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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 굶고 있어!" 배달 늦는다고 '멍청이'란 말을 들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2025년 제3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작품

등록 2026.04.15 19:31수정 2026.04.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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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이따위로 해놓고, 배달료 다 받아 처먹는 거지? 지금까지 기다린 내 시간은 어떻게 보상해줄 건데요?"

상담사의 최대 재량으로 제공할 수 있는 대안을 안내했지만, 고객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우레 같은 욕설을 내뱉는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는 한마디뿐이다.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 어렵습니다."

콜센터 상담사는 고객이 전화를 끊기 전에 먼저 상담을 종료할 수 없다. 그나마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생기면서 지속적인 반말과 욕설이 이어질 경우,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고객의 반말이나 욕설이 3번 이상 반복이 되어야 가능하다. 어김없이 강성 고객의 입을 통해 귓바퀴에 흘러넘치는 험한 말을 듣고 있을 때였다. 사내 메신저에는 '첫째도 친절, 둘째도 친절, 셋째도 친절'이라는 공지가 뜬다.

타인을 업신여기는 고객에게도 친절하라고 강요하는 세상, 욕먹는 값으로 월급 받는 거 아니냐고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조직, 감정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사내 문화. 그럼에도 생계와 목적을 위해 콜센터로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나 역시 별다를 게 있겠는가. 크고 작은 멍으로 마음이 얼룩덜룩해져도, 낯빛이 회색으로 젖어가도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엄마의 침묵

폭언 속의 강요된 친절 귓바퀴를 흘러넘치는 강성 고객의 욕설을 감내하는 순간, 사내 메신저에는 '첫째도 친절'이라는 공지가 뜹니다. 피바람 부는 전쟁터에 목검 하나 없이 내몰린 기분 속에서, 오직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 어렵습니다"라는 한마디 최선의 방어로 나를 지킵니다.
▲폭언 속의 강요된 친절 귓바퀴를 흘러넘치는 강성 고객의 욕설을 감내하는 순간, 사내 메신저에는 '첫째도 친절'이라는 공지가 뜹니다. 피바람 부는 전쟁터에 목검 하나 없이 내몰린 기분 속에서, 오직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 어렵습니다"라는 한마디 최선의 방어로 나를 지킵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한 업계에서 10년 넘게 일했지만, 어느 날 형용할 수 없는 권태와 무력감이 찾아왔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회사와 사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퇴사를 하던 날, 회식 자리에서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는 것 같아서 울음이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한 세미 정장과 불편한 뾰족구두에서 벗어나 찢어진 청바지와 슬리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짜릿한 해방감도 함께 들었다.


넉넉한 삶의 여백과 휴식은 솜사탕보다 더 달콤하고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산활동 없이 쉬고만 있는 현재에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결국 내가 새롭게 시작하게 된 일은 음식 배달 플랫폼의 콜센터 상담직. 근무 기간은 3개월 남짓, 정규직으로 입사한 상담원들과 달리 나는 일정 기간 뒤에 계약종료가 예정되어 있었다.

콜센터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떨어져 살고 있는 엄마가 내게 안부 전화를 거셨다.


"딸~ 날씨가 덥네. 요즘 뭔가 바빠 보이던데?"
"사실 엄마, 나 요즘 음식 배달 플랫폼 콜센터 다녀."
"..."

꽃 피면 예쁜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이 생각나서, 달 뜨면 동그란 내 얼굴이 떠올라서, 바람 불면 부족하게 입고 다니는 내 걱정이 앞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던 엄마다. 그런데 웬일로 말이 없으셨다. 그 뒤로 엄마의 티 나는 침묵이 이어졌다.

콜센터의 업무가 대략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엄마는 딸의 현재 상황에 말을 잇지 못하셨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알려주셨지만, 내 자식이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듣고 살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부모의 맘일 것이다. 그날, 엄마의 입술 사이로 뚜렷한 형태소나 음절이 흘러나오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자식이 굶고 있으면 얼마나 속상한데요. 아, 진짜 짜증 나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배달 언제 오는 건데요?"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빠르게 확인 후 도움 드리겠습니다."
"아 됐고요. 당장 눈앞에 배달해주세요! 기다리기 싫다고 했잖아요. 지금 우리 애들이 굶고 있다고!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요? 말귀 못 알아들어요? 멍청이야?"

음식 배달이 20분가량 늦어지고 있었다. 상담사의 최대 역량 안에서 여러 방안을 제시했지만, 고객은 끄덕하지 않았다. 고객의 요구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웠다. 보장한 배달시간 내에 음식을 무조건 집 앞에 대령할 것. 곧 학원을 가야 할 아이들이 배고파하고 있단 이유였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이 나와 전화 연결된 한 어머니는 자식 걱정을 가장 먼저 앞세운다. 나는 자식은 없지만 그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공감성 멘트와 함께 지연된 음식 배달에 대한 보상 방안을 말씀드려도 고객의 목소리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고객은 짜증과 인신공격을 퍼붓고 있는 상대인 내가 한 어머니의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라는 걸 잠시 잊으신 듯하다.

시들어가는 사람들

"목표 콜수 인지하고, 최대한 실적 맞춰주세요."

끊임없이 들어오는 콜을 받는 도중에도 관리 인력들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소리친다. 내 자리로 한 관리 인력이 부리나케 달려온다. 라이더의 실수로 배달이 엇갈렸고, 고객님이 알려주신 정보가 불분명해서 나는 후처리가 길어지고 있었다.

"XX님, 후처리가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죄송합니다. 빨리하겠습니다."

상담 이력을 남기고, 전산 처리를 하는 '후처리' 과정에 대해서 압박이 들어온다. 내가 속해있는 콜센터는 원청에서 일감을 받는 하청 업체다. 원청은 CS 업무를 여러 곳에 하청을 주고 보이지 않는 경쟁을 유발한다. 그 사이에서 휴식과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건 인력이다.

인력이 회사의 부품이라는 말에 굳이 항변하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에서 그 말이 틀렸다고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을 조직의 부품으로 소모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건 '결코 인간은 기계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반복되는 오류 사항과 개선점을 콜센터의 상담사는 원청에 보고하거나 요청할 수 있는 루트도 없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가장 최전선에서 헤드셋 하나로 고객들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직무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원청은 CS 분야를 하청에 넘기며 감정의 외주화를 효율적인 경영 모델로 삼는다. 그러는 사이에 진정 어린 고객의 소리는 원청으로 전달되기도 전에 음소거 처리된다.

관리자들은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콜을 얼마나 받았는지, 순위를 매겨 공유한다. 실적에서 정성적인 평가는 고정값이다. 신속하고 정확하며 친절할 것. 그리고 정량적인 평가는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이다. 문의 사항이 짧게 끝날 수도 있고, 강성 고객을 만나면 30분 이상 상담이 길어질 때도 있다. 그런 변수와 상관없이 목표 콜수는 채워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때론 그런 분위기가 고객의 컴플레인보다 상담사를 더 지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콜센터 경력이 일천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경솔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원청과 회사는 감정노동자의 보호에는 큰 관심이 없다. 욕설과 반말도 3번 이상 반복되어야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건 어떤 기준일까. 매일 일터에서 듣는 폭언이 누적되어 가지만 사내에는 상담사의 정서적 치료를 지원하는 프로세스나 상담 프로그램도 전무하다.

입사 전, 3~5일 정도 실무교육을 받지만, 모든 인바운드 상담에 활용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상담 도중에도 사내 교육자료나 공지, 지침을 동시다발적으로 찾으며 고객께 알맞은 안내를 해야 한다.

'힘 내'라는 한 마디의 힘

실적과 바꾼 비참함 목표 콜수를 맞추기 위해 화장실조차 제때 가지 못해 벌어진 비참한 참극. 검은 바지와 빨간 의자가 나의 수치심을 가려준 것에 안도하는 스스로가 우습고도 서글픕니다.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소모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겪은 가장 뼈아픈 순간입니다.
▲실적과 바꾼 비참함 목표 콜수를 맞추기 위해 화장실조차 제때 가지 못해 벌어진 비참한 참극. 검은 바지와 빨간 의자가 나의 수치심을 가려준 것에 안도하는 스스로가 우습고도 서글픕니다.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소모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겪은 가장 뼈아픈 순간입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던 때였다. 또다시 실적 압박이 대놓고 담긴 관리자의 공지가 뜬다. 콜센터 업무가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휴식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활용하고 나서야 겨우 나한테 할당된 콜수를 맞출 수 있었다. 당연히 식사는 못 했고, 화장실은 2번밖에 가지 못했다.

관리자들의 압박성 메시지가 올라오는 사내 메신저를 보고 있노라면, 없던 눈치가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필 월경을 하고 있던 터라 퇴근할 때 보니 의자에 생리혈이 조금 묻어있었다. 화장실을 자주 갈 수 없어, 생리대를 제때 갈지 못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그나마 검정색 바지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얼른 물티슈와 세정제로 흔적을 닦아냈다.

젖은 흔적을 말리며 의자를 내려보고 있으니 어느새 나의 입가에선 실소가 흘렸다. 때마침 콜센터 의자의 시트가 빨간색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우스웠다.

얼핏 보면 힘들기만 한 것 같은 콜센터 업무지만, 혹한이 와도 절대로 식지 않을 훈훈한 사연도 자리한다. 고객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그들의 고충에 적절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때, 그로 인해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는 나는 꽤나 풍성한 업무 성취감을 느낀다.

다행인 것은 언제나 수고하신다며, 무한한 응원을 보내주시는 고객이 더 많다는 것이다. 입사 초반에는 한 고객님이 갑자기 바뀐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시 신입이세요? 아, 그러시구나. 아까 짜증내서 미안합니다. 힘내세요. 처음은 누구나 어렵더라고요. 나도 그랬어요."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손길로 따뜻하게 내 처진 어깨를 주물러 주는 느낌이 들었다. 아, 누군가의 힘내라는 말이 이렇게 소중할 때가 있구나 싶어서 그날은 퇴근길에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콧잔등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라이더의 실수로 다른 음식을 받으신 고객님이 나한테 화내려고 하자, 옆에서 급하게 말리던 소리를 들었다. 앳된 목소리였지만, 차분하고 강단이 있었다.

"아빠, 상담원님은 잘못이 없잖아. 화내지 마."

이렇듯 세상은 생각보다 잔인했지만, 예상외로 따뜻하다. 그 덕분에 나에겐 전부터 믿고 있는 신념이 있다. 다정한 존재들이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작은 다정, 퇴근길의 위로 고된 감정노동의 하루를 마치고 오르는 퇴근길 버스. "안녕하세요"라는 나의 작은 인사에 버스 기사님이 따뜻한 미소로 화답해주십니다. 이 작은 '다정'의 교환이, 하루 동안 쌓인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지워주는 위로가 됩니다
▲작은 다정, 퇴근길의 위로 고된 감정노동의 하루를 마치고 오르는 퇴근길 버스. "안녕하세요"라는 나의 작은 인사에 버스 기사님이 따뜻한 미소로 화답해주십니다. 이 작은 '다정'의 교환이, 하루 동안 쌓인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지워주는 위로가 됩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콜센터 일을 시작하며 일부러 좋은 습관 하나를 만들었다. 퇴근길 버스에 올라서 버스 기사님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는 건네는 것. 내 인사에 화답하시는 기사님들은 열 명에 세 명 정도지만,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인사가 아니기에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나의 작은 '다정'이 누군가에게는 권태와 상실을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는 구간이 되길 바랄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나를 위로해주던 콜센터 선배님들. 그 흔한 텃세 하나 없이 나를 오롯이 일원으로 받아준 팀 동료들. 오늘도 나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는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수화기 너머로 나를 위로하고 응원해주시는 고객님들. 모두가 한없이 다정한 존재들이다. 또한 나를 '살맛 나게' 하는 존재들.

나는 오늘도 다정의 힘을 믿는다. 한계와 불합리 속에서도 경험의 가치를 찾는 나 자신에게 친절한 나를, 지금도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살리고 있을 아름다운 타인들을, 또한 알게 모르게 다정의 온도를 올리고 있는 건강한 사회와 세상을, 나는 여전히 믿고 싶다.

#부산노동권익센터 #감정노동자 #비정규노동자 #감정비정규노동수기공모전 #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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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노동권익센터는 일하는 부산시민의 사회경제적 권리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 부산광역시에서 설립하고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가 수탁 운영하는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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