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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 장계 '토색하는 일은 없었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 한국근대사의 '관문'이 된 <장계>의 일부를 소개한다

등록 2026.03.09 15:39수정 2026.03.0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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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인물도(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동학인물도)는 이윤영(동학혁명기념관장) 구상, 박홍규 화백 그림이다. 사진 중앙에 최제우, 우측으로 최시형, 손병희, 박인호, 손천민, 중앙 좌측으로 손화중, 전봉준, 김덕명, 이방언, 김개남, 뒷줄 중앙에 이소사 등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전시중이다.
▲동학인물도(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 새 세상을 여는 사람들(동학인물도)는 이윤영(동학혁명기념관장) 구상, 박홍규 화백 그림이다. 사진 중앙에 최제우, 우측으로 최시형, 손병희, 박인호, 손천민, 중앙 좌측으로 손화중, 전봉준, 김덕명, 이방언, 김개남, 뒷줄 중앙에 이소사 등이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서 전시중이다. 동학혁명기념관

최제우를 죽이고 이후 동학의 교조신원운동 ⟶ 복합상소 ⟶ 동학농민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근대사의 '관문'이 된 <장계>의 일부를 소개한다.

경상감사 서헌순이 장계로써 경주 동학 죄인 최복술(최제우의 아명) 등의 본말을 따져 경중을 가려서 등문한 사안을 윤허하였다. 참사관 상주목사 조영화, 지례현감 정기화, 산청현감 이기재는 심문할 때 이들이 입회하여 철저하게 밝혀내었다.

최복술은 경주 백성으로 훈학을 업으로 하고 있었는데 양학이 나오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다. 양학이 세력을 떨치자 의관지류로서 차마 볼 수 없어 하늘을 공경하고 천리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의 라는 13자를 지었고, 이름을 동학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동국이라는 뜻을 담았다고 하였다.

양학은 음이라 할 수 있는데 양이 음을 제어하려면 늘 13자 주문을 읽어야 된다고 한다. 그 아들이 감질로 앓게 되자 이 주문을 외워서 저절로 낫게 하였다 하여, 풍증과 간질은 물론이고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외우게 하면 곧 차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필법을 약간 알고 있는 사람이며 혹시 글씨를 써달라고 하면 매번 구(龜) 자나 용(龍) 자를 써 주었다고 한다.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산에 들어가 제사를 지냈는데 소를 잡는 일은 없었다 한다. 잡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종이에 궁(弓) 자를 써서 불살라 마시도록 하면 차도가 있었다고 한다. 원근에서 온 사람이 있어 부득이 머물도록 허락하다 보니 도당이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붓을 들면 신령이 내리고 칼춤을 추면 공중에 떠올랐다 하여 돈과 쌀을 토색하는 일은 애초부터 없었다 한다. 선생과 제자라는 호칭도 또한 그가 스스로 부른 것이 아니라 한다.

이러므로 사교와 달라 처음부터 숨기거나 꺼리지 않았다 한다. 퇴리 이내겸은 그 애비가 병에 차도가 없자 최가를 찾아갔는데 13자(주문)를 주면서 외우기를 권하므로 밤낮 외워보았으나 차도가 없어 바로 중단하고 나서 물리치는 글을 지었다 한다.

그때에 돌린 이른바 문서로는 포덕문과 수덕문이었고 주문은 "지기금지원위대강"이라 하였고 또한 "위천주고아정 영세불망만사지"라 하였으며 칼 노래는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라는 것이었다.

입산하여 천재를 올릴 때에는 돼지고기와 떡, 국수, 과일을 차리는데 병을 낫게 하자는 뜻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복술은 본래 글씨에 이름이 나 있었으며 구·룡·상·운 등의 글자를 여러 사람에게 써주었다 한다. 이에 학부형들은 수고하였다는 답례로 약간의 돈과 양식을 주었을 뿐이고 토색하는 일은 없었음이 사실이다.(<일성록(日省錄)>, 고종 원년)

동몽 최인득은 칼춤을 추었는데 이는 본심이 아니라 문득 광기가 발작하여 나무칼을 들고 혹은 춤추고 혹은 노래하니 그 노래는 시호 시호라는 곡이었다. 이를 익히려면 먼저 하늘에 제사를 올려야 한다 하였다.

복술을 다시 문초하니 경신년에 서양이 먼저 중국을 점령하고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나오려 한다는 말을 듣자 반란이 있을 것을 예측할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13자 주문을 지어 사람을 가르쳐서 그들을 제압하려 하였고 하늘에 제사지내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으므로 사태가 불리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서양의 글은 반드시 규자로 이름하고 있으니 규자는 활궁 밑에 두 점이 들어 있기에 불살라 마시면 액막이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초학(初學) 시에 신령이 통하여 몸이 떨리더니 하루는 하느님이 가르쳐 주기를 근일 바다를 왕래하는 선박은 모두 서양인이다. 검무가 아니면 이를 제압할 수 없다고 하여 검가 한편을 주었다. 글은 과연 부와 창으로 지었다 하여 이 일은 더 아뢸 것이 없다고 하였다.

내겸을 다시 문초하니 복술의 이른바 검가는 "시호시호 이내시호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만세일지 장부로서 온 만년 지 시호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수 장삼 떨쳐입고 이 칼 저 칼 옆에 짚고 호호 망망 너른 천지 일신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드는 칼은 번득이며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긴소매는 우주를 덮고 있고 자고 명장 어디 있는 장부 당전 무장사라 이내 시호 좋을 시고" 라 하였다.

아울러 신선의 약이란 것은 궁(穹) 자의 반자 뜻을 취하여 종이에 그린 것이다. 두 궁자로도 된 지방을 풀이하기를 그 이름은 태극이요 다른 이름은 궁궁이라 하였다. 소위 대강 여덟 자를 외우면 몸이 떨린다고 하여 들은 것을 모두 고한다고 하였다.

조상빈은 복술을 만나 보니 한울님이 내려와 정녕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였으며 이르기를 금년 2월과 5월 사이에 서양 사람이 용만(龍灣)으로부터 나오게 되면 나의 통문을 기다렸다가 일제히 뒤따라 나서라 하였다. 이 검무를 익힌 이들이 보국안민의 공훈을 세우게 되면 나는 고관이 되고 너희들도 각기 다음 자리를 맡게 되리라 하였다.(앞과 같음)
덧붙이는 글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횃불 #촛불 #응원봉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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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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