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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 박제가 목포 초등학교에 있는 사연

영광 불갑산 호랑이굴과 목포 유달초등학교

등록 2026.04.03 13:30수정 2026.05.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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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여행작가입니다. '거룩한 장도, 한국 호랑이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룹니다.[기자말]

한반도는 한때 '호랑이의 나라' 라고 할 정도로 야생 호랑이가 전 산천을 누비며 호령했다. <조선왕조실록>에 호랑이의 출몰과 피해, 그리고 이를 잡기 위한 사냥의 기록 등 호랑이 관련 내용이 1000여 건이나 기록될 정도였다. 그런데 '호랑이의 나라'라 불리던 이 땅에 이젠 더 이상 호랑이가 없다. 기록 속에서만 포효하는 존재, 산천의 기억 속에만 남은 생명체로 남아있을 뿐이다.

왜 우리의 호랑이가 사라졌는가. 조선시대에도 왕명으로 조직된 포수들이 '착호군'이라고 해서 산을 누볐고, 때로는 마을 전체가 호랑이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이는 필요에 따라 개체 수를 조절하는 수준이었고 기본 바탕은 공생을 지향한 것이었다.


이 땅에서 호랑이가 사라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한 대대적인 포획과 학살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인 사업가 '야마모토 다다사부로'가 벌린 한국 호랑이 사냥인 '정호기'의 사례를 보듯이 이는 일제의 노골적인 식민 야욕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1921년 경상북도 경주 대덕산 호랑이 포획 기록을 마지막으로 남한 지역에서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호랑이 관련 표본과 박제도 일본, 미국 등지로 반출되어 당시 한국 호랑이의 생생한 실체를 가늠해 볼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스럽게도 국내 유일한 한국 호랑이 박제가 전남 목포에 있다고 해서 거룩한 장도의 길을 나선다.

지난 3월 8일, 아직 겨울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던 날, 먼저 전남 영광 불갑산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햇살은 부드러워졌고, 들녘에는 이른 봄의 기척이 번지고 있었다. 터널을 몇 개나 지났을까. 어둠과 빛이 반복되는 사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연해주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 산맥과 산맥을 따라 3000여 리 떨어진 이 남쪽 끝까지 내려오는데 몇 세대가 걸렸을까. 아득하고 아련했다.

불갑산 도립공원 표지판 호랑이와 상사화로 장식한 표지판이 먼저 맞아준다.
▲불갑산 도립공원 표지판 호랑이와 상사화로 장식한 표지판이 먼저 맞아준다. 정재학
국가 자연유산 명승 불갑산 도립공원에 들어서자 불갑산 호랑이와 상사화로 장식된 철제 부식 표지판이 먼저 맞아 주었다. 붉디붉은 상사화는 가을에 와야 볼 수 있어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꽃과 잎이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는 그 식물처럼, 실제 이곳 호랑이 서식지와 호랑이 박제는 언제 만날 수 있으려나 묘한 대비를 이룬다.

불갑산 호랑이굴 가는 탐방 코스는 불갑사 경내를 거쳐 완만하게 오르는 길과 주차장에서 관음봉-덕고개-노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코스가 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불갑산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오만임을 자각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갑사 전경 관음봉 너럭바위 앞에 펼쳐진 불갑사 경내
▲불갑사 전경 관음봉 너럭바위 앞에 펼쳐진 불갑사 경내 정재학

산은 생각보다 깊고 험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능선,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길. 숨은 가빠졌고,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관음봉 너럭바위에 이르렀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바위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갑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느린 걸음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와 바위 위에 올라 사찰을 굽어보며,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던 호랑이가 오버랩 되는 게 아닌가.

불갑산 호랑이굴 불갑산 호랑이가 서식했다고 전해지는 자연동굴
▲불갑산 호랑이굴 불갑산 호랑이가 서식했다고 전해지는 자연동굴 정재학
호랑이굴 불갑산 호랑이가 살아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연동굴
▲호랑이굴 불갑산 호랑이가 살아던 것으로 추정되는 자연동굴 정재학

덕고개를 지나 노적봉으로 향하는 길. 기암괴석이 겹겹이 쌓인 곳에서 드디어 '호랑이굴'을 만났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굴은 작았고, 어딘가 인공적인 흔적마저 느껴져 잠시 실망이 스쳤다. 하지만 1908년 2월 한 농부가 놓은 덫에 걸려 포획되었다는 안내판이 이곳이 당시의 생생한 현장임을 알리고 있었다. 굴은 비록 작았지만, 그 사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눈앞의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을 둘러싼 역사와 기억이 이곳을 '호랑이의 자리'로 만들고 있었다.


불갑사 호랑이 포토존 호랑이 포토존 캐릭터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불갑사 호랑이 포토존 호랑이 포토존 캐릭터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정재학

하산 길은 한결 부드러웠다. 졸졸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내려오니, 봄이 이미 산 아래에 와 있었다. 작은 새싹들, 물 위에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흙냄새. 불갑사 경내에 이르러 다시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그러나 이 산은 불갑산 호랑이의 숨결로 가득찼던 공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불갑사를 내려오는 길에 만난 호랑이 포토존은 인상적이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호랑이였다. 살아 있는 호랑이는 사라졌지만, 기억해야 하는 호랑이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목포다. 남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이 도시는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다.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유명한 목포근대역사관 1관을 비롯하여 유달산 아래 펼쳐진 근대 문화유산은 그 당시 시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그 한 복판에 목포 유달초등학교가 있었다. 이곳은 한반도 유일의 한국 호랑이 복제가 있는 곳이다. 사연은 이렇다. 1908년 불갑산 덕고개에서 생포된 한국 호랑이를 당시 일본인 '하라꾸지 쇼지로'씨가 350원에 구입하여 200원의 박제 비용을 들여 제작하여 1909년에 기증하여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교정 남한 유일의 호랑이 박제가 전시되어있는 유달초등학교, 그러나 여타 사정으로 사진촬영과 이미지 제공 등이 불가하다고 해서 아쉽다.
▲목포 유달초등학교 교정 남한 유일의 호랑이 박제가 전시되어있는 유달초등학교, 그러나 여타 사정으로 사진촬영과 이미지 제공 등이 불가하다고 해서 아쉽다. 정재학

목포시, 영광군 등 여타 기관의 기증 요청, 기타 복잡한 사정 등으로 사전에 사진 촬영, 이미지 제공 협조 등 자체가 불허한 사항이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교정에 들어가 처음에 대변한 모습은 백화 현상으로 탈색된 유리장에 전시된 호랑이 박제였다. 여러 복합적인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왕 먼 길을 왔으니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이 호랑이는 암컷으로 10살 안팎이며, 몸통 길이는 약 160cm, 신장은 95cm, 몸무게는 약 180kg으로 추정된다. 2006년 국립생물자원관 유전자검사을 통해 1240개 유전자 가운데 2개가 시베리아 호랑이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까지 국내 유일의 남한 호랑이로 확증되었다고 한다.

비록 탈색되었지만 박제의 동태는 심상치 않다. 고개를 우상향으로 돌려 입을 벌려 포효하는 모습, 왼쪽 앞발과 뒷발로 바위를 박차 오르고, 오른쪽 발로 몸을 지탱하는 자세. 정지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 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암컷임에도 불구하고 근육은 단단했고, 발은 육중했다. 그 위세는 단순한 전시물을 넘어섰다. 살아 있었을 때의 기세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현재 이 박제품은 여러 기관의 요청에도 재학생, 학부모, 교직원, 동문 등의 반대로 학교 교정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보관되어 우려스럽다. 보존도 보존이려니와 이렇게 중요한 자료가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것이 아쉽다. 향후 초등학교 옆에 있는 구 심상소학교강당(등록문화재 제30호) 복원 공사 후 유달초등학교역사관을 마련하여 전시된다고 하니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불갑산의 바람과 유달산의 햇살 사이에서, 한 가지 바람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이 땅에서 호랑이를 다시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그 기억만큼은 온전히 되살릴 수 있기를.

아! 불갑산 호랑이.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억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주는 거룩한 장도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불갑산 #목포 #한국호랑이 #유달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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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학예연구사이자 20여 년 동안 문화유산을 연구하고 탐방해 온 문화유산 전문 크리에이터입니다. 김구 선생 탄생150년을 맞아 문화강국 프로젝트 일환, 2036년 전주하계올림픽 유치 및 국립한국호랑이박물관 건립 기원을 위해 기획한 연재로 "거룩한 장도-한국호랑이를 찾아서" 매주 금요일,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한국호랑이를 찾아 탐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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