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기아발견조서. 기아발견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적어야 함에도 미리 만들어둔 도장으로 일률적 서류를 만들었다.
진실화해위원회
물리적으로 전국 각지의 아이들이 특정 입양기관 문 앞에만 동시다발적으로 버려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만약 같은 날 수십명, 같은 해에 수백명의 아이들이 특정 입양기관에 기아로 발견되었다면, 이것은 집단적 재난이나 전쟁같은 이유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할 구청장들은 서류상 명백히 불가능한 이 기계적인 주소지 중복 패턴을 뻔히 보면서도 최소한의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집단적 미아, 기아의 발생에 대한 최소한의 현장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이 탐문 의무를 뭉개고 지자체가 허위 공문서에 묻지마 도장을 찍어주는 사이, 아이들은 불과 한 달여 만에 본래의 정체성이 완벽히 삭제된 채 '완벽한 고아'로 자신을 잃고 조작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형법상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범죄가 국가 기관의 묵인 아래 자행된 것이다.
대화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실종'사건이 '미아'발견으로 둔갑되는 이 거대한 불법 시스템을 누가 통제했는가로 옮겨갔다. 일선 경찰의 태만이나 말단 구청장의 행정 착오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일까. 대답은 '아니오'였다.
"1960~1970년대는 지방자치가 살아있던 시대가 아닙니다. 1961년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시장과 도지사는 대통령이 직접 꽂아 넣는 관선 공무원이었습니다. 경찰 역시 마찬가지죠. 당시 조직도상 지방경찰국이 존재했지만, 실질적인 인사권과 지휘명령권은 내무부 치안국이 100% 독점한 철저한 '국가경찰'이었습니다."
서초동 카페에 모인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명확하고 간명했다. 말단 지자체와 일선 경찰의 묵인은 우발적인 실수가 아니었다. 내무부와 보건사회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정부의 철저한 수직 통제망 아래에서, 국가 공권력이 고의로 탐문과 보호 의무를 전면 방기한 시스템적 범죄였다. 입양기관이 조작된 서류를 내밀고 지자체가 가짜 호적을 만들어 중앙 부처가 기계적으로 해외이주를 승인하는 이 컨베이어 벨트는, 국가가 단순히 방조한 것이 아니라 국가 자체가 주도한 '강제 실종' 사건이다.
커피잔이 모두 비워질 즈음, 3기 진실화해위를 향한 요구 사항이 명확하게 정리되었다. 지난 2월 26일 3기 진실화해위가 공식 출범했다.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은 해외입양 사건 300건을 1호 사건으로 공동 신청했다. 송상교 3기 진화위원장 역시 해외 입양과 집단수용시설 등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을 전담할 '조사3국 업무준비TF'를 구성했다.
다가올 3기 진실화해위의 조사는 입양 절차 뒷단의 행정적 미비점을 지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건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뒤집어야 한다. 아동이 최초 발견된 시점부터 국가가 어떻게 연고자 확인 의무를 조직적으로 묵살했는지, 수많은 아동이 한 주소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다는 물리적 불가능을 어떻게 공권력이 승인했는지 파헤쳐야 한다.
방조자가 아닌 정범. 3기 진실화해위가 마주해야 할 진실의 이름이다. 이 거대한 아동 송출 공장의 진짜 설계자가 누구였는지 밝혀내지 못한다면, 서류상 고아로 세탁되어 낯선 땅으로 보내진 수만 명의 빼앗긴 인생 앞에 국가는 영원히 면죄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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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 아동, 기아 조작 사건'의 정범은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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