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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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질문은 '나는 왜 여기에 앉아있습니다' 였다. 지금 이자리에 모인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겠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 혹은 '내 인생을 정리해보고 싶어서'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아주 현실적인 덧붙임을 했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누구라도 만날까 싶어서 나와봤다, 이것도 나라가 제공하는 복지니까 최대한 누리고 싶다. 라고 하셔도 너무 괜찮습니다."
다들 씩 웃는다. 뭐가 됐든 수업 시작에서 웃을 수 있으면 좋은 신호다.
두번째는 '나는 무엇을 기다립니다'였다. 기다림은 기대와 설렘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일상에 생동감을 준다. 세번째는 '나는 무엇을 할 때 지치지 않습니다'였다. 열정에 관한 이야기다. 남들은 힘들다는데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일, 그게 바로 나만의 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를 찾는 과정이 수업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다들 뭔가를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병원 스케줄 때문에 첫 시간만 하고 가야 된다는 분이 먼저 발표를 했다.
"선생님 말대로 그냥 운동하려고 나와요. 집에 있으면 우울하니까. 복지를 누려야지 한 적은 없는데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네요."
두 번째 웃음이 터졌다. 두 번째 대답에서는 웃을 수 없었다.
"통증이 없어질 날을 기다립니다. 안 없어질 거라는 거 알면서도 기다리게 됩니다."
그분의 아픈 이야기를 알기에 뭐라 말을 얹을 수 없었다. 그때 "몸보다 마음 아픈 사람이 많잖아요. OO님은 늘 밝아서 좋아요" 라는 누군가의 추임새가 분위기를 바꿨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그분 얼굴이 더 밝아졌다. 그래서인지 루틴을 지키는 일에 지치지 않는다는 세 번째 대답은 더 활력이 넘쳤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새벽에 일어나 공원 한 바퀴 도는 것을 원칙으로 지키는 분이라 그렇다. 그 철저한 루틴 덕에 병원에서 말한 마비가 오지 않았다. 그분의 마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을 것이다.
웃음 사이의 진짜 이야기
매주 글을 써오시는 어르신은 '기대하는 것이 없습니다. 기대는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오늘 하루를 감사하게 삽니다'라고 하셨다. 늘 활력 넘치는 분이라 그런 대답이 나올 줄 몰랐다. 내가 할 말을 못 찾고 있으니 오히려 선생님은 뭘 기다리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애들이 독립해서 본인 밥벌이 할 날을 기다린다고 했더니 어느 어르신이 '그 기대는 이뤄져요. 물론 결혼한다고 왕창 뜯어가지만' 이라고 덧붙이며 호탕하게 웃는다. 이 피할 수 없는 팩트에 여기저기서 고개를 끄덕인다. 안돼요를 외치는 40대 강사의 절규가 어르신의 더 큰 웃음을 불러왔다. 벌써 세 번째 웃음이다. 이날 수업의 반이 끝난 거 같다.
돌아보면 웃음들 사이에 진짜 이야기들이 있었다. 통증이 없어질 날을 기다린다는 말, 기대는 내 것이 아니라는 말. 웃음은 그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줬다. 기대하며 사는 사람도, 기대를 내려놓고 사는 사람도, 루틴 하나로 오늘을 버티는 사람도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그 모든 방식이 다 글감이 된다. 내 인생을 풀면 책 한 권이 된다는 말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보여준다.
웃고, 털어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그게 이 수업의 첫 번째 글쓰기였다. 글은 그렇게 이미 살아온 자리에서 시작된다. 다음 시간엔 그 글감들이 문장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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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왕창 뜯어가요... 웃음이 꺼낸 삶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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