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규홍 동상 벌교에서 주먹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그에게서 유래했다.
김재근
여정의 종착지는 벌교읍이다. 득량에서 뜻하지 않게 쌍화차에 홀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해가 서산마루에 가까웠다. 벌교읍 초입 작은 공원에 이 고을이 낳은 인물들이 소개되어 있다. 대종교의 나철, 작곡가 채동선, 그리고 머슴살이(담살이) 의병장 안규홍.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은 안 의병장 때문에 나왔다. 장터에서 일본 헌병이 조선인에게 횡포를 부리는 걸 보고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몇 대 쳤더니 쭉 뻗어버리더란다. 그의 기개를 상징한 듯 불끈 주먹을 쥔 동상이 강렬했다.
곧바로 향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건축가 김원이 지은 이 문학관은 소설이 땅속에 묻혔던 진실을 길어 올렸듯 산자락을 파내어 세웠다. 1만 6500장의 육필 원고가 압도적이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필사했다는 원고지 더미는 경외심마저 일었다. 작가의 손때 묻은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보며, 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이바지해야 하는지 새삼 되새긴다.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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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얼굴상 음각으로 조각된 모습이 양각으로 보이며, 움직이는 듯도 했다. ⓒ 김재근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답사에 나섰다. 문학관 바로 앞에는 현 부자네 집과 무당 소화네 집이 있다. 중도방죽과 철다리와 김범우집과 홍교를 지나 '태백산맥 문학 거리' 앞에 차를 세웠다. 거리는 현대와 과거가 공존했다. 술도가와 보성여관과 금융조합 등 소설 속 공간이 펼쳐졌다.
거리의 끝에서 만난 조정래 얼굴 조각상. 음각으로 조각된 모습이 양각으로 보이며, 움직이는 듯도 했다. 이용덕이 창안한 역상(逆像) 조각 기법이란다. 그 요술 같은 모습에 가까이 또는 멀리, 좌로 또는 우로 오가며 마법에 빠져들었다.
땅거미가 내리는 벌교천, 소화다리(부용교) 위에 섰다. 건립 당시 일본 국왕 연호를 딴 이름이다. 여순사건의 회오리로부터 시작해 6·25 대격랑의 아픔을 간직한 다리다.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숱한 총살형이 이루어졌다. 이를 조정래는, 소화다리 아래 갯물 갯바닥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는 문장으로 묘사했다.

▲나, 벌교살아요! 이 한마디가 벌교를 아니 보성을 잘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김재근
건너편 다리에 걸린 "나, 벌교 살아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묘하게 자부심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벌교 사람이 들으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읽혔다. "나, 보성 살아요!" 어쩌면 저 한마디가 벌교를 아니 보성을 잘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다리 아래서 바다오리들이 갯바닥을 뒤지며 저녁 만찬을 즐긴다. 하나둘 불빛이 켜지는 다리 위에서 오랫동안 바다오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어쩌면 이런 게 여행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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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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