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전(聖經大全) 동학 천도교 1세 교조 수운 최제우 선생의 직필경전을 해월 최시형 선생이 편찬한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는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그렇지만 또 다른 동학경전인 성경대전(聖經大全)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다. 해월 최시형 선생께서 동경대전을 편찬하시고 더욱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래서 1883년 계미중춘판(봄, 목판본)동경대전을 원본으로, 1890년대 초반 책 표지 제목을 성경대전(聖經大全)으로 바꿔 편찬하였다. 동경대전 출간 이후 모진 탄압을 피하기 위해 성경대전으로 편찬하였으며, 두 경전의 내용은 같다. 사진의 성경대전 필사원본은 동학대접주이자, 동학혁명군 총참모장을 지낸 김덕명 장군 후손이 보관해오다가 필자에게 기증하였다.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다. ⓒ 동학혁명기념관
동학혁명기념관
모든 종교에는 '경전(經典)'이 있다. 원래는 성인·현인이 지은 책이나 글 또는 불교의 교리를 적은 책을 일컫고, 유교의 교리를 지은 책을 경권(經券)이라 한다. 기독교에서는 성경이라 부른다.
조정에서 최제우를 처형할 때 그가 남긴 설법집을 비롯하여 많은 자료를 압수하여 불태웠다. 더 늦기 전에 남은 자료를 모으고 생존한 측근들의 기억을 되살려 기록하는 일이 최시형의 과제였다. 뒷날 "동학 교리의 체계화, 동학 조직의 재건과 지역적 기반의 확대, 경전의 집성, 제도와 의식의 확립, 정기적 수련 제도의 실시를 통한 지도자의 양성 등이 그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서는 '동학교리의 집성'과 '경전의 집성'에 대해 살펴본다. 이필재의 '영해봉기' 이후 다시 관의 추적이 강화되자 최시형은 더 깊은 산골 마을로 숨어들었다.
"그는 이어 제자 강수(姜洙)만을 데리고 태백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동굴 속에 살면서 14일을 나뭇잎으로 연명했다. 어느날 나무꾼의 도시락을 얻어먹었고 계속 나무꾼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이었다. 이때 그의 맏아들은 잡혀가 장사(杖死)되었고 얼마 뒤에는 그의 부인과 작은아들마저 모진 고초를 겪은 끝에 병사했다. 그의 혈통이 끊어짐은 물론, 혈혈단신의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지하에서의 포덕은 결코 그치지 않았다."(이이화, 앞의 책, 259쪽)
그는 포덕과 함께 동학의 경전 간행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동학 내부에는 그가 이미 1865년에 "구송(口誦)을 통해 제자들로 하여금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쓰게 하였지만, 이때 받아 쓴 글들은 필사로 된 것이었다. 해월신사는 이를 보다 분명하게 확정하기 위하여 '도적(道跡)' 및 '경전(經典)'을 판각하여 간행한 것이다.
조선조 말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한가닥 기댈 언덕이 되고, 이어서 원민과 항민을 호민으로 일깨워 반봉건·척왜척양의 근대민중혁명의 주역이 되고, 다시 3·1혁명의 중심이 된 동학의 대표적인 경전은 교조 최제우가 짓고 최시형이 간행한 <동경대전>이다.

▲동경대전(東經大全) 이 사진의 동경대전은 1883년에 펴낸 동경대전(東經大全) 계미중하판(목판본) 첫장 목록(目錄)이다. 동경대전 원본은 현재 천도교중앙총부에 소장되어있다.
천도교중앙총부
동학관계 사서에는 이외에 <용담유사>와 최제우의 출생에서 득도와 순도 그리고 최시형이 <동경대전>을 간행한 1880년까지의 동학역사를 담은 <최선생문집 도원기서> 등이 있다.
최시형은 1879년 강원도 인제군 남면 갑둔리 김현수의 집에 경전 간행소를 설치하고 동학의 경전 간행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인 1880년(경진년) 6월 14일 <동경대전>을 간행하였다.
최시형과 일부 동학도인들은 당초 스승의 글을 묶어 <최선생문집>으로 간행하였다. 얼마 뒤 재간하면서 '문집' 대신 '동경대전'이란 이름으로 바꿔 출간한 것이다. 제1대 교조 수운의 글을 '성인이 지은 글'로 격상하여 '경전'이라 한 것은, 당시 일반 도인들의 뜻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동학의 수난기에 최시형의 주도로 간행된 <동경대전>은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의 글을 모은 일종의 문집이다. '동경'이란 동학의 경전, '대전'이란 동학의 경전을 다 모은 큰 책이란 의미다.
어떤 글이 실렸을까, 주요 내용은 포덕문·논학문·수덕문·불연기연·축문·주문·입춘시·절구·강시·좌잠·화결시·탄도유심급·결·우음·팔절·우·제서·영소·필법·유고음·우움·통분·통유·의식·발문·간기 등이다.
최초의 판본인 <동경대전> 이른바 경진년판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최시형이 1883년 2월 충청도 목천군 구내리 김은경의 집에 경전간행소를 설치하고 1천부를 간행하였으나 이 판본도 현전하지 않는다. 같은 해 경주에서 목활자본으로 간행한 경주간판이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서울시 지방문화재 나 1ㅡ20099>로 지정되었다.
<동경대전>의 핵심은 아무래도 '포덕문'과 '수덕문' 그리고 '논학문'이다. 포덕이란 동학의 출현을 의미하며, 하느님의 큰 덕을 일반에 널리 알린다는 뜻이다.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대개 상고 이래로 봄·가을이 바뀌고 사시의 성하고 쇠함이 옮겨지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으니 이는 역시 하느님·조화의 자취가 천하에 소연한 것이다."
'논학문'은 동학의 본질을 밝히는 글이다.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수운이 직접 답하는 형식이다. 현대문으로 정리된 질문을 살펴본다.
1. 천령이 강림하였다는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었습니까.
2. 도의 이름을 무엇이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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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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