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 위에 피는 '모란' 민화.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아제르바이잔 학생의 수업 현장
한유상
- 화가이자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예술 스타일을 소개해 달라.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래픽, UX-UI, 패션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조상들의 고대 장식 예술을 연구하면서 한국의 민화나 단청 같은 세계적인 예술과 접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잊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 제 작업의 핵심입니다."
- 한국 문화, 이른바 '한류'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아주 어릴 적이었죠. 2008년 무렵 튀르키예의 텔레비전 채널인 TRT1에서 드라마 <주몽>이 방영됐는데, 우리 가족 모두가 열혈 팬이었습니다. 당시 10살이었던 저는 드라마 속 한국의 궁궐과 한복, 역사적 장면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K-팝을 좋아하지만, 저는 한국의 사극과 레트로 음악에서 느껴지는 그 깊은 분위기를 더 사랑합니다."
- 한국의 민화와 단청에서 아제르바이잔 예술과의 접점을 찾았다고 들었다.
"민화를 공부하다 보니 아제르바이잔의 전통 '세밀화(Miniature)'와 정말 많이 닮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화려한 색감, 이야기 중심의 구성, 원근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그렇죠. 단청 역시 아제르바이잔 궁궐을 장식하는 '카시(Kaşı)' 타일 문양과 그 대칭미에서 형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한국어 표현이나 속담이 있나?
"한 한국인 관광객이 가르쳐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꽃은 열흘 동안 붉게 피어 있지 못한다는, 즉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철학이 좋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비슷한 의미의 표현이 많아 한국이 더욱 가깝게 느껴집니다."

▲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한국 전통미술 마스터클래스 현장.
한유상
-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한국을 '한 민족 세 국가'로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안했다.
"경제적 협력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유대는 더 가치 있는 순간을 만듭니다. 관습과 역사적 예술에서 보이는 유사성들이 우리 세 나라의 유대를 더 단단하게 묶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이미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 한국의 한(恨)과 아제르바이잔의 '니스길(Nisgil)'이 닮았다는 통찰이 놀랍다.
"한국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놀랐던 지점입니다. 두 나라 모두 실향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고통스러운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된 슬픔'이 우리를 정서적으로 강하게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세대에게도 이런 역사의 감동을 예술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 아제르바이잔 역시 2020년대부터 새로운 '포스트 분쟁 예술'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많은 화가가 조국에 대한 사랑과 평화를 화폭에 담는 것을 중요한 작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예술에서 카라바흐(Karabakh)지역은 더 다채롭고 꽃피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한국이 전후의 고통을 딛고 눈부신 예술을 꽃피운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는 큰 자부심입니다."
- 한글 세미나와 단청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나?
"2025년 한글 세미나 당시,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는 인본주의적 역사에 학생들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단청 수업 중 한 학생이 아제르바이잔의 식물 문양을 단청과 섞어 그리며 '두 나라의 유사성을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정말 울컥했습니다. 예술이 거리를 좁히는 힘을 확인한 순간이었죠."

▲ 한국 전통 단청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후 세빈지 휘세이노바(맨 왼쪽)와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한유상
- 앞으로 한국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감각을 살려 '한복'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또한 한국의 도자기 예술에도 관심이 깊어, 아제르바이잔과 한국의 세라믹 예술을 융합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꼭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한국은 아제르바이잔 다음으로 가장 친근함과 소속감을 주는 '제2의 고향'입니다. 여러 언어를 알지만 한국어만큼 마음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언어는 없어요. 언젠가 한국 독자 여러분과 한국에서 직접 만날 날을 꿈꿉니다."
세빈지 휘세이노바는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국경을 넘어 문화와 정서가 만날 때 진정한 유대가 시작된다는 그녀의 믿음은 이미 예술 작품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한 민족 세 국가'라는 꿈이 낭만에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문화 교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바쿠의 작업실에서 단청 문양을 그리는 그녀의 손끝에서, 아제르바이잔과 한국을 잇는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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캅카스·아나톨리아·중국·한국을 잇는 유라시아 지역 문화·현지 미디어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영화제 공식 선정작 감독. 현지 언론윤리·미디어 피해 문제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국제 미디어 환경의 이면과 평화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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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한과 '니스길' 닮아" 민화 그리는 아제르바이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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