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말자씨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서십자각 앞에서 열린 ‘2026년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41회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유성호
판결문에서 사건의 경과를 육하원칙으로 서술한 문단을 지나면, 우리는 판결문 2항 '공소사실의 요지'라는 문단을 만나게 된다.
"피고인(여, 19세)은 1964. 5. 6. 20:00경 피고인의 주거지로부터 150미터 가량 떨어진 노상에서, 당시 초면이었던 피해자 노OO(남, 21세)이 귀가하려는 피고인의 어깨를 잡고 키스를 시도하고, 이를 거절하는 피고인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피고인의 배 위에 엎드려 재차 키스를 시도하는 과정을 수회 반복하던 중 혀를 내밀어 피고인의 입 속으로 넣자 피해자의 혀를 1.5센티미터 가량 물어 끊어 피해자에게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고, 그 결과 발음의 현저한 곤란을 당하는 불구가 되게 하는 중상해를 가하였다."
1964년 최말자 님을 기소한 검사가 쓰고 1965년 1월 12일 부산지방법원이 유죄로 판결한 이 공소사실이 과연 증명되었는지 2025년에 다시 심리하고 판단한 것(재심)이 이 비평 대상 판결이다.
이 공소사실의 요지를 읽으면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필자가 피고인과 같은 나이였을 때 법과대학에서 읽은 '형법총론' 교과서에 적힌 다음 구절 때문이다.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이므로 不法(불법) 대 法(법)의 관계이며, '法은 不法에 양보할 필요 없다'라는 명제가 기본사상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재상, <형법총론> '정당방위' 중)
우리 형법 제21조 제1항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의 정당방위 성립요건 중 '상당한 이유'는 '방위의 필요성'을 뜻한다고 하여 다른 피난방법이 없을 것(보충성)을 요구하지 않고, 정당방위를 하여 침해된 법익이 정당방위로 지킨 법익의 가치를 초과하지 않을 것(균형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형법 해석론이다. 형법 제21조 제1항의 문언과 해석론, 그리고 형법 교과서의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명제를 나란히 읽은 다음, 이 판결문의 공소사실 요지를 붙여 읽으면 자연스러운 의문이 제기된다.
열아홉 살 미성년자(당시 민법상 성년은 만 20세였다)가 '어깨를 잡고 강제 키스',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배 위에 엎드려 강제 키스'하는 상대방을 향해서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강제추행 기수 또는 강간 시도 상태(피고인은 노OO을 강간미수로 고소하였었다)라면, 나의 법익, 나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방위하기 위해 적합한 수단은 무엇인가?
이 상황에서 상대방의 혀를 깨무는 것 외에 효과적인 방위수단은 무엇인가?
상대의 몸뚱이가 덮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성폭력에 저항하며 가해자의 혀를 물어 혀가 1.5cm 끊어졌다면 정당방위의 '상당한 이유'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성폭력범은 아무 죄가 없고 성폭력을 방어한 사람은 중상해죄의 벌을 받아야 하는가?
정당방위에 관한 형법 지식이 있건 없건, 그 상황의 인간이 불법에 맞서기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즉각적이고 유효한' 저항
1965년의 법원은
정당방위가 아니고 중상해 유죄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025년 법원은 중
상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고, 정당방위가 성립하여 무죄라고 판단했다.
중상해 결과 발생에 관하여, 대상 판결은 형법 제258조 제2항에서 규정한 '불구'(형법 제258조 제2항이 쓰고 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낙인과 비하 표현이므로 대체되어야 할 용어이다)는 '단순히 신체의 일정 부분에 대한 완전성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 사지절단 등의 신체 중요 부분의 상실이나 중대 변경 또는 시각, 청각, 언어, 생식기능 등의 중요한 신체 기능의 영구적인 상실과 같이 건강상태를 중대하고 불량하게 변경하는 신체의 중요한 부위의 중대한 불구만을 말한다고 한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 요청에 부합한다'라고 전제하였다. 그 후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살펴 피해자(노OO)가
혀 봉합 수술을 받고 판결 선고 후 육군에 입대하여 병역판정검사에서 '갑' 등급을 받고 정상적인 군 복무를 마쳤다는 새로운 증거와 지인의 진술을 토대로 피해자에게
'신체의 중요 부분 상실이나 중대 변경 또는 중요한 신체 기능의 영구 상실이 발생하였음이 합리적 의심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하였다.
다음으로
법원은 축소사실인 상해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피고인의 행위는 상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공소사실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당시 상황을 두루 살펴 "피고인이 다른 사람에게 구호를 요청하거나 피해자(노OO)와 전면적인 몸싸움을 통해 피해자를 제압하는 방식으로
위법한 침해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신체접촉 시도를 저지한 것은
즉각적이고 유효하게 피해자의 침해행위를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행위는 자신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려고 한 행위로서 형법 제21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라고 하였다.
과거의 오판을 넘어, 오늘의 최말자들을 구하자
"피고인은 무죄"
판결문 첫 장의 이 판결 주문은 중상해죄의 해석과 사실 인정을 바로잡음으로써, 그리고 성폭력 피해 상황에 있는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해 성폭력범의 혀를 물어 끊은 행위를 '유일하고 즉각적인 방어수단'으로 보고 정당방위를 인정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대상판결의 피고인 최말자님의 변호인은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죄가 되는 사건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죄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검찰과 법원의 잘못으로 오판되었던 것이다"라고 일갈한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현재도 폭력 사건, 특히 젠더폭력 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아 최말자 님처럼 피고인이 된 피해자들이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교제폭력 피해자들이 폭력 피해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저항한 행위가
'침해의 현재성'이 없다고 하여, 또는
'방위행위의 상당성'이 없다고 하여
피고인으로 처벌받고 있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젠더폭력 가해자의 침해행위의 성질을 살피고,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방어행위를 할 때 침해의 현재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거나, 공격행위와 방어행위의 균형성 판단에 신중을 기하여 정당방위의 상당성 요건을 정밀하게 심사함으로써, 정당방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몇 십 년 후에 나타날 또 다른 최말자 님을, 우리는 지금 구해야 한다.
* 김수정,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력 정당방위 사건 재심판결', <사법정의와 여성 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2026년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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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말자 재심 무죄 판결, 젠더폭력 대한 정당방위 적극 인정 계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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