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3.19 15:30수정 2026.03.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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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같은 길을 걷는다. 익숙한 건물들, 익숙한 간판들, 익숙한 냄새. 삶 속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변화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 변화는 어디까지나 내가 위치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정된 것만을 느낄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일상을 혼자만이 겪는 특별한 일이 아닌, 누구나 다 그렇다는 말을 내뱉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결핍으로 느껴진다.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같은 자리만 맴도는 상황. 발은 분명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마음은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다. 낯선 공기, 처음 보는 풍경, 길을 잃어도 괜찮을 것 같은 설렘. 목적 없이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장면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잠깐은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은 항상 먼저 따져야 할 것들이 있었다. 시간은 나의 삶을 '평범'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 사용하기에도 빠듯하고, 돈은 한정되어 있고, 삶은 항상 현실을 먼저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결국 여행이라는 잠깐의 사치는 미뤄진다.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그런 내가 여행 대신 택한 방법이 있다. 타인이 찍어 올린 사진들을 보는 것. 여행지의 풍경,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나간 자리, 이름도 알 수 없는 숲과 길. 화면을 넘기다 보면 수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중 몇 개는 내 마음속을 파고든다.
물 위를 가르는 배 한 척, 귀여운 동물들, 햇빛이 부서지는 풀밭. 나는 그 이미지들을 저장해 두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걸 그냥 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하나 둘씩 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스케치북에 옮겨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정된 종류의 마커펜으로 사진 속의 색감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단계별로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 색상을 미숙한 손놀림으로 흉내 내는 것은 '운' 그 자체였다. 하지만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풍경을 내 눈 앞으로 옮겨 놓고 싶은 욕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을 반복할수록 변화가 생겼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 여행을 떠난다면 고래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떠다니고 싶다는 상상을 바탕으로 그려본 그림입니다.
유수영
사진을 보고 떠오른 장면을 그릴 때였다. 고래가 헤엄치는 바닷물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겹쳐 올리다 보니, 정지된 장면인데도 마치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했다. 붓 대신 마커를 들고 있었지만, 손끝에서 물살이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배의 방향, 물 위의 흔들림. 그 모든 것이 그림 안에 있었고, 나는 그림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배 위에 타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숲을 그릴 때는 또 다른 기분을 느꼈다. 빛이 닿는 부분과 닿지 않는 부분을 나누고,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색을 쌓아 올리다 보면, 숲의 공기를 직접 느끼는 착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숲의 냄새를 맡아본 적은 없지만, 색을 덧입히는 과정에서 어떤 온도와 습도가 떠올랐다. 한 발짝만 더 들어가면 길을 잃을 것 같은 그런 깊이감이랄까. 그림은 분명 평면인데, 그 안에는 입체적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을 그려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저들처럼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상상을 하면서요.
유수영
푸릇한 초원 위의 양들을 그린 날은 조금 달랐다. 잔잔한 시냇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 그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이 장면이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걸까. 아마도 그건, 내가 원하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묶여 있는 상태. 그래서 아무 방해 없이 탁 트인 곳에서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일 아닌 장면이지만 그 안에는 알듯 말듯한 무거운 감정이 들어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대신 느끼고 싶은 곳을 그린다. 이 한마디의 말은 어떤 변명도 아니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도 아니다. 그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보조 설명일 뿐이다.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가만히 쳐져 있는 대신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어떤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간다. 어떤 사람은 차를 몰고 도시를 벗어난다. 그리고 나는 책상 위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풍경을 따라 그린다. 방법은 다르지만, 어쩌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양이들 타인의 여행기에 등장한 내용을 상상하며 아크릴마카로 그렸습니다.
유수영
마흔둘에 다시 펜을 잡았다. 오래 전 놓아버렸던 도구를 다시 쥔다는 건 생각보다 어색한 일이었다. 손은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선은 마음대로 표현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것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의식해서 표현해도 어려울 뿐인 동작이 되었다.
그래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도 맞지만 정체된 상태로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루를 보내는 방식 중 하나로 그리는 시간을 남겨두고 싶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그린 그림들은 결코 잘 그린 그림은 아니다. 프로들 가운데서는 나의 그림을 보고 풋내기 축에도 끼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이 담겨 있다. 어디에도 가지 못했던 날들, 대신 그림을 그리면서 이겨냈던 시간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나만 알고 있는 시간들이다.
어떤 이는 내게 그림을 왜 그리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그리는 동안에는 한결 상쾌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 생각도 같이 움직인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아주 미세하게 심장이 요동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나를 더 그린다. 가지 못한 곳을 하나 더 만들고, 그 안에 잠깐 머물다 나온다. 그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전혀 없었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채로 포기하고 있지도 않다. 나는 가지 못한 곳들을 그리며, 그 안에서 잠깐씩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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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지나가는 인물과 장소, 고단한 날들에서 흘러나온 진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길 바라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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