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02.21. 편의점 배송 물품을 카트에 적재 중인 신성균 님의 작업 모습.
임용현
시시각각 옥죄는 노동 통제 시스템
시멘트, 목재 등 건축용 원자재나 철강 같은 제품군의 적재 중량은 유통물류 제품에 비해 단위당 무게도 크기 때문에 최근까지도 과적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낮은 운임 구조가 더 많은 물량을 한꺼번에 운송하도록 내모는 것이다. 반면, 편의점 배송 등 유통물류 시장에서는 고물가에 따른 내수 침체 탓인지 과적 문제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요즘 유통물류 화물 노동자들의 가장 큰 고충은 운전 업무 외에 추가 부담해야 하는 노동의 과중함이다. 편의점 배송 등 유통물류 부문에 종사하는 화물 노동자들은 운전 업무에 더해 적재 상품 분류 작업을 포함한 상·하차 업무, 반품 처리 및 공병 회수, 거래처(각 점포 관리자)와의 소통에 이르기까지 많은 업무를 정해진 시간 내에 쫓기듯 수행해야 한다.
"아무래도 윙탑이나 트레일러 같은 대형 차량을 모는 화물차 기사님들은 장거리 운행을 많이 하시니까 과로 문제도 당연히 있을 테고, 또 중량물을 취급하시니 과적 문제도 여전히 계속될 수밖에 없겠죠. 저는 장거리를 뛰는 편이긴 하지만, 우리 업종은 물류거점이 전국에 쫙 깔려 있어서 장거리 운행이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는 수작업 비중이 꽤 높은 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여러 점포를 돌아다녀야 해서 중간에 쉴 짬이 도저히 안 나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성균 님과 12시간 가까이 붙어 지내며 느낀 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야말로 '빠듯한 한나절'이었다. 화물칸에서 물품을 내려 편의점 매장으로 옮기는 일부터 물류센터에서 출고된 물품을 수납하는 순간까지 온종일 시간과의 싸움·체력과의 전쟁이 이어졌다. 특히 편의점 배송은 편의점마다 도착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그로 인해 화물 노동자들은 높은 노동강도와 휴식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점착 시간이라고 정해진 시각에 맞춰 납품해야 하는 규정이 있어요. 가맹본부랑 물류센터에서 점포마다 물품이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정해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느 점포 점착 시간이 오후 1시면, 12시 전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1시 30분 이후에 들어가도 안 돼요. 이 시간대를 어기면 센터에서도 압박이 들어오고, 점포에서도 종종 항의를 받습니다."
유통기한이 짧은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배송이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이뤄지는 상품 검수 및 매대 진열 등) 점포 근무자의 업무 계획과 조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점착 시간을 둔다고 한다. 하지만 엄격히 준수해야 하는 점착 시간은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 밀도를 절로 강화한다. 만약 상차 작업이 지체되거나, 도로 사정으로 길이 막히거나, 심지어 점포 앞 주차 공간이 없어 늦어지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배송 지연 책임은 오롯이 화물 노동자가 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성균 님은 운전대를 잡는 동안이 차라리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말한다.
"따로 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요. 오전 배송 마치고 센터로 회차하러 올라오는 길에 밥을 먹으면 그때 잠깐 쉬는 거고, 센터 복귀해서 좀 바쁘게 움직이면 2회전 배송 나가기 전에 쪽잠은 잘 수 있어요. 그래도 저는 쉬엄쉬엄 일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에요."
불공정한 갑을 관계 벗어나 상호 대등한 관계로
화주사를 정점으로, 물류 전문 자회사, 그리고 실제 운송을 책임지는 운송사 및 화물 노동자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그동안 화물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체계적으로 억압해 왔다. 화주사가 물류정책 전반과 점착 시간 등 배송 기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 운송사는 화주 사의 요구에 맞춰 배송을 담당할 화물 노동자를 모집하고, 노선 배정과 운임 지급, 페널티 부과 등을 담당하는 식이다. 성균 님은 운송사로부터 본 배송 수행에 따른 정액 운송료를 받는다. 그나마 기본급이라도 주어지는 게 어디냐 싶지만, 원·하청 자본이 일방적으로 책정한 운임 방정식에 화물 노동자는 아무런 의견도 개진할 수 없다.
"저희가 노조에 가입한 뒤로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고 있지만 도대체 눈 하나 꿈쩍하질 않아요. 화물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나 몰라라 하면서, 기껏해야 매년 5만 원씩 찔끔 올려주는 기본운임으로는 길고 힘들게 일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화물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가 확대·적용됐으면 좋겠어요."
체력과 시간을 모조리 갈아 넣어야만 살아남는 이 구조를 바꾸려면, 우선 적정 운임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늘 하루 성균 님의 이동 거리는 총 300㎞에 달했다. 온몸이 소진될 때까지 일하지 않아도 누구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기반, 화물 노동자에게 안전운임제는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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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과 편의점 오가며 하루 300km... 체력·시간 갈아넣는 남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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