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아동, 기아 조작 사건'의 정범은 국가였다

2기 진실화해위의 '방조범' 꼬리 자르기를 넘어, 3기 진실화해위가 파헤쳐야 할 '앞단'의 진실

등록 2026.03.12 11:29수정 2026.03.1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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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만남 회의 중인 변호인과 피해모임 대표들.
첫 만남 회의 중인 변호인과 피해모임 대표들. 임남희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 회의실. 10여 명이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는 흔한 서류 뭉치 하나 없었다. 커피 잔이 놓인 테이블을 둘러싸고 공익법센터 '파이팅찬스'와 법률사무소 '원곡'의 변호사들, 그리고 해외입양피해, 집단시설 피해자 등이 마주 앉았다.

수백, 수천 장의 증거는 없는 자리였지만, 이들의 머릿속에는 지난 수십 년간 수만 명의 아동을 바다 건너로 보낸 수백, 수천 장의 조작된 호적과 기아발견조서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각자의 기억과 법리적 분석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들간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지난 2025년 11월 26일 종료된 제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의 결정문 이야기로 향했다.

"56명에 대해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국가의 사과를 권고했죠. 분명 의미 있는 첫걸음입니다. 하지만 그 결정문을 읽고 나면 묘한 기시감이 듭니다. 국가는 또다시 책임을 피할 퇴로를 열어뒀거든요."

최정규 변호사의 뼈있는 지적에 참석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2기 진실화해위는 입양기관이 아동을 부모 없는 기아로 조작하고, 기아발견을 신고 받은 지자체가 허위 호적을 발급한 사실 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가 밝혀낸 국가의 책임은 조금은 아쉽게도 절차과정에서 발생한 '뒷단'에 머물러 있었다.

즉 입양기관의 대표가 입양아동의 후견인이 되어 입양에 셀프 동의하는 기형적 구조를 방치했다거나, 해외로 출국하기 직전에 부양의무자를 찾는 공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형식적인 절차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즉, 진실화해위의 결정문 내용대로라면 국가는 입양기관의 일탈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무능한 '방조범' 내지 '관리자'에 불과했다.

카페에서의 대화는 점차 열기를 띠어갔다. 대화의 중심은 이 사건의 진짜 본질, 즉 아이가 처음 발견되어 시설로 넘겨지던 시점인 절차의 '앞단'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본질은 입양 가기 직전의 공고 부실이 아닙니다. 길을 잃거나 맡겨진 아이를 시설이 처음 인계받았을 때, 그때 국가 공권력은 무엇을 했느냐는 겁니다. 당시 구 경찰관직무집행법 제4조를 보면, 경찰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가족이나 연고자에게 통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통지를 해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려면 부모를 찾아야 할 수사 및 탐문의 절차를 지켜야 했죠. 하지만 경찰은 미아 아동이 발견되었는데도 부모를 찾아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기억하는 '이제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입양 아동의 서류가 그 증거였다. 부모들은 아이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경찰서를 찾아 전전했지만, 경찰의 탐문 수사망은 철저히 닫혀 있었다. 그 사이 입양기관들은 아이가 실제로 발견된 장소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기관 앞마당(예컨대 도봉구 쌍문동 533-3)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허위 기아발견조서를 인쇄공장의 인쇄물처럼 찍어냈다.

 각종 기아발견조서. 기아발견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적어야 함에도 미리 만들어둔 도장으로 일률적 서류를 만들었다.
각종 기아발견조서. 기아발견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적어야 함에도 미리 만들어둔 도장으로 일률적 서류를 만들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물리적으로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특정 입양기관 문 앞에만 동시다발적으로 버려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만약 같은 날 수십명, 같은 해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특정 입양기관에 기아로 발견되었다면, 이것은 집단적 재난이나 전쟁같은 이유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할 구청장들은 서류상 명백히 불가능한 이 기계적인 주소지 중복 패턴을 뻔히 보면서도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집단적 미아, 기아의 발생에 대한 최소한의 현장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이 탐문 의무를 뭉개고 지자체가 허위 공문서에 묻지마 도장을 찍어주는 사이, 아이들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본래의 정체성이 완벽히 삭제된 채 '완벽한 고아'로 자신을 잃고 조작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형법상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범죄가 국가 기관의 묵인 아래 자행된 것이다.

대화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실종'사건이 '미아'발견으로 둔갑되는 이 거대한 불법 시스템을 누가 통제했는가로 옮겨갔다. 일선 경찰의 태만이나 말단 구청장의 행정 착오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1960~1970년대는 지방자치가 살아있던 시대가 아닙니다.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직접 꽂아 넣는 관선 공무원이었습니다. 경찰 역시 마찬가지죠. 당시 조직도상 지방경찰국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인사권과 지휘명령권은 내무부 치안국이 100% 독점한 철저한 '국가경찰'이었습니다."

서초동 카페에 모인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명확하고 간명했다. 말단 지자체와 일선 경찰의 묵인은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었다. 내무부와 보건사회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정부의 철저한 수직 통제망 아래에서, 국가 공권력이 고의로 탐문과 보호 의무를 전면 방기한 시스템적 범죄였다. 입양기관이 조작된 서류를 내밀고 지자체가 가짜 호적을 만들어 중앙 부처가 기계적으로 해외이주를 승인하는 이 컨베이어 벨트는, 국가가 단순히 방조한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가 주도한 '강제 실종' 사건이다.

커피잔이 모두 비워질 즈음, 3기 진실화해위를 향한 요구 사항이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지난 2월 26일 3기 진실화해위가 공식 출범했다.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은 해외입양 사건 300건을 1호 사건으로 공동 신청했다. 송상교 3기 진화위원장 역시 해외 입양과 집단수용시설 등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전담할 '조사3국 업무준비TF'를 구성했다.

다가올 3기 진실화해위의 조사는 입양 절차 뒷단의 행정적 미비점을 지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건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아동이 최초 발견된 시점부터 국가가 어떻게 연고자 확인 의무를 조직적으로 묵살했는지, 수많은 아동이 한 주소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다는 물리적 불가능을 어떻게 공권력이 승인했는지 파헤쳐야 한다.

방조자가 아닌 정범. 3기 진실화해위가 마주해야 할 진실의 이름이다. 이 거대한 아동 송출 공장의 진짜 설계자가 누구였는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서류상 고아로 세탁되어 낯선 땅으로 보내진 수만 명의 빼앗긴 인생 앞에 국가는 영원히 면죄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
#파이팅챈스 #해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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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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