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동대지진 당시 자경단에게 살해당한 조선인 구학영을 위해 세워진 묘지와 비석, 감천수우신사.
천승환
-사적지에 방문할 때 행하는 특별하고 경건한 루틴이 있다고 들었다.
"추도비 같은 곳에 갈 때 한국의 소주와 잔, 향, 그리고 때로는 두루마기까지 챙겨간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비석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비석에 적힌 글씨에는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청소 후에는 술을 한 잔 따르고 향을 피운 뒤,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며 절을 올린다. 이 의식을 마친 후에야 사진과 영상, 3D 스캔 등으로 기록을 남기고, 작업이 끝나면 다시 한번 "잘 마쳤습니다"라고 절을 하며 마무리한다."
-정성 들여 현장을 기록하는 동안 겪은 특별한 일화나 성과가 있다면.
"사이타마현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위령비를 뙤약볕에서 닦고 있을 때였다. 한 일본인 할머니가 다가와 누구의 비석인지 물었고, 설명을 들은 후 자리를 떴다. 그런데 30분 뒤, 할머니가 아들, 며느리, 손자를 모두 데리고 꽃을 사 와서 헌화했다. 손자에게 "일본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이런 일도 있었다"고 직접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편견을 깨고 큰 감명을 받았다.
또 사이판에는 과거 위안부들이 강제 동원되었던 '위안부 동굴'이 있다. 현지의 1, 2세대에게만 알려져 있고 3세대에겐 잊혀가던 곳이라 위치를 아는 사람이 단 세 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을 수소문해 도움을 받아 동굴을 기록해 냈고, 이 기록이 훗날 역사 방송 프로그램인 '선을 넘는 녀석들'에 소개되며 세상에 다시 알려진 뿌듯한 기억도 있다."
-한편에서는 일본의 '역사 지우기' 시도도 집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맞다. 군함도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당시 강제징용 사실을 안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군함도는 여전히 안내판을 설치하지 않았고 사도광산은 접근하기 힘든 수 ㎞ 떨어진 곳에 안내관을 지었다. 신주쿠의 근대유산역사관에 갔을 때는 대만 사람의 월급 봉투를 조선인에게 지급한 증거라며 왜곡 전시하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군마현의 조선인 강제징용 추도비 역시 우익 단체의 압박으로 결국 강제 철거되어 물리적으로 삭제당했다. 현재는 뜻있는 사람들이 증강현실(AR) 방식으로 빈터 위에 가상의 비석을 띄워 기억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도 심각하다. 주변국들이 이토록 역사를 왜곡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정학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현재 조선족 등 소수민족을 명확하게 통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한 번 빼앗기고 나면, 후대에는 그것이 완벽하게 그들의 것으로 탈바꿈되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빼앗기지 않도록 치열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주변국의 혐오와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 내부를 향한 뼈아픈 자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의 관동대지진 학살 기저에는 외국인을 배척하는 '배외주의'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치우친 정치관념을 가진 일부 시민들이 건대입구의 중국인 밀집 지역에 가서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혐오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과거의 아픈 역사로부터 도대체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배운 것인지,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혐오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당한 조선인들을 위해 민단에서 세운 위령비로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수습하는 활동을 했던 이성칠 선생의 유지를 이어 세운 위령비, 관동대진재한국인위령비.
천승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일본 사회 내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양심적인 목소리와 연대의 움직임이 있나.
"다행히 일본 사회 곳곳에는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곳이 우베 지역의 '장생탄광'이다. 1942년 해저 탄광 지반이 무너져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수몰된 참사였는데, 일본 시민단체들이 이 역사를 자발적으로 연구해 2024년 2월 전 세계 다이버들과 함께 수중 탐사에 나섰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대만인 잠수사 웨이수씨가 수중 탐사 5분 만에 혈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며 심정지로 사망하는 가슴 아픈 희생도 있었다. 그럼에도 국적을 초월하여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은 큰 시사점을 준다."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들 한다. 역사 기록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많은 이들이 이 문장을 신채호 선생이 말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신채호 선생은 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문장에서 '민족'이라는 단어에 맹목적으로 매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대한 역사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일은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일이지만, 국가에만 모든 것을 맡겨놓을 수는 없다. 결국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국가의 일원으로서 애국하는 마음으로 역사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천승환 작가의 프로젝트명 '불령선인(不逞鮮人)'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불령선인'은 일제강점기 당시 말 안 듣는 조선인을 일컫는 멸칭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진짜 불령선인이 되어, 역사 수정주의를 통해 감추고자 하는 일본의 거짓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의지로 지었다. 하지만 현장을 다니며 생각이 바뀌었다. 무작정 학살의 아픔만을 고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이타마현의 할머니나 장생탄광의 시민들처럼 그 속에서도 피어났던 인류애적인 이야기도 함께 다면적으로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과 일본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우호'를 향해 나아가는 것,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과거를 교훈 삼아 반성하는 것. 그것이 렌즈를 통해 현장을 기록하는 궁극적인 이유다."
▲ 숨겨진 조선인 징용의 역사를 찾아서 기록한다. 천승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부 ⓒ 아웃라이트
▲ 조선인 강제징용의 현장에서 역사의 실체, 천승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2부 ⓒ 아웃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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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저널리스트 차종관입니다. 시민사회·사회연대경제·임팩트생태계 등을 출입하며 사회변화를 기록합니다. 대학언론의 위기, 주체적인 죽음 설계, 취약계층 주거권 보장 등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는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에서는 당사자언론을 연구합니다. 대학 내 언론자유 및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시민공익활동에 관한 정책 제안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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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사적 기록하는 천승환 "교과서 실린 역사는 현실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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