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섭의 그림 속 아이들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흙을 만지는 정원사의 뒷모습. 보도블록 위의 문양과 묘하게 겹쳐 보인다.
전갑남
문득 발치 아래 보도블록을 보았다. 그곳에는 이중섭의 그림 속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아이들과 게들이 새겨져 있었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흙을 만지는 정원사의 뒷모습은, 마치 보도블록 위에 새겨진 아이들과 게의 형상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자신을 애써 드러내려 하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은 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모습에서 나는 화가 이중섭을 보았다. 세상의 잣대나 빈궁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가족에 대한 사랑과 예술만을 붙들고 살았던 이중섭의 삶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담쟁이 덩굴에 새겨진 정원사의 애틋한 당부
그는 화단을 정리하다 말고 문득 생각난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올라오시다 낡은 극장 하나 봤죠? 60여 년의 유서 깊은 서귀포 최초 극장인데… 철거 논란이 있죠!"
그의 목소리에는 이 거리에 뿌리 내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짙은 애정이 묻어났다. 1963년에 세워진 서귀포 관광극장.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 지붕은 사라졌지만, 오히려 하늘을 지붕 삼은 노천극장이 되어 독특한 미학을 뿜어내던 곳이다.
"예사롭지 않다 여겼는데 그렇군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의 대답에 그는 흙 묻은 손을 잠시 멈추고 먼 곳을 응시했다. 그는 낡았다고 허무는 대신 세월의 흔적을 살려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저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능사는 아니지요. 저 극장을 잘 보존하고 보수해서 젊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걸고, 저녁이면 은은한 조명 아래서 고전 영화나 예술 영화를 상영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석조 벽면 그 자체가 훌륭한 무대 배경이 되니까요."
비록 극장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오지는 못했으나, 내 머릿속엔 그 모습이 선명하게 인화되어 있다. 거친 현무암 벽면을 타고 푸른 담쟁이가 엉겨 붙어 있고, 지붕이 타버린 빈자리로 제주의 푸른 하늘이 쏟아져 내리던 그 아름다운 폐허의 미학 말이다.
어제의 기억 위에 심은 오늘의 '행복의 빛깔'
사라져가는 어제의 기억을 뒤로하고, 오늘을 심는 정원사의 손길. 화단의 꽃뿐만 아니라 이 거리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온전히 지켜지길 바라는 그분의 간절함이 전해져 왔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예술로 피워냈던 이중섭의 삶 위로, 오늘을 가꾸는 정원사의 땀방울이 겹쳐진다.
정원사가 정성껏 다독여 놓은 노란 팬지가 유독 선명하게 빛났다. 그것은 어쩌면 화가가 그토록 그리고 싶어 했던 '행복의 빛깔'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묵묵히 걷는 이 거리의 정원사. 그분의 따뜻한 뒷모습이 서귀포의 풍경과 함께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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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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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만하니까 하지요" 이중섭 거리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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