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지역사박물관
여경수
나는 발제 전에 이들 전시물을 천천히 둘러보며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하면 임종국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평생을 친일파 연구에 바친 학자로,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연구소가 완성한 <친일인명사전>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기록한 귀중한 문헌이다.
창립 35주년, 사람으로 치면 장년에 접어든 이 연구소가 걸어온 길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전시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여러 차례 참고했다. 사전에 등재된 법학자로는 전봉덕, 유진오, 홍진기 등이 있다.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고위직 경찰이었고, 유진오는 조선임전보국단 등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홍진기는 일제 판사로 복무했다. 이들은 광복 이후 친일 행적을 지운 채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의 사회지도층으로 행세했다. 그들의 후학들 중에 이들을 여전히 찬양하는 행태가 남아 있으니,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그 삶을 은근히 동경하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고향 구미로 눈을 돌리면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간혹 구미 시내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시지부 현수막을 볼 때마다 지역 차원의 친일 청산이 얼마나 더딘지를 새삼 실감한다. 지역에서 친일 인사를 조사하고 밝히는 일은 중앙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연고와 인맥이 얽혀 있고, 지역 유지의 후손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구미에는 장진홍 의사 동상, 왕산 허위 기념관, 박희광 의사 동상 등이 있다. 하지만 기려야 할 인물이 아직 너무 많다.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허형식 장군은 이육사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노래할 때 떠올렸다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고향에서의 기념사업은 보잘것없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활동한 해위 김정묵, 신간회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최관호와 박상희 등도 마찬가지다. 박상희는 훗날 대통령이 된 박정희의 형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일제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추모에 그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친일 행적을 저지른 이들의 행위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 임종국의 친일인명조사자료
여경수
언젠가 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것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직시하는 용기의 표현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 용기가 부족했다. 법학 논문을 쓰면서도, 헌법 수업 시간에도, 나는 끝내 그 이름들을 정면으로 불러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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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구미에 독립운동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바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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