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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그알' 약물 노출이 남긴 질문

    [뉴스 속 건강 160] 문제는 약 자체가 아니라 공개된 방식

    등록 2026.03.28 14:52수정 2026.03.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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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올바른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기자말]
    지난 2월 저는 기사(강북 모텔 '약물 음료' 사건,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https://omn.kr/2h1yt)에서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약은 언제 위험해질까요?"

    그때의 답은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벤조디아제핀은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고, 위험을 키우는 것은 약 자체보다 조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고용량, 여러 약을 같이 쓰는 경우, 비의료적 사용이 겹칠 때 문제가 커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건과 치료는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답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뒤, 저는 같은 사건에 대해 같은 질문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이유는 약이 달라져서가 아닙니다. 노출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3월 21일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며 두 남성의 연속된 사망, 유가족 증언, 피해자 휴대전화 복원, 피의자의 계획성과 잔혹성을 추적했습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3월 21일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며 두 남성의 연속된 사망, 유가족 증언, 피해자 휴대전화 복원, 피의자의 계획성과 잔혹성을 추적했습니다. 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3월 21일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루며 두 남성의 연속된 사망, 유가족 증언, 피해자 휴대전화 복원, 피의자의 계획성과 잔혹성 등을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방송 화면에서는 피의자가 사용한 약물 일부가 노출됐습니다.

    SBS는 25일 공식 입장을 통해 "약물 이미지를 일부 노출한 것은 특정 약물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처방약도 과남용되면 얼마나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알 권리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외상이 없는 약물 범죄가 얼마나 늦게 인지될 수 있는지, 처방약이 범죄의 맥락에서 어떻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지는 시민이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200만 조회, 하루 만에 벌어진 일


     28일 현재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에는 식별 가능한 약물 정보가 아직 노출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
    28일 현재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에는 식별 가능한 약물 정보가 아직 노출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 SBS

    관련 보도에 따르면 방송 뒤 엑스(X, 구 트위터)에는 방송 화면을 바탕으로 약물 이름을 정확히 찾았다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이 글은 하루 만에 약 200만 회 조회, 2만4000여 개 '좋아요', 약 1200회 재인용을 기록했습니다. 심지어 24일, <그것이 알고싶다>의 공식 유튜브 영상에서도 가림 처리가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TV 화면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유튜브 영상은 멈춰 보고, 캡처하고, 확대해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는 단순한 재업로드가 아닙니다. 노출을 더 오래 남기고, 더 쉽게 기억하게 만드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름은 가렸다"로 끝날 일인가?

    SBS는 "명칭은 철저히 가렸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약물 보도에서 이름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약학정보원 식별검색만 봐도 알약의 모양, 색상, 마크, 문자로 제품명을 찾을 수 있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모양과 색 등을 포함한 낱알식별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이름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외형 단서가 충분하면 역으로 특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물론 외형만으로 모든 약을 곧바로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각인·색상·제형 정보가 함께 보이면 정확도는 크게 올라갑니다. 이번 방송에서는 식별 정확도를 높이는 정보가 함께 노출됐고, 이에 따라 약의 구체적 이름과 성분이 노출됐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이름을 말했느냐, 안 말했느냐"로 끝나지 않습니다. 화면에 무엇이 남았는지, 그 정보가 시청자에게 어떻게 소비될 수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28일 현재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에는 식별 가능한 약물 정보가 아직 노출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
    28일 현재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에는 식별 가능한 약물 정보가 아직 노출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 SBS

    의사나 약사에게 한 번만 물어봤어도

    가장 아쉬운 대목도 여기입니다.

    저는 의사로서 해당 방송 화면을 보는 순간, 특정 약물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흔히 쓰이는 약물 중에는 외형만으로도 후보가 매우 좁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화면에 없어도, 의사와 약사에게는 특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화면이었습니다.

    일반인은 바로 떠올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인과 약사는 특정 가능성을 금방 짚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개 식별 시스템을 통해 일반인도 그 경로를 따라갈 수 있는 환경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보도 전에 주변 의사나 약사에게 화면을 한 번만 보여줬어도, 의료인·약사라면 모자이크를 더 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대목입니다. 이런 판단은 기자 개인의 감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공익성과 공공성을 내세우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이런 장면이 어디까지 노출돼도 되는지 한 번 더 점검했어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확인만 있었어도 이번 보도는 다른 방식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알 권리인가

    물론 사건은 알려져야 합니다. 처방약도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 관리의 허점이 무엇인지,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보도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알 권리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알 권리는 무제한이 아닙니다. 사건의 구조와 제도적 허점을 설명하는 것까지는 알 권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따라 하려는 사람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단서까지 알 권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2023년 자살보도 가이드는 이번 사안에서도 참고할 만합니다. WHO는 자살보도 가이드에서 "방법을 묘사하지 말고, 사진·영상·디지털·소셜미디어 링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물론 이번 사건이 자살보도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공익 보도가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만큼은,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도 진지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약은 언제 위험해질까요? 약리학적으로 답은 지난 2월 기사와 여전히 같습니다.

    고용량, 병용, 비의료적 사용. 이런 조건이 겹칠 때 위험은 커집니다. FDA도 2020년 벤조디아제핀 계열 전체의 박스드 워닝(Boxed Warning, 의약품 설명서에서 가장 강한 단계의 경고)을 강화하며 오남용, 중독, 신체적 의존, 금단반응, 그리고 알코올과의 병용 위험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이 원칙은 2월에도 맞았고, 지금도 맞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은 고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월에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대중 앞에 있었던 것은 위험의 원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약이 갑자기 더 위험해진 것이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정보가 공공의 전파를 타고 훨씬 더 구체적으로 노출됐다는 사실입니다.

    원리를 아는 것과, 그 원리를 행동으로 옮길 단서를 갖게 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약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여전히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약을 위험한 도구로 바꾸는 정보가 공공의 전파를 타고 퍼지는 상황은, 두려워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위험을 만드는 정보가 너무 쉽게 퍼져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지만, 이제는 두려워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약을 드시고 계신 분들께
    지금 약을 복용 중이라면, 겁이 난다고 임의로 끊지 마십시오. 걱정이 되면 먼저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벤조디아제핀은 갑자기 중단할 경우 불안, 불면, 현기증이 심해질 수 있고, 드물게는 경련 같은 금단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단이 필요하다면 의료진과 감량 계획을 상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덧붙이는 글 참고자료
    1. FDA. FDA requiring Boxed Warning updated to improve safe use of benzodiazepine drug class. 2020.
    2. FDA. Drug Safety Communication: Benzodiazepine drug class ? Boxed Warning updated. 2020.
    3. 식품의약품안전처. 오피오이드+벤조디아제핀계 병용 안전성서한. 2016.
    4. WHO. Preventing suicide: a resource for media professionals ? update 2023.
    5. 의약품 낱알 식별표시 등에 관한 규정(식약청고시 제2007-28호).
    6. 엄두영. 강북 모텔 '약물 음료' 사건,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오마이뉴스. 2026.02.16.
    7. '그것이 알고 싶다' 측 "약물 노출은 경각심 차원… 살인 레시피 오해는 유감". 2026.03.25.
    8. 약학정보원. 의약품 식별검색.
    9. 공공데이터포털.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낱알식별 정보
    #강북모텔사건 #벤조디아제핀 #그것이알고싶다 #알권리 #약물보도가이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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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면허의사(의사+한의사). 한국의사한의사 복수면허자협회 학술이사. 올바른 의학정보의 전달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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