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생 대담 윤은섭(서울대 기계공학부 입학, 왼쪽), 한예진(동원대 웹툰 창작과 입학) 대학생들과 대담을 나누는 기자(왼쪽부터)
이윤옥
탄운 선생은 대한제국 외부 주사로 근무하면서 국정에 임하시다가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강탈당하자 고향으로 내려와 15년 동안 청년들 교육에 힘썼던 분이다.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가 그 유지를 받들어 지역의 우수한 대학 입학생들을 뽑아 올해로 23년째 장학금을 수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하에 계실 탄운 선생께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자는 많은 기념사업회 행사를 다녀보고 있지만 후학을 위해 장학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탄운 이정근 기념사업회의 선행이 돋보여 집에서 먼 곳이지만 해마다 참석해 오고 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누구인가?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7살에 사서오경을 섭렵할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39살 때는 대한제국 외사부 주사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지켜보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팔탄, 우정, 장안, 정남, 봉담, 남양 등 7개 면을 중심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인재육성 교육에 전념했다.
당시 탄운 이정근 의사는 전국적으로 불리던 <독립가>를 손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왜왕(倭王) 3년'이라는 구호를 친히 만들어 유포했다. 이는 야만적인 침략자 일제가 천벌을 받아 3년이 못 가서 채 망할 것이란 뜻이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1919년 3월 31일 화성군 향남면 발안 장날 일어난 독립만세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56살로 순국의 길을 걸었다.
추모제가 열린 창의탑은 이정근 의사의 강인한 독립정신과 온후한 인품을 기리고자 1971년 3월 31일, 순국한 지 52년 되는 해에 한글학자 한갑수, 김석원 장군, 최덕신 천도교령, 도지사, 국회의원과 지역유지 등 33인이 발기하여 건립했다.
탄운 이정근의사가 지은 '3.1독립가'
터졌구나 터졌구나 독립성이 터졌구나
십오년을 참고참다 이제서야 터졌구나
피도대한 뼈도대한 살아대한 죽어대한
잊지마라 잊지마라
하느님이 도우시네 대한국운 다시왔네
어두웠던 방방곡곡 독립만세 진동하네
삼천만민 합심하여 결사독립 맹세하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창의탑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만세구 향남읍 삼천병마로 283-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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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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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지역 만세운동 이끈 '이정근 의사' 추모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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