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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혁명 후 충북, 민주화의 봄은 왔지만 꽃피우지 못했다

[청주 기억여행 1945~1960 38화] 학생·노동·농민 민주화 운동, 5.16 쿠데타로 좌절

등록 2026.04.20 14:46수정 2026.04.2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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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충북 청주 현대사를 복원하기 위해 청주 기억여행을 떠납니다. 해방 직후부터 1960년 4·19 혁명 시기까지 청주에서 있었던 정치, 사회 사건을 살펴보고 지역 현대사를 재구성하고자 합니다. 이 작업은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근현대사 역사 텍스트를 만드는 길입니다. 또한 민주주의, 인권, 평화라는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기자말]
'부정선거 책임자를 엄중 처단할 것'으로 시작되는 청주대학교 교수단의 성명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학생들의 4·19혁명 구호가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정·부통령 선거 재실시", "이승만은 하야하라"였음에 비추어 볼 때 말이다.

부정선거 책임자와 경찰관 및 폭력배 처벌,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며 곡학아세하는 사이비 학자를 학원으로부터 추방하라"는 교수단의 주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혀 새로운 주장이 있었다.

청주대학 교수단의 성명서

"공직을 이용하여 부정 축재한 자는 고하를 막론하고 중형에 처하라", "과도내각 조직에 있어서는 양심적이고 과감성 있는 재야 인사를 널리 등용하라"는 이러한 주장은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을 뛰어넘어, 다가올 제2공화국에서의 정치·행정·교육 운영 시스템에 대한 초보적인 요구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 4월 27일 청주대학 교수단 성명서가 발표되기 이틀 전인 4월 25일, 서울에서 전국 27개 대학 교수단의 가두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에 이정규 청주대 학장이 참여했다(<청주대학보> 제37호, 1960.5.6). 즉 청주대학 교수단 성명서는 전국 대학 교수단의 시위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특히 이정규 학장의 정치적 소신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사퇴 성명은 새로운 국면을 조성했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었고, 혁명 세력은 제2공화국의 주체 세력으로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하지만 4월 혁명을 주도한 세력인 학생과 시민들은 혁명을 지속시킬 만한 정치적 비전과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지역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던 것으로 충북 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충북 지역 4월 혁명의 주체 세력은 고교생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대통령 사퇴 성명을 전후로 모금 운동과 선무반 활동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선무반을 조직해 치안 질서 확립에 참여했다. 청주학생연합선무회(회장 최춘원)에는 청주시 내 중·고등학생, 청주대, 충북대생 180명이 참여했다. 선무반은 경찰차를 제공받아 치안 유지와 교통정리, "치안에 협조해 달라"는 선무 방송과 거리 청소를 했다.

선무반 활동과 더불어 4월 혁명 희생자 돕기 모금 운동이 전개되었다. 충북에서 최초의 모금 활동은 4월 24일 청주여상과 충주고 학생들이 시작했다. 4월 25일에는 청주시 내 7개 조의 가두 모금반과 2개 조의 순회 모금반이 구성되었다.


모금반에는 청주 시내 중·고·대학생이 참여했고,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상 학생 위문금 모금'이라는 완장을 차고 모금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도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모금에는 각계각층이 참여했는데,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도 참여했다. 5월 1일 청주 시내 석교초등학교 전교생이 각 10환씩 모금을 했다.

이승만 하야 이후 행정과 치안의 공백

이승만 대통령이 사퇴한 직후 경찰과 행정 체계는 불안정했다. 4월 27일 정인택 충북도지사는 사임 의사를 표명했고, 청주시장 한정구도 사표를 정 지사에게 제출했다. 문학동 경찰국장, 김상기 사찰과장, 주봉관 청주경찰서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경찰 최고 수뇌부의 잇따른 경질과 사퇴로 일선 경찰들은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충북 지역은 4월 혁명기에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지만 치안 공백은 어쩔 수 없었다. 반공청년단 충북도단부는 간부진의 총사퇴 결의를 추진했다. 반공청년단 충북도단 훈련부장 김종호가 '국민들이 증오의 눈으로 이 단체를 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 단체를 해산하는 것이 옳다'고 4월 27일 표명했다. 김종호는 이날 충북도단장 송경섭을 방문해 이와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충북신보> 1960.4.28).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과 학생, 교육계·사회 인사 등 지역 유지들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충청북도 시국수습대책위원회는 4월 30일 오후 2시에 결성되었다. 이종대 임시의장은 7인 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가 시·군 수습위원회 측과 실제적인 사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청주대생 김현수·박종희, 충북대생 최원춘·정혜열도 시국수습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대책위원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았다.

- 5월 3일 오후 10시경, 청주 시내 모충동에서 학생복을 입은 청년 약 25명이 전 자유당 재정부장 최아무개씨가 경영하는 기와공장에 나타나 기와 50여 장을 파괴하고, (중략) 경찰과 시국대책위에서 진상을 조사 중이다.

- 청원군 옥산면에서는 주민 50여 명이 동군 출신 도의원 조아무개씨 댁(조 수석)과 지서에 대하여 보복행위를 기도했으나, 시국수습대책위가 경찰과 학생 선무반을 파견해 사태를 수습했다.

충북의 3·15 부정선거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중앙 및 각 시·도와 병행해 진행되었다. 정인택 도지사는 5월 1일 정부로부터 해임 발령을 받았다. 5월 13일 황종율 지사가 부임한 뒤 10일 만에 12개 시장·군수 전원이 해임되었고, 10개 경찰서장도 면직되었다. 각 시·군 총무·내무과장 전원도 교체되었는데, 대부분은 각 시·군 교육청 서무과장으로 좌천 발령되었다. 충북 도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사 태풍이었다(이승우, <도정반세기>, 1996).

청주지검은 6월 2일 정인택 도지사, 문학동 경찰국장, 김상기 사찰과장을 소환해 심문했다. 이들은 공무원 친목계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 4할 사전투표, 공개투표, 투표율 조작, 유권자 매수, 각 기관·업체를 통한 부당 선거자금 염출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6월 13일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정인택, 문학동, 김상기가 구속되었고, 이기영 내무국장은 불구속 처리되었다. 7월 5일 오전 10시 청주지법 제1호 법정에서 첫 공판이 개정되었으며, 위의 4명과 이헌구(전 보안과장), 박흥용(전 교통안전협회 부회장)이 재판을 받았다.

8월 13일 문학동은 병보석으로 석방된 뒤 일본으로 도피했다. 그는 한일회담 종료 이후 귀국해 형사처벌을 면했다. 하지만 이기영 충북도 내무국장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는 청주형무소 수감 중 정신질환이 발병해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지 며칠 만에 "나는 결백하다"고 절규하며, 2층 입원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11월 5일 민의원은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안',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안', '부정축재처리 특별법안', '특별재판소 및 특별검찰부 조직법안' 등을 마련했다.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안은 대상자 문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후 법무부는 1961년 2월 25일, 7년간 공민권이 제한될 자동 적용 대상 1차 명단으로 이승만과 자살한 이기붕 등 609명을 공포했다.

1961년 1월 19일 기준, 충북에서 부정선거와 관련해 특별재판을 받게 될 인물은 다음과 같다. 정인택, 이기영, 문학동(도피 중), 김상기, 이헌구(부정선거 자금조달), 박흥용(부정선거 자금조달), 김종길, 이○주, 연창희, ○기풍, 이철규, 서풍두, 김윤배, 하창운, 장병석, 박래운 등 총 16명이다.

반민주행위자 충북 조사위원회(위원장 김종승)는 1961년 1월 19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조사위원회는 당시 경찰서 분·실장, 자유당 핵심 당부 위원장, 반공청년단 시·군 정·부단장, 검사장, 차장검사, 지청장, 형무소장, 계호과장, 대한노총 도 책임자 등을 조사 대상으로 정했다.

반민주행위자 공민권제한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공민권이 제한되는 자(자동케이스)와 심사를 받는 자(심사케이스)의 수가 확인되었다. 충북은 자동케이스 37명, 심사케이스 495명이었다. 그러나 이후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해당 법적 조치는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봄이 왔건만

학생과 시민들에 의한 민주주의 혁명은 사회 곳곳에 봄의 기운을 잉태시켰다. 노동·농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노동3권이 철저히 부정되었던 노동계는 4월 혁명 직후 노조 설립에 착수했다.

국내 유일의 기간산업체인 충주비료공장에서는 5월 14일 오후 1시 노동조합 결성식을 가졌다. 사측의 집요한 반대 공작을 무릅쓰고 출범한 노조(위원장 박율임)는 전체 종업원 700명 중 540명이 가입했다.

교사들이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교육 민주화에 앞장서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청주시 초등교원노동조합은 5월 30일 오후 6시 중앙초등학교 강당에서 100여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창립식을 가졌다.

이들은 "4월 혁명 정신을 받들어 교육의 자주성을 견지하고 교육자의 권익을 옹호하며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위원장에는 박종복, 부위원장에는 김영희, 김석제가 선출되었다.

하지만 교원노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6월 24일 청주시 초등교원노조와 중등교원노조는 자진 해산을 결정했다. 양 노조는 "교원단체연합이 민주주의적 운영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해산을 결의한 것이다. 자주적 교원노조 운동은 싹도 틔우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다.

충북 지역 노동계는 자유당 정권하에서의 부당해고와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투쟁을 전개했다. 청주전매공장 노동자 1000여 명은 5월 10일 자유당 정권에서 부당 해고된 동료 노동자 이문석의 복직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남전(한전의 전신) 청주지점 노조는 5월 12일 자유당과 유착됐던 현 간부진의 총사퇴를 요구했다.

4월 혁명 이후 농민들은 도내 곳곳에서 수리조합 민주화를 요구했다. 5월 25일 청원군 오창면 여천리·화산리·유리 지구 주민 약 300여 명은 청주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청미수리조합장, 이사 등은 기만정책을 쓰지 마라', '여천특설지구 철폐 반대', '도당국은 책임을 지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도청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역에서의 4월혁명>, 2010).

엽연초 경작조합원들의 배상금 인상 운동도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국내 엽연초는 우량 엽연초로 해외 수출을 개척해 전매 이익금이 연간 230억 환에 이르렀다. 하지만 경작 농민들에 대한 배상이 현실화되지 못해 전국 농가에서는 생산비 상승으로 극심한 어려움과 궁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충북 도내 농민들의 엽연초 배상금 인상 요구안은 40~50% 수준이었다. 전매 당국은 애초 7% 인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충북지역 농민들을 포함한 전국 경작 농민들의 투쟁 결과, 정부는 11월 11일부터 23% 인상을 결정했다.

충북지역 혁신계 득표 현황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시 충북지역 혁신계 득표 현황
▲충북지역 혁신계 득표 현황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시 충북지역 혁신계 득표 현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학원계와 노동·농민 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정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7월 29일 시행된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몰락하고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충북에서 혁신계 후보 7명이 출마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청주에서 출마한 김춘성 후보만이 유의미한 득표(16.9%)를 기록했을 뿐이다. 혁신계의 참패라 할 수 있다.

청주에서의 4월혁명은 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였다. 이승만 대통령 퇴진 이후 학교·노동·농민 부문에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이듬해 발생한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특히 서울과 경상도 등지에서 벌어진 통일운동과 2대 악법 철폐 운동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주대학교수단 #엽연초경작조합 #교원노조 #학원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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