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뭉크의 <절규>(왼쪽)와 <마돈나>
퍼블릭 도메인
불안을 담아낸 예술가라면 에드바르트 뭉크를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병으로 잃고 그 자신이 평생을 자살 충동과 강박과 불안에 시달리며 살았던 뭉크야말로 '불안'을 살아내고 표현한 예술가이다.
그의 대표작 <절규> 속 불안이 일렁이는 선들은 언제 보아도 우리 귓가에 선명한 비명을 안겨준다. 나는 2014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꺼번에 많은 그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절규>는 흑색의 판화 버전. 2024년에 회화 버전의 <절규>가 전시되었다고 하는데 가보지 못했다. 아니, 가고 싶지 않았다. 2014년도에 보았던 전시회에서 뭉크의 핏빛 불안과 절망이 너무 강렬하게 여겨졌던 탓이다.
가족 상실의 아픔을 그린 그림뿐 아니라 <마돈나>나 <뱀파이어>처럼 여자를 끔찍하게 그린 그림들도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산 뭉크는 몇 번의 연애를 모두 실연으로 끝맺었다. 그럴 때마다 뭉크는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타락한 마돈나나 흡혈귀로 표현했다. 검은 머리의 상체를 내밀고 있는 얼핏 소녀 같은 <마돈나>의 모습은 관능적이며 <뱀파이어>에서 붉은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흡혈귀처럼 섬뜩하다. 일종의 복수일 것이다.
하지만 <마돈나> 그림 한구석의 웅크린 태아의 모습이나 <재>에서 방금 정사가 이루어진 듯한 침대를 배경으로 한구석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화가 자신으로 보이는 초상은 안쓰럽다. 뭉크는 80세까지 살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니 그의 불행과 절망은 도리어 예술적 성공의 기름진 토양이 되어준 것에 틀림이 없다.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에 나오는 낯선 선율 또한 우리 내면의 불안을 깊이 자극한다. 농담을 섞어 말하자면,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노랫소리를 듣다 보면, 그 기이한 음악적 표현 때문에 불안이 기를 펴지 못하고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불면의 밤에 난해하고 어려운 책을 몇 장 넘기다 보면 스르르 잠에 빠지게 되는 것처럼.
인생에서 불안을 제거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진화 심리학자는 불안이 생명체의 자기방어 체계라고 말한다. 불안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불안이 심해지면 이것은 장애가 되어버린다.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사회불안장애, 특정 공포증 등. 이런 병명을 보면 우리 안의 불안은 가라앉기는커녕 더 커지기 마련이다. '혹시 내가...' 하는 불안 말이다.
그렇다면 이 불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이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토양이라면? 작가나 예술가들이 했던 예술 행위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불안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형태를 언어나 음표나 선으로 선명하게 그려냄으로써, 역설적으로 그 공포로부터 한 걸음 물러날 거리를 만들어 냈다. 극복이 아니다. 그것은 견딤과 바라봄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당신의 불안도 '관찰 대상'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지.
고속도로 위에서 쥐가 난 날은 '책고집'에서 운영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읽기'의 첫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그날의 텍스트는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만나 주인공 블로흐의 불안을 이야기하는 동안 불안은 누그러졌고 모임이 끝난 뒤 돌아오는 길, 내 오른쪽 종아리에서는 쥐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 뉴스에서 제주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작된 사건만 38건, 간첩이라고 누명을 쓴 공식 피해자만 90명이라고 하니 비공식적인 숫자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불안 속에 살아왔을까.
불안이 안개처럼 사람들을 낱낱의 입자로 떨어뜨리려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연대일지도 모르겠다. 너의 불안과 나의 불안이 다르지 않다는 불안의 연대. 특히나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는 국가 기구나 단체 혹은 집단으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일수록 불안의 연대는 절실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소설가. 소설집 3권과 엔솔로지 2권을 냈다. 여성주의에 관한 논문을 썼다. 중학교 교사로 국어를 가르쳤고 대학에서 소설창작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업작가. 문학 외에도 다양한 예술 장르를 좋아하고 즐겨 감상한다. 문학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문학과 예술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소망한다.
공유하기
사랑했던 여인을 타락한 마돈나로... 예술가 뭉크의 복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