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3.06 10:32수정 2026.03.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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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마이뉴스> 서부원 기자의 "죽어도 서울 밖으론 안 가요"(https://omn.kr/2h0yd)라는 기사를 읽었다. 서울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크게 공감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이질감도 있었다.
나는 이른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녔고, 자연스럽게 서울 남자와 결혼해 '서울 사람'들 틈에서 평생을 보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서울 밖에서 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남편의 직장 이전으로 등 떠밀리듯 내려온 전라도의 작은 도시에서 나는 9년째 살고 있다.
낯선 땅, 낯선 도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처음엔 나도 이곳에서 서울을 향한 향수로 힘든 적응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느꼈던 당혹감

▲매일이 행복한 아이들 시골로 전학을 와서 행복하다는 두 아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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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문화적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서울에서는 버스와 지하철이 수시로 오가지만, 이곳에서는 버스 배차 간격이 한 시간~두 시간씩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그 기다림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과 안부를 묻는 방식도 낯설었다. 서울에서는 특별한 관계 맺음 없는 사적인 질문이 실례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호구조사를 넘어 집안 숟가락 개수까지 궁금해하는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은 '사생활 침해'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던 날도 잊지 못한다. 책이나 뉴스로만 접했던 '분교'라는 단어를 실제 눈앞에 펼쳐진 건물로 마주하게 되었고, 지금은 담임 선생님이 직접 집을 방문하는 '가정 방문'도 해마다 경험 중이다.
그럼에도, 살기 괜찮은 곳
그럼에도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의 삶에 꽤 높은 만족도를 느끼며 살고 있다. 물론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시설도 적고 교통도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서울에서 느끼기 어려운 장점들이 더 많다.
먼저 경제적인 여유다. 지방에 살면 물가가 저렴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형 마트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의 공산품과 식자재 가격은 훨씬 싸다. 하지만 이 모든 '장바구니 물가' 차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것이 있다. 바로 주거 비용이다. 서울에서 평생을 바쳐야 할 대출 이자 굴레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삶의 여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여유는 고스란히 가족의 행복과 아이들의 교육으로 흘러갔다.
서울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여전히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다. 반면 우리 아이들은 정규 수업 시간에 논에 가서 모를 심고, 텃밭에서 직접 기른 고구마와 감자를 수확한다. 가을이면 아이들이 직접 키운 벼를 추수해 요리 경연 대회를 열고, 겨울엔 운동장에 키보다 큰 눈사람을 만들며 호연지기를 기른다.

▲논두렁 교실 봄에 자신들이 심었던 모를 가을에 직접 추수하는 아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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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점은 이곳 시골 학교가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IB(국제 바칼로레아) 교육' 후보 학교라는 사실이다. '다름을 존중하고 탐구하는 인재'를 기른다는 거창한 이름의 교육이, 이곳 시골 학교에서는 이미 일상으로 구현되고 있다. "지방은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라는 말은, 어쩌면 아이들을 성적이라는 틀에 가두고 싶어 하는 어른들의 자기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지방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의료 인프라'에 대해서도 나는 할 말이 많다. 나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로, 정기적으로 대학병원을 다닌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엔 대학병원이 없어 인접 도시의 대학병원을 이용하는데 두 달에 한 번 1시간 거리의 인접 도시를 오가며 관리하고 있어 큰 불편함이 없다. 물론 응급실이나 대학병원 접근성이 서울보다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내가 실제로 겪은 삶은 막연히 서울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살 수 없을 정도의 환경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
서울을 떠나기 어려운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도 일자리일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없다. 나 역시 남편의 회사 이전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서울의 콘크리트 숲에서 경쟁하며 살고 있을 것이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 경쟁의 삶을 고스란히 물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울을 포기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경험의 부재일 것이다. 서울 밖의 삶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그것이 '서울 사람'들을 서울에 묶어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서울을 떠나 사는 삶이 더 낫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서울은 여전히 많은 기회를 가진 도시라는 것도 사실이다.
서울에서 살아도 좋고 지방에서 살아도 좋다. 다만 나는 한 가지를 묻고 싶다. 우리는 혹시, 살아보지 않은 삶을 너무 쉽게 단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제 나는 웬만해서는 서울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다양한 문화 시설을 누리지 못하는 '촌뜨기'라고 불러도 좋다. 지난 9년간 나는 서울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던 폭넓은 삶의 지평을 얻었고, 아이들에게는 경쟁 대신 공존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래서 "죽어도 서울"을 외치는 이들에게, 내가 만난 이 푸른 평화를 한 번쯤 경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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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비로소 주보람으로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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