대야에 비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나는 대보름 나물 맛을 우리나라가 아니라 해외 출장에서 처음 느낀 것이다. 이때 먹어본 대보름 음식의 느낌과 미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랄 때는 정월대보름 음식 같은 우리 것을 소홀히 취급하거나 무시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부끄럽기조차 하다.


오늘은 과거 파리에서 맛보던 대보름 음식의 추억과 향기를 음미하며 조상의 은덕과 보살핌에 감사드리고 싶다. 저녁에는 호두를 깨서 수고한 아내 입에 넣어주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과 행운도 기원하고 싶다.

 정월대보름 부럼 호두
정월대보름 부럼 호두 이혁진


60대 이상 시민기자들의 사는이야기
#정월대보름 #부럼 #나물 #프랑스 #케이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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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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