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3.05 09:47수정 2026.03.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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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했다. 매 끼니를 간단한 샐러드로 대신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쌀이 떨어졌고 그 참에 뭘 먹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도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고 배달 앱을 켜도 한참 망설이다 손가락이 멈췄다. 먹고는 싶은데 먹을 게 생각나지 않는 마음. 배보다 마음이 허기진 느낌이었다.
이럴 땐 시골에 계신 엄마한테 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외식을 즐기지 않지만 어쩐지 밖에서 한 끼를 먹고 싶어졌다. 집밥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음식. 생각 끝에 떠오른 건 보리밥이었다.
그 길로 근처 보리밥집으로 향했다. 동네에는 보리밥집이 세 곳 있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찾고 싶어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숲길 옆 할머니 식당 바로 옆집은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순대국밥집이었는데 어느새 백반집으로 간판을 달았다. 현수막에 적힌 백반 메뉴 그림이 맛있어 보여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모험 대신 익숙함을 택하기로 했다. 집에서 엄마랑 먹던 보리밥과 가장 비슷한 맛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밥 하면 다정한 엄마와 분주한 손길 부엌 가득 풍기던 온기가 떠오른다. 뭘 먹을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날이면 엄마는 " 우리 보리밥 해 먹을까" 하며 늘 보리밥을 지어주곤 했다. 흰쌀보다 몸에 좋다며 보리쌀에 감자를 넣어 지은 밥에 뚝딱 만들어낸 양념막장 하나면 다른 반찬 없이도 충분했다. 소박하지만 늘 든든한 한 끼였고 마음까지 채워주는 따뜻한 맛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에 "1인분도 가능하죠?"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그럼요" 하신다. 할머니는 보리차 한잔을 갖다주며 " 따뜻한 게 아니라 뜨거우니까 조심해요"라고 덧붙였다. 생수를 '셀프'해야 하는 곳과 달리 뜨겁게 끓인 보리차가 마음을 녹였다. 할머니는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지만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점심시간임에도 손님도 주인도 모두 느린 물살에 몸을 맡긴 듯 차분했다. 전쟁통 같지 않은 분위기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았다.
잠시 후 보리밥 한 상이 차려졌다. 생각보다 푸짐한 양에 "미리 말씀드릴걸 그랬어요. 밥이 많아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는 잠시 나를 보더니 "미안해, 내가 잘 기억을 못 해서" 물론, 기억할 리 없다. 1년 전에 한번 왔으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이내 곧 "천천히 먹어. 보리밥은 금방 꺼져내려 가. 다 먹을 수 있을 거야"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 말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서두르지만 않으면 정말 밥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식을 하면 밥을 잘 못 먹는 편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늘 어딘가 긴장해 있고 속이 먼저 닫혀버려 외식을 하고 오면 집에서 다시 밥을 먹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언젠가 동생이 "언니는 참 이상해, 회식을 하고 왔으면서 집에서 밥을 먹어"라고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외식은 배가 차도 허기가 남았다. 음식은 들어갔는데 식사는 끝나지 않은 느낌. 그래서 집에 와 허기를 챙겼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정말 천천히 밥을 먹었다. 나물을 먹고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먹으며 오래 씹었다. 익숙한 맛은 언제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반찬 몇 가지는 추가로 더 부탁했다. 할머니는 내 밥을 보더니 "보리밥을 비벼 먹지 않네?"라고 말씀하셨다. "네. 그래야 다 먹을 수 있어요"라고 답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섞으면 양이 더 많아지지" 하셨다. 그 짧은 대화 속에도 온기가 스며 있었다. 비비지 않은 보리밥처럼 시간을 조용히 음미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손님들도 모두 나가고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보리밥을 주문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눈치가 보이지도 않았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말 한마디가 내 속도를 허락해 준 덕분이었을까.
한창 바쁜 점심시간임에도 '천천히 먹어'라고 해주신 그 배려는 4인석을 혼자 차지하는 존재도 인정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거짓말처럼 나는 밥을 다 먹었다. 정말 배부르게 남김없이 반찬도 싹싹. 숟가락을 내려놓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에는 따뜻함이 남았다. 오십 평생 외식하면서 내 분량을 다 먹은 건 처음인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 뜨거운 보리차를 세 번이나 받아와 천천히 마셨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서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보리밥을 입에 대지도 않으셨다. 어린 시절 내내 보리밥만 먹었던 기억 때문에 아버지가 흰쌀밥만 찾는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때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누군가에게 보리밥은 그리움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벗어나고 싶었던 시간의 맛이었을 테니까.
음식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 스며 있는 기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보리밥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고 아버지에게는 지나온 세월을 딛고 얻어낸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 그릇의 보리밥에 서로 다른 시간과 마음이 담겨 있던 그날 천천히 비운 보리밥 한 그릇은 가족의 기억과 그리움까지 함께 한 한 끼였는지 모른다. 뜨거운 보리차조차 한 모금도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옆에 백반집이 생겨 걱정되지 않냐고 묻자 할머니는 담담히 말씀하셨다. "간판만 바뀐 거야. 주인은 그대로야" 겉모습만 달라졌을 뿐 달라진 건 없다는 뜻처럼 들렸다. 할머니 보리밥집은 줄곧 같은 자리에서 시간을 버텨왔지만 옆집은 몇 번이나 간판을 바꿔 달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찾는 건 새로움이 아니라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날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던 이유도 바로 변하지 않는 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근사한 음식이 많아도 허기를 채워주는 맛은 몸이 기억하는 그리운 맛이다. 그날 이후 집에서 보리밥을 몇 번 더 해 먹었다. 무엇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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