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3.12 10:25수정 2026.03.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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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저녁, 거실 식탁에 앉아 '법륜스님의 행복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관련 기사 : 남탓하는 습관을 바꾸는 공부, 다시 시작하다). 3단계 20주 과정으로 구성된 온라인 수업이다.
우리는 각자 갈등의 대상이 다르다. 직장에서는 상사나 동료 직원이 될 수 있고, 가족 안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남편, 자녀, 형제, 자매가 될 수도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갈등 없이 산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갈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나는 다른 누가 아닌 내가 편안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실천하기 위해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지난 2021년, 지금 참여하고 있는 수업 모든 과정을 마쳤다. 행복해지기 위한 공부를 한번 했다고 해서 깊숙이 박혀있는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공부한다. 그 수업 과정 중 내가 불편하고 힘든 상대에 관한 연구 과정이 있다. 대상은 각자 다르다. 나에게 있어 연구 대상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게 뭔지, 싫어할 때 어떻게 해주면 갈등이 해소되는지 연구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연구하다
아버지는 올해 83세다. 전쟁을 겪은 세대다. 찢어지게 가난한 산골 집안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일찍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피죽 한 그릇 먹기 힘들었던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 너무 배가 고파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구걸했던 유년 시절, 지독한 가난으로 배우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아버지의 기억을 추억이라 이름할 수 없다. 그건 아픔이다.
눈치도 빠르고 행동이 민첩한, 먹고 살기 위해 애쓰던 어린 소년이 군청 급사(예전에는 관공서에서 서류 전달, 청소, 등사, 손님 안내 등 사소하고 잡다한 일을 해줄 사람을 채용했다고 한다)로 취직하면서부터 아버지의 굶주림은 줄어들었다. 가진 것도 없고, 졸업장도 없는, 기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가 숱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누구보다 성실하고 강한 책임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의 연구 대상 1위다. 어떤 일 앞에서도 아버지의 판단만이 옳고, 당신이 다 해야 하고, 도무지 자식들의 말은 잘 듣지 않으신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 소통은 한계에 부딪치고 '아버지는 원래 저래, 대체 뭔 고집이래?' 하고 만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는 지금까지도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이다.
결혼하고 이사를 할 때면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를 한다. 나도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면서 꼭 잊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은 따로 보물 상자에 담고 다녔다. 그 중 제일 중요하게 지닌 건 아버지가 결혼할 때 준 글 한 자가 담긴 액자다.
아버지가 주신 글자

▲참을 '忍' 30년전 아버지가 내게 준 종이 한장..소중한 아버지의 유산이다.
김희
결혼 후 신혼여행을 다녀와 친정에 인사하러 들렀을 때 아버지가 '참을 인(忍)'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셨다. 지금은 기억에 없는 덕담이 분명 있었을 텐데, 종이가 적힌 글자만 가지고 있다. 이사를 하면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아버지 사진과 액자를 뒀다. 이 글자는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된, 날카로운 칼 끝이 심장을 겨누는 것과 같은 고통을 참아내는 의미의 한자어다.
아버지가 내게 전한 한 글자를 소중히 이고 지고 다니면서 '왜 이 글자를 적어주셨을까' 의문을 가진 적이 여러 번이다. 어쩌면 험난한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아버지의 지난 인생에서 가장 의미를 담은 글자가 아니었을까, 전쟁을 겪고 배고픔과 격동의 세월을 버티게 한 아버지만의 삶을 대하는 철학이 이 한 글자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혼자 해석하고 있다.
지난 세월을 담은 아버지만의 삶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아버지와의 평행선은 좁혀 가고 싶다. 30년 전 내게 준 한 글자에 담긴 아버지의 시간을 갈등 없이 마주하기 위해 계속 마음 공부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셨고 나는 그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노력이란 걸 하고 있다.
그래도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를 하면서 평행선이 조금 굽어지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아버지를 대하는 게 예전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향한 날 선 반항 대신 인정을 시작하면서 평행선은 서서히 좁혀지고 있다(관련기사:
"제발 걷지 마세요" 만류에도 매일 일출 사진 보내는 아버지).
평행선을 붙이지는 못해도 최대한 가깝게 하는 게 언젠가 마주할 아버지와의 이별 전 내가 꼭 풀고 싶은 숙제다. 이 숙제를 끝내는 날, 나는 딸이 아닌 한 사람으로 고단하고 힘든 삶을 잘 살아낸 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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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직장생활을 마쳤다. 이제 나는 자유인이다. 지금은 듀얼라이프, 도시와 시골 반반살기, 지금까지 나를 앞으로 나를 기록하는 글쓰기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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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다녀온 딸에게 아버지가 내민 '글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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