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마르코폴로
그 간절함 때문일까? 글쓴이도 덩달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2019년 2월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온>을 통해 이화림(본명 이춘실)을 잠깐 소개한 적이 있다(관련 기사 :
백범 김구가 가장 신임했던 비서는 왜 사라졌나). 그리고 2019년 6월 <진보평론> 여름호(80호)에 '코뮤니스트 항일여전사 이화림'을 게재했다. 2021년엔 책 <우리 역사에서 왜곡되고 사라진 근현대 인물한국사>에서 '코뮤니스트 항일여전사'란 제목으로 이화림을 자세히 다뤘다.
이화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이봉창, 윤봉길과 함께 한인애국단 3인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 투탄 의거(1932) 당시 숨은 조력자가 바로 이화림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토록 위대한 항일 투사를 우리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하는 현실의 무심함이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는 시민 누구나 아는데 왜 이화림을 알지 못했을까? 더구나 직접 총을 거머쥐고 일본군 진지에 최근접해 선무 작전을 수행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항일 투사를 왜 몰랐을까? 민족 사랑과 휴머니즘을 실천한 항일 지사 이화림의 존재가 왜 망각의 인물이 되었을까 안타까웠다.
그러나 의문은 쉽게 풀렸다. 남쪽에선 코뮤니스트 항일 투사이자 여성이라는 사실이 이화림의 존재를 망각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군의관으로 참전한 것을 문제 삼아 1990년대 당시 국가보훈처는 서훈을 수여하지 않았다. 북쪽 또한 1956년 '8월 전원회의' 사건 이후 연안파(조선의용군)가 숙청되면서 이화림 역시 완전히 외면 당했다. 연안 시절 이화림과 함께했던 연변 작가 김학철은 김일성을 허풍이 심한 인물로 비판한 바 있다.
반공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20세기 냉전 시대는 끝났다. 21세기도 사반세기가 지났다. 항일전쟁시기, 독립유공 서훈의 여부는 항일 투쟁의 여부로 판단해야 옳다. 코뮤니스트든 아나키스트든 민족주의자든 이념이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그 길이 독립운동사를 온전히 복원해 풍성하게 만드는 길이다. 조선의용대 출신 박차정이 해방 50주년인 1995년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 받았다. 이제 해방 80주년이 지났다. 낡은 이념의 잣대를 거두고 전 생애에 걸쳐 민족을 사랑하고 일제와 맞서 싸운 이화림 지사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해야 마땅하다.
이화림은 한인애국단 시절 나물을 팔고 자수를 놓으며 삯빨래로 벌어들인 돈을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으로 기부했다. 항일전쟁 시기, 독립군으로 용맹스럽게 투쟁했다. 해방 이후엔 의사로서 휴머니즘을 실천했으며, 검소한 생활로 어린이문학 작가들을 발굴, 지원하는 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99년 이승을 떠나면서 전 재산을 조선족 동포학교에 기부할 정도로 민족 사랑을 실천했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 주권 정부답게 적대 관계와 불신을 종식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준비해야 할 역사상 책무를 안고 있다. 그 첫걸음이 북쪽에 앞서 이화림 지사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추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화림 회고록 - 중국 대륙을 누빈 한 여성 독립 운동가의 일대기
이화림 (지은이), 박경철, 이선경 (옮긴이),
마르코폴로, 2026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처음엔 교육문제로, 그 다음엔 근현대사 속 거짓 신화를 벗겨내고 왜곡된 인물 연구로, 그러다가 퇴직 후엔 다시 시민교육의 절실함 속에 시민교육을 국가수준교육과정으로 제도화하여 성숙한 시민을 길러낼 정치교육, 노동인권교육, 환경생태교육, 정보문해력 교육을 포함한 민주시민교육을 북서유럽처럼 공식화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남북 모두 외면한 독립지사 이화림, 잊어선 안되는 이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