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해저 출수 유물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홍광희 학예연구사
홍광희 학예연구사
- 이번 조사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베트남 측의 수중 발굴 지원 요청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9월 베트남국립역사박물관과 해양조사 관련 MOU를 체결하면서 이번 현장 조사로 이어졌습니다."
쩌우투언 해역이 첫 무대가 된 것은 이곳이 수세기 동안 해상 교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한·베트남 공동연구 보고서와 홍광희 연구사 설명을 종합하면, 이 일대는 예부터 '붕따우'로도 불린 큰 만으로 선박의 정박과 보급에 유리한 곳이었다. 15세기 항구 지도에서도 사끼 하구와 연결된 해협 지형으로 확인된다. 빈쩌우 해안이 '난파선의 묘지'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해역에서는 1999년 17세기 난파선, 2009년 8~9세기 아랍계 선박, 2013년 13~14세기 난파선 등 여러 시기의 선박과 유물이 확인됐고, 2013년 발굴에서는 4만 점이 넘는 유물이 나온 바 있다. 공동연구 보고서에는 1999년 17세기 난파선 발견 이후 빈쩌우 해역에서 민간 유물 탐색과 도굴이 이어졌고, 당시 느슨한 해저 유산 관리 속에 일부 유물이 시장에 유통되거나 개인이 보관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번 조사는 이렇게 오랫동안 유적 가능성이 제기돼 온 쩌우투언 해역을 국가 기관이 정식 절차에 따라 조사하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이번 조사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난파선이 실제로 묻혀 있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지난해 사전조사에서는 지표층에 흩어져 있는 유물을 일부 발견했지만, 배가 실제로 묻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실체가 확인되면 그 배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워 정식 발굴로 이어갈 계획입니다."
조사 체계, 현장 운영 경험 공유
따라서 이번 조사의 핵심은 당장의 유물 인양에 있지 않다. 난파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고, 향후 정식 발굴로 이어질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이번 조사는 한국 수중고고학 50년이 축적해 온 조사 경험과 기술을 해외 현장에 처음 적용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홍 연구사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에는 수중조사를 수행할 전문 인력과 장비, 전용 조사선 운용 체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번 공동 조사는 단순한 유물 확인을 넘어 조사 체계와 현장 운영 경험을 공유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 베트남의 해양 유산 조사 여건과 향후 계획은?
"베트남은 해양유산 발굴을 수행할 인력과 장비가 부족합니다. 기존에는 민간 중심으로 인양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조사는 그런 방식을 따르지 않고 국가 기관과 기관이 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있습니다. 난파선과 유물이 확인되면 예산과 선박, 장비 등을 준비해 정식 발굴로 이어가야 합니다."
홍 연구사는 이번 조사가 베트남에서도 새로운 시도라고 강조했다. 민간 중심 인양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허가와 절차를 밟고 조사 방향과 기준을 함께 마련하는 협력이라는 점에서다.
신안선 발굴로 시작된 한국 수중고고학 50년은 이제 첫 해외 수중조사 현장에 닿았다. 지난 50년이 우리 바다 속 역사를 끌어올린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그 경험과 기술을 이웃 나라와 나누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베트남 빈쩌우만 쩌우투언 해역에서 시작된 이번 공동 조사는 그 첫 장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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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바다에 내린, 한국 수중고고학 50년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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