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구가 실제 거주했던 1.4평의 단칸방 내부.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법한 비좁은 공간에 화가의 사진이 외롭게 놓여 있다.
전갑남
기념관을 나와 돌담 너머 나지막한 초가집으로 향했다. 피난 시절 네 식구가 실제로 몸을 비비며 살았던 실제 거주지였다. 좁은 마당을 지나 처마 밑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본 아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멈췄다. 성인 한 명이 겨우 누울 수 있을 듯한 1.4평의 비좁은 공간. 눈앞의 실재하는 그 작은 방 앞에서 우리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정말 여기서 네 식구가 함께 지냈다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서 뜨거운 여름도 나고, 시린 바닷바람 부는 겨울도 버텼을 텐데…."
짧은 대화 뒤로, 그가 견뎌야 했던 생활의 무게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열린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그 좁은 방 안에서는 너무 과분한 손님처럼 느껴졌다. 그때 아내가 벽면에 소박하게 걸린 시를 발견하고 나를 불렀다. 아내는 그 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 두북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내리는 빛나도다 - <소의 말>의 전부
시를 다 읽은 아내가 조용히 말했다.
"선생이 왜 그렇게 소를 많이 그렸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이 좁은 방에서 견딘 외롭고 서글픈 삶을 저 '참된 숨결'로 이겨내려 했던 거 아닐까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에게 소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무거운 현실을 짊어지고 끝내 '맑고 빛나는 빛'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화가 자신의 영혼이자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작았던 1.4평의 방은, 그렇게 화가의 예술혼이 가득 차 있는 가장 넓은 우주가 되어 있었다.
다시 대할 그날을 기약하며
초가집을 나와 '이중섭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화가의 이름을 딴 길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길가에 세워진 조각상과 그림들 위로 그의 고독한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바다로 나가 게를 잡았고, 그 미안함을 화폭에 담아 게를 그려 넣었다. 서귀포는 그의 삶에서 가장 낮은 자리였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예술적 영감과 가족의 행복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유토피아였는지도 모른다.
2년 전 서울에서 보았던 그 편지화 속의 푸른 빛이 이 바다에서 온 것임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전시장 유리에 갇혀 있던 그림들이 이곳의 바람과 파도 소리를 만나 비로소 온전한 생명력을 얻는 듯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족을 안심시키려던 그의 애틋한 문장이 이곳에서는 다른 의미로 들려온다. 정말로 잘 지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추고 서귀포의 바람을 마주했다. 비운의 천재가 아닌, 뜨겁게 가족을 사랑했던 한 인간으로서의 이중섭. 그의 처절했던 삶은 이제 슬픔이 아닌, 우리 시대를 위로하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으로 바다 위에 빛나고 있었다.

▲ 이중섭 거리 풍경. 화가의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안내판 너머로, 이제는 수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예술의 거리가 펼쳐진다.
전갑남
오늘의 산책은 비록 닫힌 미술관 문 앞에서 시작되었으나, 오히려 그의 숨결을 더 생생하게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젠가 다시 문을 연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면, 오늘의 햇살과 이 작은 방의 온기가 함께 떠오를 것 같다. 그때 마주할 그의 그림들은 오늘 내가 걸었던 이 거리의 바람을 머금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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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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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 네 식구의 1.4평 단칸방, 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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