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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6.04.02 13:37수정 2026.04.0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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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새로 나온 시집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아들이 말한다.
"제 옆자리 회사 선배도 시 엄청 잘 써요."
아들에게 자세히 물으니 옆자리 일 년 선배의 취미가 시를 쓰는 거라고 한다. 책상에는 시작(詩作)에 관한 책이 놓여 있고, 그는 점심 시간에 시를 쓴다는 것이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최첨단 IT부서의 직원이 쉬는 시간마다 시를 쓴다는 게 놀라워 그가 쓴 시를 보내달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꾸준히 올린 시를 읽어 본다. 책상에 놓여 있다는 책이 뭔지 궁금해 하니 허락 하에 아들이 찍어서 보내주었다. 아들이 보내온 사진 속 책상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책 사이사이에 시 창작 책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시를 좋아해 꾸준히 써왔으며 지금도 시 쓰는 걸 즐긴다는 그 친구의 책상을 보는데 구석에 있는 뭔가 눈에 띄었다.
'멈춤'을 제시한 친구
확대해 보니 메모지에 시를 적어 붙여 놓은 것이다. '이타카(ITAKA)'였다. 그리스 섬 이타카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그렇게나 돌아가고 싶어했던 고향이자 이상향이다. 메모지의 글은 그리스 시인 카바피가 쓴 '이타카'라는 시의 일부분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카바피는 매일 퇴근 후 밤마다 시를 써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고 살아라. 그러나 서두르지는 말아라. 다 늙어 도착하더라도 괜찮다. 이미 너는 이타카로 향하는 길에서 풍요로워져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의 시를 보자 마음이 평안해졌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시간에 쫓기며 사는 중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말 오전에 잠깐 보자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강변을 거닐다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발견한다. 나무 아래에 벤치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하다가 그냥 바닥에 철퍼덕 앉아 버렸다. 마침 가방에 들어있는 신문이 이럴 때에는 마침 맞다. 신문지를 깔고 앉아 이런저런 두서 없는 대화를 나누지만 나는 친구에게 배우는 게 많다. 계획도 없이 분주하게만 사는 나에게 '멈춤'을 제시한 친구의 얼굴을 본다. 40년 넘게 봐와서인지 어렸을 때랑 똑같이 보인다.

▲ 벚나무 아래서 친구와 함께
godling on Unsplash
오래 전 돌아가신 친구 어머니는 친구를 마흔 넘어 낳으셨다. 우리 어머니는 3.1운동 때도 직접 참여하신 역사의 증인이라고 친구는 자랑한다. 지난해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내가 그동안 친구 앞에서 보였던 배려 없는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오래 전 부모님 두 분을 다 잃은 친구 앞에서 만날 때마다 미주알고주알 우리 부모님에 대한 불평을 했던 것이다.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다 들어주고 위로까지 해주었다.
우리 둘은 벚나무 아래에서 3.1운동을 생각한다. 하얀 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어린 여자아이를 상상해 본다. 친구 어머니는 어떤 이타카로 걸어가셨을까. 친구와 나는 자신의 이타카로 제대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서두르지 않고 욕심 없이 걷고 있는 친구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능력 있지만 일찌감치 가족을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생색내지 않고 말없이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를 보면서 내 이타카는 혹시 이 친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가정의 평화를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기에 친구에게는 큰 욕심이 없다.
나를 현자로 만드는 길을 걸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 있는 아들 선배의 시를 오늘도 찾아 읽는다. 짧은 세 줄 시이지만 그리움과 사랑이 가득하다. 아마도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타카를 찾아 나아가는 젊은 시인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삶에 지쳐 있을 때 나는 카바피의 마지막 문장에서 위안을 받는다.
"설사 네가 도착한 이타카가 불모지일지라도 거기까지 가는 여정에서 이미 너는 현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며 목적지보다 여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울퉁불퉁 거칠고 지루하다 여겼던 이 여정이 사실은 나를 현자로 만드는 길이었다니.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라면 조금 더 주위를 둘러보며 나무 냄새도 맡고 새 소리에 넋도 놓아 보아야겠다. 같이 걸어가고 있는 많은 현자들에게 눈인사라도 하다 보면 가는 길이 그다지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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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안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수학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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