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4년 미국 해군 제독 매슈 페리가 이끄는 군함 8척이 일본 앞바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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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월 31일)은 172년 전, 동아시아의 운명이 바뀐 날이다. 1854년 군함 8척을 이끌고 온 미국 해군 제독 매슈 페리에 의해 일본이 무릎을 꿇은 날이다. 일본인들에게 자국의 가장 큰 배보다 여섯 배나 큰 증기 군함 쿠로 후네(黑船)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일본은 맞서지 않고 페리의 요구에 굴복, 시모다와 하코다테 2개 항구를 개방하는 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했다. 200년 쇄국의 문이 강제로 열린 것이다.
이 굴욕이 당시 일본을 통치하던 무신정권 도쿠가와 막부(幕府)를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다. 막부가 천황의 허락도 없이 불평등 조약에 서명했다는 사실에 반막부 세력이 들고일어났다. 상징적 통치자였던 천황을 받들고 외세를 몰아내자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고, 결국 250년 막부는 무너졌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이었다.
일본은 굴욕 앞에서 "왜 우리가 당했는가"를 물었다. 군대와 교육을 개편하고 산업을 키웠다. 충격을 동력으로 바꾼 것이다. 22년 뒤인 1876년, 이번엔 일본이 군함을 몰고 조선 앞바다에 나타났다. 강화도 조약이었다. 페리가 일본에 썼던 방식 그대로였다. 강제로 문이 열리는 나라에서, 문을 강제로 여는 나라로 바뀌는 데 불과 22년이 걸렸다.
그동안 조선은 뭘 했나. 1871년 군함 5척을 앞세운 미군과 맞선 강화도 전투(신미양요)에서 조선군 350여 명이 전사했다. 미군 전사자는 3명에 불과했다. 미군은 탄약과 식수가 바닥나자 스스로 물러갔다. 조선은 이를 승리라고 선언했다.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와 화의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라며 전국에 척화비(斥和碑)를 세우고 문을 꼭꼭 잠갔다. 아무런 개혁도 없이 쇄국정책과 권력 투쟁만 했다. 그리고 5년 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야 했다.
일본은 실리를 택했고, 조선은 명분을 택했다. 일본은 강해졌고, 조선은 식민지가 됐다. 외부에 다가오는 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한 나라는 강해지고, 한 나라는 사라졌다.역사는 충격이 아니라 대응이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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