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을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

등록 2026.03.30 08:33수정 2026.03.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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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글만 생산하고 있으려니 머리가 다 어지럽다. 머릿속이 고갈된 느낌마저 든다. 두꺼운 외투가 필요 없어진 이 날씨를 이렇게 그냥 보낼 수 없으니 큰 결심을 한다.

산책을 하겠다고 나서놓고는 한강 나들목까지 걸어가는 내내 스마트폰을 쥔 내 오른손이 쉬질 않는다. 검지부터 약지까지의 네 손가락에는 스마트폰을 놓칠세라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엄지손가락은 상하좌우로 움직이느라 바쁜 모양새다.


심지어 한 가지 앱에만 진득하니 집중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초 간격으로 수개의 앱을 들락날락한다. 업무 일정을 체크하다가 갑자기 SNS를 둘러보다가 불현듯 쇼핑앱을 켜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이럴 거면 굳이 왜 나왔나 싶다.

문득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몇 개의 앱을 켰다 껐다 하는지 떠올려보기 시작한다. 매일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세어 보기로 한다. 손가락 열 개를 한 번씩 다 접고, 다시 한 번씩 펴도 숫자 세기가 끝나지 않는다. '아까 이 앱은 카운트를 했나?' 하는 지경에 이르러 이내 포기하고 앱 아이콘들을 한 곳에 정렬해 보았다. 무려 24가지다.

 하루 동안 사용하는 앱의 개수
하루 동안 사용하는 앱의 개수 김은혜

한강에 도착하기까지 그 잠깐의 틈새를 견디지 못하는 내 모습. 이 앱 저 앱을 종횡무진하며 당장 꼭 필요하지도 않는 정보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혹여 놓칠까 반복적으로 상기시키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기까지 하다.

이것들이 없었을 때에는 도대체 일은 어떻게 했으며,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냈었는지 떠올리기가 어렵다. 만약 갑자기 사용하고 있는 서비스의 서버에 문제가 생겨 접속할 수 없게 되거나, 내 데이터가 모두 사라진다면?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내 이 스물네 개의 서비스에서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나로 하여금 지금의 것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찾게 하고, 나를 쉴 새 없이 앱들을 활성화하는 상태에 둔 것은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축적시켜두어야 한다는 정보에 대한 집착이 한 일임을 알아챘다. 그 반복적인 행동이 질적 가치가 높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획득하고, 이를 재구성하여 의미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했는지 미처 따져볼 새도 없이 어느새 기술에 대한 의존도만 높아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로 향해 뻗친 나의 신경을 잠시 거둬들이고, 뇌가 스스로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샤워를 하다가 또는 화장실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의미는 정보의 소비가 아닌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이때 요구되는 사고는 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이완한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것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먼저 온몸에 들어간 긴장을 풀어야 한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거나 혹은 눈을 감고 아무 생각이나 이리저리 떠다니게 두면서 일부러 집중력을 흩트려 놓는다. 어느새 슬그머니 새로운 생각이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생각의 싹을 놓치지 않으려면 억지로라도 스마트폰과 멀어져야 한다.


우선 스마트폰은 잠깐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오른손을 한 번 쫙 펴고 힘을 풀어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앱 사용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해 본다.

의미 없는 화면 전환의 유혹이 가장 치명적일 때인, 바로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에는 책을 펼쳐 보기로 한다. 하지만 이 시간을 방해하는 것, '알람'이다. 수십 개의 앱에서 쉴 새 없이 발송하는 알람을 이제 놓쳐 볼 결심을 한다.

내가 쓴 글에 눌려진 '좋아요' 수는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고, 택배는 때가 되면 문 앞에 와 있을 것이다. 또 채팅창에 1이 사라지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게 전화를 할 것이다. 먹고는 살아야 하니 일과 관련한 제안서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만 켜 두기로 한다.

날씨 앱은 어떨까. 미처 일기예보를 확인하지 못해 옷을 약간 두껍게 입고 나오면 깜짝 와 버린 새 계절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다. 내리는지 아닌지 모를 정도의 비라면 어차피 명품 백도 안 들었는데 잠깐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새로운 글감 하나를 채집하는 순간이다.

지인의 맛집, 쇼핑 자랑은 한 번쯤 건너뛰고, 메가 인플루언서가 맛보는 바람에 품절 대란이 일어난 디저트 주문 행렬에는 아쉽지만 뒤늦게 동참하더라도 SNS는 잠시 쉬어본다. 팔로워들에게 텍스트힙을 뽐내보고자 찍어 둔 책 한 페이지도 때로는 혼자 몰래 간직하기로 한다.

스케줄을 관리하기에 더 유용한 서비스, 챗GPT 보다 글을 잘 쓴다는 AI가 있다는 새로운 소식에 휘둘리지 않는다. 현재 나의 일을 관리하는 스케줄러와 나와 함께 일할 AI의 수를 늘리기보다 기존의 기능을 밀도 있게 활용하고 있는지 사용자인 나의 수준을 먼저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언젠가 닥칠 또 다른 기술의 등장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한 때에 내 손안으로 유연하게 들여놓을 수 있게 하는 현명한 자세인 것 같다.

완연한 봄기운을 놓칠세라 한강 방문이 잦아졌다. 채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으려는 순간, 맙소사 충전이 되어 있지 않다.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이왕 결심을 했으니 길을 나선다. 약 두 시간 동안은 귀를 쉬게 두기로 한다. 그 덕에 음악 재생 앱과 팟캐스트도 잠시 작동을 멈춘다.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 몇 년째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삼성역의 공사하는 소리, 유독 목소리가 큰 행인들의 대화를 훔쳐 듣다 보면 어느덧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겨우내 조용했던 경기장에서 갑자기 "와~~~" 하고 환호성이 터진다. 야구에 전혀 취향이 없는 나까지도 얼마간 설레는 기분이다. 무심코 저 야구팬들은 경기를 관람할 때만큼은 스마트폰을 잠깐 내려두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지, 안타까운 순간이나 기록할 만한 순간을 간직하기 위해 SNS 만큼은 포기하지 못하려나 하는 생각에 '풉'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도 응원하는 팀의 엠블럼과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챙겨 입고, 응원곡을 따라 부르며 응원도구를 신나게 흔드는 순간만큼은 해시태그를 적을 손이 모자라지 않을까. 참 다행한 일이다.
#앱 #스마트폰 #디지털과잉 #정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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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일과 일상의 소회를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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