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정보공개청구 발표 기자회견 24년 2월 세월호참사 피해자 및 시민 불법사찰 문건 정보공개청구 발표 기자회견
4.16연대
2021년 사참위의 문건 열람은 2020년 9월 국정원장의 약속에 따라 이루어졌다. 국정원은 ▲위원회가 요청한 검색어로 확인된 모든 자료 제공 ▲문건의 조사 대상 여부는 위원회가 판단 ▲검색어 입력 방식 외 조사가 필요한 사안을 요구할 경우 협력 ▲본부 외 지역 등 서버 문서고까지 포함한 조사 등 포괄적 협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21년 1월에야 국정원 문턱을 넘은 조사관들에게는 '세월호', '세월號'로 검색어가 제한된 자료만 주어졌다. 열람한 문건 사본도 온전하지 않았다. 보안성 심사를 거치며 정보 출처, 희생자 가족의 실명, 보고 경로 등 핵심 정보가 모두 비식별 처리됐다.
조사관들은 문건을 즉시 입수하지 못했고, 매일 국정원에 출근하다시피 하여, 조사할 내용을 일일이 글자 그대로 컴퓨터로 옮겨 쳐야 했다. 이렇게 작성한 메모조차 국정원의 검토를 거쳐야 반출할 수 있었다. 결국 사참위는 위원회 종료 직전인 2022년 4월에야 2,193건을 입수할 수 있었다. 요청한 조사 대상 문건 3,075건에 훨씬 못미쳤다. 입수한 자료들에는 조사관들이 본 것보다 더 많은 부문이 또 삭제된 상태였다.
'비식별'로도 지워지지 않은 사찰의 흔적
수정액으로 지우고 종이로 덧대 가린 문건 속에서도 사찰의 흔적은 선명했다. "(가족대책위) ○○○총무가 강력 만류했음에도... 대신 좌파단체 집회에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방침"(2014.05.29.), "2학년 1반 ○○○ 엄마 등 2가구만 인양에 반대하고 나머지는 시신 조기 수습 필요성에 공감하고"(2014.10.07.), "유가족들은...짜장면이나 시켜먹고"(2014.11.25.) 등 유가족의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제멋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단식농성을 했던 한 유가족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현 정부 반대를 위한 이슈로 이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유관부서(○○○○○○) 이첩"(2014.08.21.)됐다. 대공·방첩 관련 혐의가 있어 해당 전문 부서에 이첩했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런데 또 이 문서 사본이 사참위에 제출될 때에는 마치 이런 기록은 없었던 것처럼 삭제가 되었다.

▲국정원 비식별처리 문건 국정원이 비식별처리하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 제출한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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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지역 동향'이라는 이름으로 무려 822일간 지속된 기록은 I.O.가 유가족을 '시민'이 아닌 '적'으로 돌려세웠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이 문건을 작성한 I.O.는 국정원법을 이유로 소속 부서와 이름을 알 수 없이 연번(일련번호)으로만 식별됐다. 그 중 연번143은 "사고 직후부터 자총 안산지회, 단원서, 안산시청(수습지원단) 관계자들과 긴밀 공조, 언론 등 대외기관 노출 없이 유족 특이동향 파악 및 건전 유족을 통해 좌파-단원고 유족간 조직적 연계 차단 활동"(2014.11.10)을 수행했다고 본인의 성과를 기록했다.
"○○○○○○ 요청(3.20限)으로 세월호 1년 관련 비판단체·유가족 특이동향을 작성"(2015.03.20.) 했다는 내용에서는 조직적 사찰 정황도 확인된다.
그러나 왜, 누가, 어떤 근거로 이런 문서를 작성했는지, 누가 지시했으며, 어디로 보고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의 대인조사 비협조 때문이었다.
'국정원이 CCTV가 되어야 한다'라는 궤변
사참위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정원에 불법 사찰을 인정하고, 독립 조사기구 설치하여 조사하고 관련자 고발·징계를 권고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사참위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어떤 목적과 방법으로, 누구의 어떠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였는지에 관한 확인이 전혀 되지 못한 상황에서…국정원에 의한 민간인 사찰 의혹을 기정사실로 단정"(2022.06.03.)했다고 반박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2015-2017)은 저서에서 "민간인 사찰 의혹은 (국정원을 공격하는) 단골 메뉴"라고 표현하여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이유없이 민간인을 사찰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또, I.O. 제도를 우리 사회 내 취약 요소를 모니터하는 "마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CCTV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제도"라고 했다.

▲국가정보원 본청 2021년 국정원 창설 60주년 원훈
국가정보원
그러나 CCTV는 누군가의 사생활을 장기간 추적하고, 정치적 성향을 정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가 아니다. 게다가 CCTV는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는 장치도 아니다. 설치 위치와 목적은 제한되고, 촬영 범위는 법률로 규제된다. 특히 개인의 내밀한 생활 영역은 엄격하게 보호된다. 마찬가지로, 국정원 I.O.는 대한민국 곳곳을 아무런 제한 없이 들여다보는 CCTV가 아니며, 세월호참사 유가족의 분노와 슬픔, 일상을 감시할 이유도 없다.
더욱이 이 국정원이라는 CCTV에는 국정원 정보를 제공받는 정책결정권자, 즉 당시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돼 있다. 그 결과 국정원 문건에서 유가족은 하나 같이 '요주의 인물', '무리한 요구'를 하는 '불순 세력'으로 왜곡됐다. 이는 불법적인 사찰일 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진상규명 활동에 개입한 행위였다.
그 결과 유가족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고, 진상규명 활동은 혼란을 거듭했다. 유가족들은 피해자로서의 지위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했다.
"확인할 수 없다"는 비겁한 변명을 멈추라
세월호참사 유가족이 사찰의 피해를 구제받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름이 그대로 나와 있는 국정원 기록이 공개되어야 한다. '화이트칠' 아래 숨겨진 유가족의 이름과 문장이 복원되어야 하며, 사찰 문건은 이제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은 유가족의 정보공개 청구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는 답만 반복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국정원 직원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한 국정원 직원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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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면담까지 요구한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특성을 내세워 여전히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찰을 저지른 기관이 스스로 은폐한 기록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피해자에게 온전히 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저지른 불법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가리는 자, 범인이다. 이 말을 그저 가벼운 농담으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변정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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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CCTV'를 자처한 국정원의 유가족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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