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6.03.30 14:43수정 2026.03.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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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면 우리 가족은 근처 숲으로 명이나물을 캐러 갑니다. 명이 철은 보통 부활절 주간이 다가오는 3월 중순에서 4월 초 언저리입니다. 달리기 하러 나갔다가 명이나물 캐는 사람이 한둘 보이기 시작할 때, 1주일 정도 더 기다렸다 가면 딱 적당한 크기로 자라 있습니다.
독일 다른 지역 명이나물은 잎이 넓은데, 베를린 명이나물은 잡초처럼 가느다랗습니다. 그래도 향과 맛은 똑같습니다. 특유의 알싸한 봄 맛이죠! 식구 수대로 가위 세 자루, 작은 봉투 세 개를 챙겨 자전거로 집을 나섭니다(독일 연방 자연 보호법에 따라 야생 식물은 개인 소비 목적으로만, 1인당 약 '한 줌, 혹은 한 다발' 채취할 수 있습니다). 몇 분 달리면 브란덴부르크주 경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서베를린과 구동독 브란덴부르크주가 만납니다. 예전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이라 '베를린 장벽 길(Mauerweg)' 표지판이 보입니다.

▲명이나물 가늘고 긴 베를린 명이나물
백관숙
새소리를 노동요 삼아... 제철 행사를 치르다
'장벽 길'은 이제 도보 산책이나 자전거 하이킹 표식으로 기능합니다. 장벽 길 도처에 이미 베를린 명이나물이 깔려 있고, 군데군데 나물 캐는 사람이 보입니다. 우리는 평지에 자전거를 잠가두고 비탈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3년째 가는 우리만의 '명이 핫스폿'을 찾아서죠. 강아지 화장실이 되곤 하는 평지보다는 다른 동물 접근이 어려운 비탈이 좋습니다.
주변에 검은색 몽글몽글 뭉쳐진 멧돼지 똥을 조심하며 걷습니다. 윤기를 보니 어젯밤인 것 같고, 왠지 멧돼지 대가족이 놀다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지난해에 여기서 명이 따다가 멧돼지를 만나기도 했죠. 시력 나쁜 나는 소리만 들었지만, 남편과 아이는 자세히 구경했다고 합니다. 숲에서 멧돼지를 보면 늘 긴장과 흥분으로 심박수가 오르죠.
셋이 "준비, 땅!" 하며 명이를 따기 시작합니다. 이듬해도 수확할 수 있도록 뿌리나 꽃은 상하지 않게 이파리만 가위로 깔끔하게 잘라야 합니다. 모내기하듯 상체를 반듯이 접어서 따다가, 허리가 아플 즈음 자세를 바꿔 쪼그리고 앉아 땁니다. 누가 더 크고 깨끗한 잎을 골라 땄나 자랑할 테니까, 게으름 피울 수가 없어요. 비탈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 디딜 때 조심하며 명이에 몰두합니다. 머리 위에서 울리는 다양한 새소리가 마치 노동요 같습니다. 물론, 자연이 다 키워준 걸 날름 먹기만 하니 '노동'은 '오버'이긴 하지만요.
저 멀리서 딸은 우리가 얼마나 땄는지 봉투를 들어 올려 보여 달라고 외칩니다. 5분 간격으로 묻던 딸이 점점 더 자주 물어오면, 슬슬 집에 갈 시간입니다. 잘 씻은 명이에서 물기를 털고 남편과 딸은 명이 페스토를 만듭니다. 밥에도 면에도 잘 어울리는 수제 명이 페스토는 언제나 그렇듯 사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습니다. 연례 가족 행사인 명이 채취와 조리를 끝내고 나면 늘 뿌듯합니다. 조용한 핵가족인 우리 셋이 다 즐거워하는 제철 음식 행사를 마쳐 흐뭇합니다. 봄에 하는 김장 느낌입니다.
내친김에 남편과 딸은 부활절 달걀 물들이기를 시작합니다. 이건 이웃집 세 가정에 한 쌍씩 선물해 줄 요량입니다. 봄을 알리고, 올해도 4분의 1이 지나감을 알리고, 단조로운 일상을 채색하는 가족 행사 겸 나눔입니다.

▲식용 색소로 물들인 부활절 달걀 종교인은 아니지만, 늘 부활절(올해는 4월 5일)이 다가오면 흰 달걀을 삶은 후 색소로 염색해 이웃에 나눠줍니다.
백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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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똥 피하며 캐는 봄나물, 김장하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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