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과 마주하는 시간 <쉽게 닳지 않는 사람> 석파정 서울미술관 전시장 내부
문현호
김상유 화백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구도 과정이었습니다. 1926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나 평양고보 시절 미술반 활동을 했던 그는 일본 유학을 꿈꿨으나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연세대학교 철학과로 진학하게 됩니다. 인천 동산중학교에서 영어와 미술을 가르치던 30대 중반, 그는 돌연 화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독학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동판화 작업을 시작한 그는 서구의 추상표현주의인 앵포르멜 양식에 심취하기도 했습니다. 사물의 형상에 구애받지 않고 내면의 감성을 쏟아붓기에 판화는 최적의 매체였죠. 1970년 제1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막혀버린 출구로 대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그는 세속적인 화려함 대신 작업실의 침묵과 내적 성찰을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수상 이후 10년 가까이 잠적하며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밀폐시키기도 했습니다. 60대 이후, 그는 다시 우리의 정신적 뿌리를 찾아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맞춰가는 작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판화가로 시작한 그는 유화로 영역을 넓히면서도 주제만은 일관되게 심화시켰습니다.
연꽃이 심어진 연못가 정자에 앉은 사내, 지붕 위 새 두 마리와 중천의 해, 달빛 비치는 강물 앞의 명상...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정자나 누각은 단순히 건물이 아닙니다. 미술평론가 공주형의 말처럼 그것은 비움으로 채움을 말하는 작가만의 작은 우주이자 고독한 자아를 대변하는 자화상이었습니다.
무사무념(無思無念)의 파라다이스
김상유의 작품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는 그림입니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무심당(無心堂, 마음을 비우는 집), 애일당(愛日堂, 날을 아끼고 사랑하는 집), 대지산하시아가(大地山河是我家, 대자연이 곧 나의 집이다), 세이정(洗耳亭, 귀를 씻는 정자) 같은 현판 글씨들은 작가가 지향했던 무욕(無欲, 욕심이 없음)의 파라다이스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심당(無心堂) / 애일당(愛日堂) / 애일당(愛日堂) / 대지산하시아(大地山河是我家) 왼쪽부터 차례대로
문현호
그의 그림은 민화처럼 고졸(古拙, 옛스럽고 소박하여 꾸밈이 없음)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동양 미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자아를 망각하기 위해 9년 동안 면벽묵상(面壁默想, 벽을 마주하고 앉아 소리 없이 명상함)을 시도한 달마선사나 성철 큰스님의 행적을 조응하듯, 그는 인간이 처한 고립감을 회화적으로 표출하면서도 그것을 수신(修身, 몸과 마음을 닦음)에 의한 삶의 질적 향상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 중천에 솟은 해, 뜬 구름과 물오리. 이런 점경들은 정적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공간을 충만하게 채웁니다. 법정스님이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말했듯,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무심함 앞에 그저 무심히 귀를 기울이는 태도. 김상유의 화면 속 모든 것은 나지막하게 움직이고 바람은 고요히 지나가며, 달빛은 은은히 비칩니다. 모든 것을 비워버린 듯한 그 모습에서 우리는 달관의 경지를 추구하는 한 구도자의 향기를 맡습니다.
'그림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이라는 그의 가르침은 지속적인 속도와 성장을 강요받는 이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위안이 됩니다. 작가는 2002년 생을 마감하며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마음이 담긴 그림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정적미(靜寂美, 고요하고 호젓한 데에서 오는 미감)로 우리를 다독입니다.

▲세이낙자연성 (洗耳樂自然聲) 귀를 씻고 자연의 소리를 즐기다
문현호
다시, 일상이라는 예술로 나가는 길
서울미술관에서 마주한 김상유의 100년은 우리에게 멈춤의 미학을 가르쳐줍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40년 예술세계를 정리했던 그 쉽게 닳지 않는 예술가의 삶.
전시장을 나오면 석파정의 수려한 풍광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바위와 나무, 그리고 바람 소리가 김상유의 화폭과 절묘하게 이어지는 경험은 이 전시가 주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욕심 없이 세상을 살다간 그의 정적 앞에서 저는 다시금 삶의 자세를 가다듬어 봅니다. 인생이라는 맷돌은 여전히 무겁게 돌아가고 세상은 소란스럽겠지만, 맷돌이 저를 깎아낼수록 그 안에서 닳지 않는 저만의 청산(靑山)은 더 선명해지는 기분입니다.

▲ 전시장을 나와 마주한 석파정의 수려한 풍광.
문현호
저는 이번 전시를 통해 김상유라는 거장이 남긴 평온을 오롯이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쉽게 닳지 않는 고요를 품고, 부암동의 그 맑은 정적으로 한번 걸어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당신만의 구도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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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부암동에 가면 분명 웃게 될 거예요, 이 남자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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