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되살린 한국호랑이, 조자용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

충북 보은에서 만난 선생의 발자취...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리다

등록 2026.03.27 10:45수정 2026.05.15 14:07
0
원고료로 응원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이란 관련 중동 분쟁이 이어지며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고, 국내에서는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와 같은 사고 소식이 우리의 일상을 무겁게 짓누른다. 이처럼 불안과 긴장이 겹겹이 쌓여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고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자주 묻게 된다.

역설적으로, 같은 시기에 문화는 또 다른 방향에서 힘차게 움직이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컴백 소식은 세계를 다시 한번 들썩이게 하고 있다. 컴백 앨범 '아리랑'이 1896년 미국 유학생 7인이 부른 워싱턴 아리랑 음원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서사 등이 흥미롭다. 또한 광화문 라이브 무대에서 펼쳐진 무대는 빛(光)으로 세계의 평화를, 타이틀곡 '스윔(SWIM)'으로 계속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변화(化)를 하겠다는 하나의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따뜻함과 경고, 생명과 긴장, 희망과 위기의 공존, 어쩌면 지금의 세계를 상징하는 담론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조자용 선생의 정신을 만나다

지난 22일, 이러한 생각을 안고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충북 보은. '한국 호랑이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자용 선생의 흔적을 찾아가는 거룩한 장도의 첫 번째 탐방이다. 차창 밖 풍경은 계절의 경계 위에 서 있었다. 아직 초목이 자라지 않은 시기라 산은 오히려 더 선명했다. 나뭇잎에 가려지지 않은 능선은 뚜렷한 선으로 이어졌고, 그 윤곽은 마치 오래된 수묵화처럼 깊이를 드러냈다. 대청호에 이르자 물은 고요했고, 그 너머의 산들은 묵직한 침묵으로 서 있었다.

길을 더 들어서자, 속리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푸르지 않은 산이었지만, 오히려 그 거대한 골격이 더욱 또렷했다. 바위와 능선이 만들어내는 기골은 웅장했고, 그 자태는 마치 산군(山君), 곧 호랑이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이 땅에서 왜 호랑이가 산의 주인으로 불렸는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에밀레박물관 동계기간이라 휴관 중
▲에밀레박물관 동계기간이라 휴관 중 정재학

보은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정이품송 소나무 옆에 있는 에밀레박물관(조자용민문화관)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계 기간이라 임시 휴관이란다. 일요일만 개방한다고 해서 먼 길을 달려온 터라 순간 허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했다. 고색창연한 토석담 길을 따라 옆으로 돌아가 보니, 다행히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자용 선생 사후 이 공간을 지켜온 박물관 지킴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담담하게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 이곳은 한동안 방치되다시피 했고, 뜻하지 않은 실화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훼손과 소실의 위기를 극복하고 수년 동안 하나하나 복원해 나가는 중이라는 말에서, 이곳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정신'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자용 선생은 누구인가? 1947년 미국 유학, 하버드 대학원을 건축 구조공학 전공으로 졸업한 전도유망한 건축가였다. 모든 부귀 명예도 마다하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으로 돌아와 재건 사업에 참여했다. 우리 민속문화인 민화의 가치를 재발굴하고 수집, 연구, 전시 활동 등을 펼친 민문화 운동가였다.

그렇다면 왜 '한국호랑이의 아버지'라 불리는가. 박물관 곳곳에 그 답이 있었다. 그는 단순히 호랑이를 연구한 학자가 아니었다. 민화, 목각, 설화, 신앙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화 전반에 스며든 호랑이의 흔적을 집요하게 수집하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 체계로 정리해 낸 인물이었다. 사라져가던 상징을 다시 끌어올리고, 그것을 살아 있는 문화로 되살려낸 선구자였던 것이다.


목각 호랑이 1990년대 제작되었다는 목각 호랑이
▲목각 호랑이 1990년대 제작되었다는 목각 호랑이 정재학

종이로 만든 호랑이 인형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은 표정이 귀엽다.
▲종이로 만든 호랑이 인형 해학적이고 익살스러은 표정이 귀엽다. 정재학

전시 공간에는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다. 1990년대 제작되었다는 목각 호랑이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근육의 긴장과 눈빛의 날카로움,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생동감은 '산군'이라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반면 종이로 만든 호랑이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표정,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 같은 호랑이지만 전혀 다른 정서를 담고 있었다.

또한 조자용민문화관에 전시된 산신과 호랑이 민화는, 이 존재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성과 연결된 상징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이어 들른 삼신사에서는 선생의 사상 결정체인 삼신과 조자용 선생 부부의 영정이 봉안 되어 있었고, 조용히 참배하며 명복을 빌었다. 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정신적 산실처럼 느껴졌다.

깊은 감사 인사를 올리며

지킴이 분은 오는 4월부터 주말 위주로 박물관을 정식 개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시 사람들에게 열리기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반가웠다.

조자용 선생 추모비 선생을 기리는 천황사 앞 추모비
▲조자용 선생 추모비 선생을 기리는 천황사 앞 추모비 정재학

조자용 선생 묘소 선생의 묘 봉분에 유독 잔디가 없어 더욱 숙연했다.
▲조자용 선생 묘소 선생의 묘 봉분에 유독 잔디가 없어 더욱 숙연했다. 정재학

두 번째 순례지는 선생의 묘소였다. 천황사 앞에는 조자용 선생을 기리는 추모비가, 천황산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며 만난 대청사에는 삼신과 관련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그 바로 위 시멘트 길이 끝나는 지점 기슭 언덕에 선생의 묘소가 있었다. 한국호랑이를 다시 불러낸 사람, 잊힌 문화의 결을 되살린 사람, 그 선학에게 늦었지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이날의 여정은 단순한 답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다짐이었다. 조자용 선생이 열어 놓은 길 위에서, 이제 우리가 무엇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자 응답이었다. 한국호랑이를 주제로 한 '거룩한 장도', 그 긴 여정의 첫걸음을 이곳 보은에서 내디뎠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출사표를 던졌다. 이 길을 끝까지 가보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한국호랑이 #거룩한장도 #충북보은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동훈이 부산 북갑에서 당선된 결정적 이유 3가지 한동훈이 부산 북갑에서 당선된 결정적 이유 3가지
  2. 2 한동훈 당선 확정에 지지자들 '울컥'... "장동혁 죽었어 이제!" 한동훈 당선 확정에 지지자들 '울컥'... "장동혁 죽었어 이제!"
  3. 3 전북 불 끄다가 서울 내준 민주당... 웃을 수 없는 승리 전북 불 끄다가 서울 내준 민주당... 웃을 수 없는 승리
  4. 4 대구에 보내는 김부겸의 작별 인사 "제 개인의 패배, 대구 시민 패배 아냐" 대구에 보내는 김부겸의 작별 인사 "제 개인의 패배, 대구 시민 패배 아냐"
  5. 5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파업하는 급식 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이 건넨 말, 세상이 변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