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은거지, 임실 청웅면 조항치
이완우
최시형은 은신처가 마련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은밀히 각지에 사람을 보내, 흩어진 도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동학체제의 정비를 서둘렀다.
갑자년 이후로부터 도인이라는 사람들은 혹 죽고 혹은 살아남은 사람도 있으며, 혹은 도를 버리고 서로 상통(相通)하지 않아, 오랫동안 발길이 끊어져, 피차간에 서로 보기를 원수 보는 것과 같이 하기도 하며 서로 왕래를 하지 않았다.
주인은 산으로 들어간 뒤, 몸은 산옹(山翁)이 되었고, 농사일에 극력 힘을 쓰며, 스스로 발각되고 또 노출될 위험을 없애 버렸다. 그러나 이즈음 선생의 집은 그 생활의 어려움을 말로 다하기 어려웠다. (윤석산 역주, <초기동학의 역사>, 123쪽)
이즈음 국내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 수천 명이 처형되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비롯 병인양요, 남연군묘 도굴사건, 각지의 민란에 이어 예언서라는 <정감록>이 나돌아 민심을 더욱 뒤흔들었다. 1868년 8월 정덕기라는 인물은 자신이 정도령이라 칭하며 난을 일으키려다 사형당하였다. 1871년 4월의 신미양요에 이어 비슷한 시기에 동학도 이필재가경상도 영해에서 교조신원을 내세우며 거사에 나섰다.
이필재는 거사를 준비하면서 측근을 통해 그리고 나중에는 직접 최시형을 찾아와 교조신원에 함께 나서길 간청하였다. 최시형은 대단히 신중한 품성의 인물이다.
이에 주인이 그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듣건대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여겼다. 다만 마음에 시험할 뜻이 있어, 며칠을 머물며 그 동정을 살펴보니, 하루에 서너 번 변하면서도 오직 한가지로 선생님의 원통함을 이야기하니, 이런 까닭으로 억지로 따르기는 하여도 미심쩍은 바가 있어 결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말하기를,
"천만 가지 일이 빨리 하고자 하면 실패하는 것이라. 물러나 머물면서 가을에 일을 일으키는 것이 어떠한가?"하니, 필제가 소리 높여 크게 말하기를
"나의 큰일을 그대가 어찌 물리쳐 멈추고자 하는가? 다시는 번거로운 소리를 하지 말라."(앞의 책, 147쪽)
최시형은 이필재가 수운의 기일을 택해 교조신원을 위해 영해에서 봉기하겠다는데 모른 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또 많은 도인들이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봉기를 묵인 또는 양해한 것으로 보인다.
이필재는 1871년 3월 10일 교조신원을 내세우며 영해에서 600여 명의 동학교도를 이끌고 봉기, 관아를 공격하고 부사를 처형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8월에 다시 조령에서 시도했으나 거사 직전에 체포되어 서울에서 능지처참 당했다.
이 사건으로 최시형과 동학도들은 다시 관의 극심한 추적을 받게 되었다.
최시형은 이필재의 '영해봉기'에 관여하게 되면서 다시 관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게 되었다. 일월산을 떠나 강원도와 충청도의 산간마을로 옮겨 다니며 피신하였다. 영월·정선·단양이 이 시기에 그가 거쳐간 지역이다.
강원도 정선의 접주인 유시헌(劉時憲)의 집에 은신하여 교단의 정비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지도급 인사들의 종교적 수련이 시급함을 인식하고 각지로 연통하여 1872년 초 겨울 강시원·전성문 등 지도급 인사 5명과 함께 소백산맥 갈래산의 적조암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드렸다. 종교적인 수련을 통해 동학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교단을 정비하고자 해서였다. 기도를 마친 최시형은 소회를 한 편의 시문으로 지었다.
태백산중에 들어 49일의 기도 드리니
한울님께서 여덟 마리 봉황을 주어 각기 주인을 정해 주셨네.
천의봉 위에 핀 눈꽃은 하늘로 이어지고
오늘 비로소 마음을 닦아 오현금을 울리는 구나.
적멸궁에 들어 세상의 티끌 털어내니
뜻 있게 마치었구나, 49일 간의 기도를.(윤석산, '해월 최시형의 신앙운동', <해월 최시형과 동학사상>, 144쪽)
처음 기도를 시작할 때는 5명이었는데 인근 마을에 소문이 나돌면서 신참 도인이 많이 늘었다. 기도를 마친 최시형은 마을 사랑방에 도장을 설치하고 무극대도의 요체를 강설하였다.
우리는 이제부터 완전히 같은 도인이 되어 생사, 고락을 함께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더구나 조난 중에 이곳에 이르러 다시 많은 도인을 얻으니 실로 감개가 깊습니다. 우리의 도는 사람을 대우하고, 물건을 다루는 데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대우함에는 하늘과 같이 하여 온 세상을 기화(氣化)할 수 있고, 물건 하나하나를 모두 하늘처럼 정중하게 다루는 데서 대도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이 두가지를 버리고서 도를 구한다면 아무리 신통한 조화를 부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곧 실지를 떠나 허무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대우하지 않고 물건을 하늘처럼 다루지 않는 사람이라면 천만번 경전을 외운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설법은 이어졌다. 천지만물을 아끼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조화로 이룩된 모든 물건도 그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쌀 한 줌, 흙 한 줌, 돌 한 개라도 소중하게 다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조화에 합하는 태도입니다. 물건을 함부로 대하여 마구 버리고 파손하는 자가 어찌 사람인들 귀하게 여기며, 하느님을 성심껏 모시겠습니까?
동덕 여러분, 우리의 주위에는 우리를 원수처럼 미워하는 무리가 가득하고, 우리 역시 전례 없는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들을 미워하지 말고, 저들의 물건을 박대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늘을 모신 사람이요, 그들의 물건도 하느님의 조화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고 어여삐 여겨 그들의 마음속에 가리워진 하느님을 키우도록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선사께서 깨달으신 천도의 진리랍니다. 우리가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 꾸준히 하느님을 모시면 언젠가는 반드시 오만 년의 후천개벽이 올 것입니다.(최동희, 앞의 책, 156~157쪽)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