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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 네 식구의 1.4평 단칸방,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주 봄 기행 8] 이중섭미술관은 2027년까지 개축 공사중... 기념관에 배어 있는 작가의 흔적

등록 2026.03.26 10:45수정 2026.03.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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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부터 3월 9일까지 제주를 여행했다.[기자말]

나는 2년여 전 서울미술관에서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 처음으로 이중섭을 마주했다. 일본으로 떠나보낸 아내 마사코와 태현, 태성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에 특히 마음이 머물렀고, 그를 따라 그의 삶과 작품을 더듬어 보았다. 제주에 온 김에 이중섭기념관을 찾아 그의 진면목을 보고 싶어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의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올 즈음 도착한 이중섭미술관은 아쉽게도 2027년까지 개축 공사 중이었다.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가 발길을 옮겨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본관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오히려 기념관 곳곳에 배어 있는 흔적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서귀포 이중섭 거리 입구. 현무암 돌담 위에 화가의 은지화 속 게와 소가 조형물로 새겨져 있어 여행객을 반긴다.
서귀포 이중섭 거리 입구. 현무암 돌담 위에 화가의 은지화 속 게와 소가 조형물로 새겨져 있어 여행객을 반긴다. 전갑남

연보와 키오스크에 새겨진 치열한 숨결

전시실 내부로 들어서니 연보를 통해 그의 짧은 생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었다. 1916년에 태어나 1956년, 마흔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의 삶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거쳐, 전쟁을 피해 이곳 서귀포까지 내려와야 했던 유랑의 세월이 연보의 행간마다 짙게 스며 있었다.

전성기라 부를 만한 시기 없이 이어진 고단한 기록 속에서도, 1951년 서귀포에서의 11개월은 가족과 온기를 나누었던 생애 가장 따뜻한 시간으로 남아 있었다.

 전시실 한편의 키오스크. 디지털 화면을 통해 화가의 독특한 은지화와 유화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다.
전시실 한편의 키오스크. 디지털 화면을 통해 화가의 독특한 은지화와 유화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다. 전갑남
 전시실 한편의 키오스크. 디지털 화면을 통해 화가의 독특한 은지화와 유화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다.
전시실 한편의 키오스크. 디지털 화면을 통해 화가의 독특한 은지화와 유화 작품들을 한 장씩 넘겨볼 수 있다. 전갑남

전시장 한편의 키오스크 앞에 서서 작품들을 한 장씩 넘기자 그의 독특한 화풍이 서서히 펼쳐졌다. 은박지를 송곳으로 긁어낸 그 예리한 선들은, 가난이라는 결핍마저 예술의 도구로 삼았던 화가의 처절한 집념이었다.

담배갑 속 은박지를 펴서 그린 은지화에는 굶주림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화가의 고독한 투쟁이 배어 있었다. '소'를 그린 거친 선에서는 시대를 향한 응축된 힘과 포효가 느껴졌고, 아이들과 물고기가 어우러진 장면에서는 가족을 향한 화가의 한없이 순한 시선이 드러났다. 디지털 화면 너머임에도, 그 선과 색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화가의 뜨거운 숨결을 전해주고 있었다.


 이중섭기념관 안. 화가의 삶을 집약한 연보와 관련 자료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이중섭기념관 안. 화가의 삶을 집약한 연보와 관련 자료들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전갑남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 격정적인 붓 터치와 살아 꿈틀거리는 선에서 화가의 집념과 시대를 향한 포효가 느껴진다.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 격정적인 붓 터치와 살아 꿈틀거리는 선에서 화가의 집념과 시대를 향한 포효가 느껴진다. 전갑남

"당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기념관 한쪽 벽면에 걸린 "당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 드는 때도 있었어요"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발걸음이 무겁게 멈췄다. 그 말에는 남편을 향한 아내 마사코의 지독한 기다림과 불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45년, 태평양전쟁의 와중에도 오직 사랑 하나만을 믿고 현해탄을 건너온 마사코. 화가는 그녀에게 '이남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평생의 안식처로 삼았지만, 현실의 거센 파도는 그들을 오래 붙잡아 주지 못했다.


서귀포에서의 시간은 그들에게 생애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다. 이중섭은 아내의 발가락까지 사랑스레 그려 넣었고, 아내는 그의 거친 손을 잡고 가난을 기꺼이 견뎌냈다. 그러나 지독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는 결국 그녀를 다시 일본으로 떠나게 했다. 잠시의 이별이라 믿었을 그 시간이 이토록 길어질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편지가 바다를 건넜지만, 종이 위의 문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허기가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그 문장은, 단순히 물리적 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이별의 공포를 홀로 견뎌낸 처절한 사랑의 고백처럼 읽혔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징검다리 삼아 그 모진 세월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

1.4평, '소의 말'이 들려오는 좁고도 넓은 방

 이중섭 화가가 피난 시절 살았던 서귀포 초가집. 소박한 돌담과 짚지붕이 당시의 척박했던 삶을 짐작게 한다.
이중섭 화가가 피난 시절 살았던 서귀포 초가집. 소박한 돌담과 짚지붕이 당시의 척박했던 삶을 짐작게 한다. 전갑남
 식구가 실제 거주했던 1.4평의 단칸방 내부.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법한 비좁은 공간에 화가의 사진이 외롭게 놓여 있다.
식구가 실제 거주했던 1.4평의 단칸방 내부.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법한 비좁은 공간에 화가의 사진이 외롭게 놓여 있다. 전갑남
기념관을 나와 돌담 너머 나지막한 초가집으로 향했다. 피난 시절 네 식구가 실제로 몸을 비비며 살았던 실제 거주지였다. 좁은 마당을 지나 처마 밑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본 아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듯한 1.4평의 비좁은 공간. 눈앞의 실재하는 그 작은 방 앞에서 우리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말 여기서 네 식구가 함께 지냈다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서 뜨거운 여름도 나고, 시린 바닷바람 부는 겨울도 버텼을 텐데…."

짧은 대화 뒤로, 그가 견뎌야 했던 생활의 무게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열린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그 좁은 방 안에서는 너무 과분한 손님처럼 느껴졌다. 그때 아내가 벽면에 소박하게 걸린 시를 발견하고 나를 불렀다. 아내는 그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 두북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내리는 빛나도다 - <소의 말>의 전부

시를 다 읽은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이 왜 그렇게 소를 많이 그렸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이 좁은 방에서 견딘 외롭고 서글픈 삶을 저 '참된 숨결'로 이겨내려 했던 거 아닐까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에게 소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무거운 현실을 짊어지고 끝내 '맑고 빛나는 빛'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화가 자신의 영혼이자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작았던 1.4평의 방은, 그렇게 화가의 예술혼이 가득 차 있는 가장 넓은 우주가 되어 있었다.

다시 대할 그날을 기약하며

초가집을 나와 '이중섭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화가의 이름을 딴 길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길가에 세워진 조각상과 그림들 위로 그의 고독한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바다로 나가 게를 잡았고, 그 미안함을 화폭에 담아 게를 그려 넣었다. 서귀포는 그의 삶에서 가장 낮은 자리였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예술적 영감과 가족의 행복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유토피아였는지도 모른다.

2년 전 서울에서 보았던 그 편지화 속의 푸른 빛이 이 바다에서 온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전시장 유리에 갇혀 있던 그림들이 이곳의 바람과 파도 소리를 만나 비로소 온전한 생명력을 얻는 듯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을 안심시키려던 그의 애틋한 문장이 이곳에서는 다른 의미로 들려온다. 정말로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서귀포의 바람을 마주했다. 비운의 천재가 아닌, 뜨겁게 가족을 사랑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 그의 처절했던 삶은 이제 슬픔이 아닌, 우리 시대를 위로하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으로 바다 위에 빛나고 있었다.

 이중섭 거리 풍경. 화가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안내판 너머로, 이제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예술의 거리가 펼쳐진다.
이중섭 거리 풍경. 화가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안내판 너머로, 이제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예술의 거리가 펼쳐진다. 전갑남
오늘의 산책은 비록 닫힌 미술관 문 앞에서 시작되었으나, 오히려 그의 숨결을 더 생생하게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다시 문을 연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면, 오늘의 햇살과 이 작은 방의 온기가 함께 떠오를 것 같다. 그때 마주할 그의 그림들은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거리의 바람을 머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3월 3일부터 3월 9일까지 제주를 여행했다.
[기자의 말] 서귀포 이중섭 거리를 거닐며 1.4평 좁은 방에 깃든 화가의 고독과 사랑을 마주했다. 거친 '소의 말' 속에 감춰진 참된 숨결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이중섭의 진면목을 기록하고자 한다.
#제주도 #이중섭기념관 #이중섭거리 #이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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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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