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궁화호를 위하여 - 변경의 현실과 정치, 하승우(지은이)
한티재
가족들과 수도권에 살다 옥천이라는 '변방'으로 이주하자고 마음먹을 수 있었던 건 무궁화호 덕분이었다는 저자. 저자는 '반려 교통' 무궁화 덕분에 서울에서 강의, 회의, 토론회 등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궁화호가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고장이 나면 더 이상 고치지 않고 은퇴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뒤 무언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느린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까. 부정하고 싶지만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나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나의 일상이 느려지는 삶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덜컹덜컹 달리던 무궁화호에 가까운 미래의 나를 너무 이입시켰나 보다. 사실 사라질 무궁화호의 문제에 이렇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건 내가 교통의 중심지인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무궁화호는 지방에서 소도시와 소도시, 소도시와 대도시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저자는 국가적으로 지방의 인구소멸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지방의 인프라를 줄이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며칠 전 전북 무주군에서 무주 주민들에게 1인당 반기별 40만 원, 연간 총 8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한다는 뉴스를 봤다. 인구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험적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 뉴스를 보는 내내 '이 정책이 지방 인구소멸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건가?' 하는 질문과 함께 내 고개는 계속 갸우뚱했다.
저자 하승우는 이 책에서 거꾸로 가는 한국의 공공교통 정책을 비판한다. 이 책에 따르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시외버스와 고속버스의 노선, 그리고 버스의 수는 수도권을 제외하면 지방에서 지방으로 다니기가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KTX와 새마을호는 운행 횟수가 늘고 있는 반면, 무궁화호의 운행 횟수는 줄어들고 있어 2028년 90%가량 무궁화호가 폐차되고 나면 KTX나 새마을호가 서지 않는 지역의 주민들은 무엇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사실상 지방의 인구소멸은 국가가 조장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모를 천문학적인 돈만 뿌리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계속 질문한다. 저자는 지방의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교통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도시와 도시가 연결되어야 도시에 살 사람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변방'에 사는 저자는 점점 줄어드는 공공교통 때문에 불편을 겪는 직접적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지방의 인구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접근 방식의 문제, 자꾸만 실패를 반복하는 지방정부가 벌이는 대형사업들의 문제, 요새 크게 대두되고 있는 광역 지자체간의 통합 이슈 등에 대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 와 닿게 전달한다. 역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다.
저자 하승우는 이 책에서 공공교통과 지방 도시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기후위기, 정치, 관료주의의 범주까지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저자는 그의 사유가 활자 속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적인 활동들을 통해 깊이를 담아낸다.
오는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선거철은 참 어렵고 혼란스럽다. 말하면 다 이루어질 것 같이 쏟아내는 공약들, 정파와 당을 떠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조건 국민의 편에 설 것 같은 후보들, 그리고 이 틈을 타 어떻게든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 등 서로 얽히고설킨 공간에서 '인권'의 언어는 참 이용당하기도 쉽다.
이에 저자는 나오는 글을 통해 새로운 활동보다는 새로운 방향성과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슷하나 활동을 하더라도 어떤 목표, 어떤 가치를 염두에 두고 활동해야 할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궁화호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그로부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왔다. 무궁화호가 없어지면 사람과 사람의 연결 또한 끊어지는 것일까? 정치인들이 입에 바른 소리를 하며 당장 눈에 보이는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후퇴를 막고, 사람과 사람을 끊임없이 연결해 낼 수 있는 방법들을 진심을 담아 강구 해보길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언젠가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도시만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비(非)서울시만 남게 되지 않을까. 조금 우습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서울시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도 통합하자는 말이 분명 나올 것 같다. 공공재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는가. 나는 여전히 무궁화호의 롱런을 기대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홈페이지 : cathrights.or.kr
주소 : 서울시 중구 명동길80 (명동2가 1-19) (우)04537
전화 : 02-777-0641
팩스 : 02-775-6267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