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 비용 거부와 회식 영수증 한 손에는 비공식 메신저 라이선스 라이센스 비용 거부 통지서가, 다른 한 손에는 큰 금액의 회식 영수증이 들려 있습니다. 회식비 수십만 원은 아깝지 않으면서도 계약직의 메신저 사용료는 아까워하는 회사의 태도를 극적으로 대비했습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회의에 들어가도, 보고서를 제출해도, '○○매니저', '○○선임'이라는 호칭이 오가는데 나는 '○○씨'이다. 나는 매니저가 아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누구도 나를 차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나를 같은 동료로 대하지 않는다. 그 경계는 말없이 분명하고 또렷하다. 일상의 작은 것들의 차이가 선명하다. 회사와 동료들은 나에게 기대가 없다. 계약직이니까. 그리고 나 역시 서서히 그들의 기대 수준에 맞춰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의견을 내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한다. 나는 그저 회의록을 정리하고 자료를 복사하고 계획을 취합한다.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개선의 여지가 보여도 말을 꺼내거나 의견을 내지 않는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업무 매뉴얼을 정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후임자가 와서 인수인계 받을 때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내가 만든 시스템을 문서화해서 후임자에게 넘겨주라는 것이었다. 그 작업을 하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 온 모든 것들, 해온 것들을 한 권의 매뉴얼로 정리하는 것.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문서화하는 것. 내가 일하면서 터득한 모든 노하우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복사기에 종이가 특히 자주 걸리는 곳과 해결 방법"까지 세세하게 적었다.
문서를 읽어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매뉴얼만 있으면 정말로 누구든지 내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해온 일이 50페이지 분량의 문서로 요약되었다. 내가 이 조직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지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근무 인원 취합하기, 서류 정리하기, 자재 구매, 방문자 안내하기 등등. 정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따져 보니 특별한 창의성이나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은 없었다. 정해진 절차를 숙지하고 성실하게 따라 하면 되는 일들이었다.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한 지식이 필요한 일도 없었다. 전공이 도움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학교 방과 후 시간에 배운 엑셀 지식 정도만 활용한 것 같다. 심지어 내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업무 개선' 부분도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단순한 효율화 작업이었다. 복잡한 분석이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을 관찰하고 불편한 점을 찾아 조금씩 개선하는 정도였다. 매뉴얼에 적힌 내용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정말 누구든지 이 매뉴얼만 보면 첫 주부터 바로 나를 대체해서 일할 수 있겠구나. '
문득 나는 조직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해졌다. 시스템을 만든 사람? 아니다. 시스템은 이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일부 개선했을 뿐이다. 업무를 처리한 사람? 맞다. 하지만 그 업무는 매뉴얼에 따라 누구든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조직에 기여한 사람?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그 기여도가 그닥 유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성과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사실은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개선이었다. 회사 전체의 매출이나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없었다고 해서 회사가 크게 어려워졌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능"한 존재였던 것 같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고장나지 않고 안정적으로 기능을 수행해냈다.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내가 이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면서,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회사라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분노나 슬픔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감정이 들었다. 심지어 회사를 이해하게 되었다. 논리와 현실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런 이해와 수용이 과연 건전한 것일까? 개인의 존엄성, 고용 안정성, 성장 가능성 같은 가치들이 효율성과 수익성이라는 논리 앞에서 너무 쉽게 간과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한 인간으로서 이 조직에 애정을 갖고,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동료들과 관계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회사에게 나는 그냥 하나의 '기능'이었다. 언제든 교체 가능한 부품이었다. 내가 느꼈던 소속감, 성취감, 보람 같은 것들은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들이 생기지 않도록 계약 기간을 제한하고, 업무 범위를 한정하고, 기회를 차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결국 이런 비인간적 논리를 충실하게 내재화 했다는 뜻이 아닐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시스템에 분노하며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할 것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현실은 받아들이되, 이런 경험이 헛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고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야 한다.

▲'유지'의 시간을 넘어선 '존재'의 기록 2년이라는 '유지'의 시간을 갈무리하며, 자신을 교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취급한 시스템에 대항해 남기는 가장 인간적인 흔적을 상징합니다. 복사기 수리부터 전화 응대 노하우까지 50페이지에 걸친 이 매뉴얼은, 후임자에게 자신의 색깔을 잃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며 고요하게 저항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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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경험을 통해 나는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나는 '기능'이었지만, 그것이 내 존재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었지만, 기능 그 자체는 아니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 고민들, 성장의 경험들은 회사의 관심사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것들이다.
내가 겪은 경험을 단순히 '개인적 성장'으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침묵의 공모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까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떠났다. 이력서 한 줄에 "○○회사 사무보조 "라고 적고, 면접에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넘어갔을 것이다. 이런 침묵이 시스템을 유지 시킨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당사자조차 자신의 경험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말할 것이다.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것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개인의 경험을 사회적 의미로 확장한다는 것은, 내가 겪은 일을 나만의 것으로 끝내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속한 사회를 더 건강하고 좋은 곳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나의 업무 경험은 매뉴얼로써 50페이지 문서로 요약되었지만, 그 경험에서 나온 사회적 기여는 그 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50페이지의 문서를 보면서 깨달았다. 사람이 부품으로서만 기능하는 이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나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더 이상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사람이다.
메뉴얼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후임자에게: 이 문서는 업무 수행을 위한 가이드일 뿐입니다. 회사는 우리를 교체 가능한 부품들 중 하나라고 여기지만 그 관점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그보다 훨씬 소중하고 고유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색깔과 리듬을 스스로 존중하고 아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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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되기 전에 교체되는 계약직,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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