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현재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에는 식별 가능한 약물 정보가 아직 노출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 처리)
SBS
의사나 약사에게 한 번만 물어봤어도
가장 아쉬운 대목도 여기입니다.
저는 의사로서 해당 방송 화면을 보는 순간, 특정 약물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흔히 쓰이는 약물 중에는 외형만으로도 후보가 매우 좁혀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름이 화면에 없어도, 의사와 약사에게는 특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화면이었습니다.
일반인은 바로 떠올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인과 약사는 특정 가능성을 금방 짚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개 식별 시스템을 통해 일반인도 그 경로를 따라갈 수 있는 환경이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보도 전에 주변 의사나 약사에게 화면을 한 번만 보여줬어도, 의료인·약사라면 모자이크를 더 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대목입니다. 이런 판단은 기자 개인의 감으로 할 일이 아닙니다. 공익성과 공공성을 내세우는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이런 장면이 어디까지 노출돼도 되는지 한 번 더 점검했어야 합니다. 그 최소한의 확인만 있었어도 이번 보도는 다른 방식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알 권리인가
물론 사건은 알려져야 합니다. 처방약도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 관리의 허점이 무엇인지,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보도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알 권리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알 권리는 무제한이 아닙니다. 사건의 구조와 제도적 허점을 설명하는 것까지는 알 권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따라 하려는 사람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단서까지 알 권리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의 2023년 자살보도 가이드는 이번 사안에서도 참고할 만합니다. WHO는 자살보도 가이드에서 "방법을 묘사하지 말고, 사진·영상·디지털·소셜미디어 링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물론 이번 사건이 자살보도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공익 보도가 일반인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단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만큼은,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도 진지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약은 언제 위험해질까요? 약리학적으로 답은 지난 2월 기사와 여전히 같습니다.
고용량, 병용, 비의료적 사용. 이런 조건이 겹칠 때 위험은 커집니다. FDA도 2020년 벤조디아제핀 계열 전체의 박스드 워닝(Boxed Warning, 의약품 설명서에서 가장 강한 단계의 경고)을 강화하며 오남용, 중독, 신체적 의존, 금단반응, 그리고 알코올과의 병용 위험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이 원칙은 2월에도 맞았고, 지금도 맞습니다.
그러나 한 문장은 고쳐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2월에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대중 앞에 있었던 것은 위험의 원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물론 약이 갑자기 더 위험해진 것이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그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정보가 공공의 전파를 타고 훨씬 더 구체적으로 노출됐다는 사실입니다.
원리를 아는 것과, 그 원리를 행동으로 옮길 단서를 갖게 되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약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여전히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약을 위험한 도구로 바꾸는 정보가 공공의 전파를 타고 퍼지는 상황은, 두려워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 위험을 만드는 정보가 너무 쉽게 퍼져버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지만, 이제는 두려워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 지금 약을 드시고 계신 분들께 |
| 지금 약을 복용 중이라면, 겁이 난다고 임의로 끊지 마십시오. 걱정이 되면 먼저 담당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벤조디아제핀은 갑자기 중단할 경우 불안, 불면, 현기증이 심해질 수 있고, 드물게는 경련 같은 금단반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중단이 필요하다면 의료진과 감량 계획을 상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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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약은 언제 위험해지나... '그알' 약물 노출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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