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계를 묻는 작은 질문들 ‘눈 마주치기’, ‘칭찬하기’ 같은 문장에 O 또는 X로 답하는 사회성 그룹 활동지. 아이들은 말 대신 표시로 자신의 어려움을 표현한다.
이수정
이번 주 초등 사회성 그룹에서는 친구 관계를 주제로 한 활동을 진행했다. "친구에게 이런 행동이 어렵다"는 문장에 ○ 또는 ×로 답하는 활동이었다. '먼저 인사하기', '눈 마주치기', '칭찬하기', '도와주기' 아이들은 말없이 표시를 해 나갔다.
결과를 확인하던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섯 명의 아이들 모두 '눈 마주치기'와 '칭찬하기'에 X를 표시한 것이다. 사실 이 그룹은 경도의 지적 어려움이 있거나 ADHD, 혹은 경도 자폐 스펙트럼 특성을 가진 아이들이 모인 자리다. 학교 생활과 또래 관계에서 반복적인 어려움을 겪어 온 아이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전부 X를 표시한 종이를 보니 마음 한쪽이 묵직해졌다.
"왜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이유를 물었지만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연필을 만지작거리거나 책상 모서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교실 안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한 아이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칭찬할 기회가 없었어요."
한 아이의 그 고백이 상담실 안을 휘저은 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누군가는 발끝만 보고, 누군가는 활동지 모서리를 손끝으로 계속 말아 올렸다. 칭찬이라는 단어가 이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격려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의 언어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칭찬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도 아니었다. 칭찬을 건넬 만큼 관계가 이어진 경험 자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관계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은 또래와의 상호작용이 짧고 불안정하다. 대화가 길어지지 않고, 오해가 생기기 쉽고, 작은 갈등도 쉽게 단절로 이어진다. 친해질 기회를 얻기 전에 멀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학교에서는 협동과 배려, 발표와 참여를 강조하지만 관계 형성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그 과정은 늘 평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잘하지 못하면 지적을 받고, 규칙을 놓치면 혼나기도 한다. 또래에게 인정받는 경험보다 실수로 주목받는 경험이 더 많이 쌓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를 바라보고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장면 자체가 생기기 어렵다. 칭찬은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잘했어", "멋지다", "고마워"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갈 장면 자체가 만들어지기 어렵다. 칭찬은 기술 이전에 관계 속에서 생기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칭찬은 기술이 아니라 관계에서 자란다
사회성 그룹에서의 주요 목표 중 하나는 사회적 기술훈련이다. 인사하는 방법, 눈을 마주치는 법, 대화를 이어 가는 문장들.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 등. 물론 필요한 훈련이다. 하지만 '칭찬할 기회가 없었다'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들에게 정말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먼저 경험하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와 반복해서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툴러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안전한 관계. 그 안에서 칭찬도, 눈맞춤도, 웃음도 자란다.
"그럼 오늘 우리 서로 칭찬을 해주자. 아주 작은 것도 좋아."
활동을 마친 뒤 아이들에게 서로 한 가지씩 칭찬을 해 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칭찬할 거리를 찾기 위해 서로를 힐끗거렸다. 그 눈맞춤이 곧 칭찬의 시작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림 잘 그렸어."
"웃는 얼굴이 예쁘다."
"욕을 안 해서 멋지다."
짧고 어색한 문장이었지만, 그날 교실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처음으로 또래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넸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그 말을 받아 보았을지도 모른다. 칭찬은 대단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관계가 존재한다는 신호였다. 아이들의 주고받는 눈빛과 칭찬으로 그날 상담실에는 따스한 봄기운이 오래도록 남았다.
신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잘 적응하기를 바란다. 친구도 사귀고, 웃으며 학교에 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작은 기적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칭찬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 말은 단순한 어려움의 표현이 아니라,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고백처럼 들렸다. 아이들은 칭찬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칭찬할 관계 안에 들어가기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것은 칭찬하는 방법이 아니라, 칭찬이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와 계속 만날 수 있고, 서툴러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경험. 어떤 아이에게는 친구 한 명, 인사 한 번, 짧은 칭찬 한 마디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세련된 칭찬의 기술이 아니라, 서툴러도 괜찮은 '함께하는 시간'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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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상담센터 원장이자 언어치료사 심리상담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뜻한 치유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공동저서 '글루미릴레이' 공동저서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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