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전역을 그린 지도인 '한라장축'과 《탐라순력도》 화첩의 전시 모습. 상단에는 그림, 하단에는 상세 기사를 적은 '상도하문'의 치밀한 구조가 돋보인다.
전갑남
화첩의 구조 또한 매우 독특하다. 일반적인 화첩이 그림만 나열하는 것과 달리 <탐라순력도>는 상단에 그림을 배치하고 하단에는 해당 행사의 일시, 장소, 인원, 동원된 물자 등을 상세히 적은 기사가 붙어 있는 '상도하문(上圖下文)'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마치 현대의 보고서와 사진이 결합된 형태와 같다. 그림 하단의 수치에서 1702년 당시의 인구와 군사력, 심지어 귤나무의 그루 수까지 통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마침 운 좋게 문화해설사를 마주하였다. 해설사는 "이처럼 지방관의 행차를 그림과 글로 완벽하게 병행하여 남긴 구조적 치밀함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사례"라며 화첩의 학술적 가치를 강조했다.
기록자 이형상과 예술가 김남길, 두 인물의 합작
문화해설사는 나의 시선을 당시 인물들에게로 이끌었다.
"이 그림은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 전역을 순찰하며 거행한 행사를 기록한 현장 사진첩입니다. 기획은 이형상 목사가, 그림은 화공 김남길이 그렸다고 해요."
그러니까 탐라순력도는 당시 제주 목사라는 기록의 총감독과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화공이 만나 치열한 협업 과정을 거쳐 역사의 기록을 탄생시킨 것이다. 교통조차 마땅치 않던 시절, 제주의 험한 길을 굽이굽이 돌며 세밀하게 기록하려 했던 목사의 사명감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또 그 곁에서 목사의 엄격한 의지를 예술로 승화시켜야 했던 화공의 고뇌 역시 깊었을 것이다. 사실(Fact)과 예술(Art)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붓끝을 다듬었을 그들의 숭고한 정신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 1702년 7월 13일, 우도 목장에서 말을 점검하던 모습을 담은 '우도점마'. 화폭을 가득 메운 말 떼의 모습에서 당시 '말들의 천국'이었던 제주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전갑남
그때, 화폭 속 들판을 가득 메운 수많은 말 떼를 유심히 살피던 아내가 내 소매를 살짝 끌어당기며 물었다.
"이 그림 속 말 떼는 다 어디로 갔을까? 300년 전에는 제주가 정말 말들의 천국이었나 봐."
"그러게, 말 떼가 지금은 우리 기억 속 오름 어딘가로 달려갔겠지만, 이렇게 기록 속에 살아남아 오늘 우리에게 그때의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잖아."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 '성산관일(城山觀日)'

▲ 성산일출봉에서 해돋이를 감상하는 모습을 담은 '성산관일'. 300여 년 전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와 같은 자리에서 가족의 안녕과 희망을 빌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전갑남
내 시선이 특히 멈춘 곳은 '성산관일' 화폭 앞이었다. 지난 여름 땀 흘리며 아내와 함께 올랐던 성산일출봉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며 마주했던 그 장엄한 분화구! 300여 년 전 그날의 사람들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자리에 서서 저 바다 위로 솟구치는 태양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림 속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가족의 안녕과 삶의 희망을 빌었을 그 간절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시대는 변하고 풍경은 바뀌었을지언정, 태양 아래서 행복을 염원하는 인간의 마음만은 시간을 건너뛰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진정한 국보란 무엇인가, 기록의 힘
나는 해설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문화재가 국보로 지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탐라순력도가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말이죠."
'진정한 국보란 무엇일까?' 화려한 금빛 문양이나 거대한 석조물만이 최고의 가치인 국보는 아닐 것이다. 한 시대의 공기와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 땅이 품었던 고뇌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박제해놓은 '기록의 힘'이야말로 국보가 가져야 할 가장 숭고한 자격이 아닐까 싶다.

▲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군사 훈련과 활쏘기를 점검하는 장면. 단순한 기록화 이상의 행정 보고서로서 《탐라순력도》의 가치를 보여준다.
전갑남
<탐라순력도>는 조선 시대 지방관의 순력을 기록한 유일한 화첩이자 제주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단 하나의 열쇠'다. 이 보물이 국보로 승격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단순한 지역적 자부심을 넘어 역사를 대하는 마땅한 도리이자 예우였다.
제주의 서문을 덮으며: 그림과 겹쳐지는 풍경
탐라순력도가 그려진 바로 이곳 제주 현장에서 소중한 문화재의 숨결을 직접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찬 시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서는 길, 입구에 늘어선 야자수와 멀리 보이는 제주의 푸른 바다가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저 말 떼는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던 아내의 질문에 대한 답을 박물관 밖 제주의 풍경 속에서 다시 찾아본다. 말 떼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그들이 달렸던 땅과 그 위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역사는 방금 전 보았던 그림의 선들처럼 뚜렷하게 눈앞에 겹쳐졌다.
야자수 잎 사이로 부는 3월의 바람이 300여 년 전 이형상 목사의 옷깃을 스쳤던 그 바람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박물관에서 정독한 '제주의 서문' 덕분에 이제 마주할 제주의 바다와 오름은 어제보다 훨씬 더 깊고 묵직한 의미로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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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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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도 바라는 제주 <탐라순력도>의 국보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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