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고속도로 개통 이후 달라진 은퇴 부부의 일상

10년 전 전북 장수군 산골로 귀촌, 바다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게 됐어요

등록 2026.03.05 09:54수정 2026.03.0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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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길은 사람을 자꾸 밖으로 불러낸다. 장수 산골에 사는 우리 부부에게 탁 트인 바다와 바다 위로 해 지는 풍경은 이제 먼 그리움이 아니다. 길은 항상 열려 있고,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마음이 동하는 날이면 "여보, 오늘 바다 한번 보고 올까요?" 하고 말을 꺼내면 된다. 예전처럼 1박 이상 계획을 짜고, 집안 단도리를 단단히 해놓은 뒤 특별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호들갑 떨 필요도 없다. 그냥, 가고 싶으면 훌쩍 다녀오면 되는 일이 되었다.

서해낙조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 되고 있다
▲서해낙조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 되고 있다 유상신

우리 부부는 10년 전 도심을 떠나, 전북 장수군 산골로 귀촌했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이고, 숲이 양팔로 집을 감싸 안는 곳에서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삶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 산간 지역이라, 탁 트인 바다와 바다 위로 번지는 저녁 노을은 쉽게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던 우리 앞에 오작교가 하나 놓였다.


지난해 11월, 장수 산골과 서해를 잇는 새만금고속도로가 개통된 것이다. 김제 진봉면에서 완주 상관면까지 이어지는 55.1km 구간은 기존 고속도로망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장수군에서 서해안 부안 일대와, 선유도와 장자도, 고군산군도를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운전 시간도 단축되었지만 운전 피로도가 확연히 줄었다. 이전에는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타며 신호등을 여러 번 지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새만금고속도로 개통 후엔 달라졌다. 신호등 한번 거치지 않고 쭉쭉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새만금 방조제에 닿고, 눈앞에 서해 바다가 펼쳐진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왼쪽은 부안 변산·격포, 오른쪽은 선유도·장자도로 이어진다. 어느 쪽을 향하든지 하루 안에 바다와 노을을 충분히 즐기고 돌아올 수 있다.

동완주 JCT 익산-장수 고속도로에서 새만금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동완주 JCT 익산-장수 고속도로에서 새만금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유상신
새만금 나들목(IC)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위치. 장수IC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빠져나오면 자연스럽게 자동차전용도로로 이어져 새만금방조제에 이르게 된다
▲새만금 나들목(IC)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위치. 장수IC에서 출발하여 이곳으로 빠져나오면 자연스럽게 자동차전용도로로 이어져 새만금방조제에 이르게 된다 유상신

새만금고속도로가 놓이면서 우리 부부의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큰맘 먹어야 나설 수 있던 바다가 이제는 마음 내키는 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부담 없이 드나들어도 좋은 단골 바다 정원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고속도로 개통 이후, 우리는 부안과 선유도, 장자도, 고군산군도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변산 마실길을 걷고, 전나무 숲과 대웅전 창살문이 아름다운 내소사를 찾았다. 개암사 뒤편울금 바위길과 산 능선을 걸었고, 곰소 해안길을 드라이브했다. 선유봉과 장자봉에 올라 고군산 군도 조망을 즐겼고, 장자도에서 배타고 관리도와 말도·명도를 트레킹하며 섬 바람을 맞았다.

어느 날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서해 낙조에 마음까지 붉게 물든 채 돌아오기도 했다. 자칫 단조롭게 흘러갈 뻔했던 지난 석달 (12월, 1월, 2월)간 산골의 긴 겨울이, 덕분에 한층 풍성해졌다.


윤슬 선유봉에서 바라 본 봄바다
▲윤슬 선유봉에서 바라 본 봄바다 유상신
선유봉에서 바라 본 바다 풍경 선유 8경 중 하나인 삼도귀범(만선을 알리는 기를 꽂고 들어오는 세 척의 돛배처럼 보여 붙여진 무인도 이름)이 보인다
▲선유봉에서 바라 본 바다 풍경 선유 8경 중 하나인 삼도귀범(만선을 알리는 기를 꽂고 들어오는 세 척의 돛배처럼 보여 붙여진 무인도 이름)이 보인다 유상신
선유봉을 노닐다 정상에서 바다 아래로 암릉이 길게 이어져 있다
▲선유봉을 노닐다 정상에서 바다 아래로 암릉이 길게 이어져 있다 유상신
며칠 전(2월 28일) 윤슬이 일렁이는 봄 바다가 보고 싶어 다시 선유봉을 찾았다. 해발 112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서면 고군산 군도의 실루엣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선유봉의 암릉 구간은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최애' 장소라고 한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우리는 봄 바다 위에 흩 뿌려진 윤슬에 취해 두 시간 넘게 정상에 머물렀다. 아쉬움을 다음으로 미루고 내려온 뒤에는 책을 읽고 서해 낙조를 보려고 부안 변산 바다 전망 카페로 이동했다. 나는 실내에서 책장을 넘기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봄 졸음에 빠졌고, 남편은 바람 부는 야외 탁자에 앉아 바람이 넘겨주는 책 읽기 삼매에 들었다.


책,바다 그리고 봄 졸음 책 한번, 바다 한번, 그러다 자올 자올 봄 졸음을 즐기다
▲책,바다 그리고 봄 졸음 책 한번, 바다 한번, 그러다 자올 자올 봄 졸음을 즐기다 유상신
서해낙조 남편은 탁자에 앉아, 나는 그네에 앉아
▲서해낙조 남편은 탁자에 앉아, 나는 그네에 앉아 유상신
서해낙조 완전히 사그라들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
▲서해낙조 완전히 사그라들때까지 넋을 잃고 바라보다 유상신

해가 기울자, 서해 특유의 깊고 느린 노을이 우리를 자연스레 한 자리에 머물게 했다. 붉은 빛이 바다를 물들이고, 하늘과 수평선이 한 몸이 된 채 천천히 어둠속으로 스며드는 순간까지,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모든 풍경을 하루 안에, 무리 없이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새만금 고속도로는 우리에겐 단순한 도로망 확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장수 산골 은퇴부부의 일상에 새로운 여유와 자유를 선물해 준 것이다. 앞으로의 은퇴 생활도, 이렇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걸어가 보려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새만금고속도로 #장수군 #은퇴부부 #선유봉 #서해낙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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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책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은퇴 후 나의 하루는 내가 디자인하며 삽니다. 지금 여기에 사는 즐거움(기쁨이자 슬픔)을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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