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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편집

[썼으면 고쳐야지] 정확하고 철저하게

등록 2026.05.23 19:11수정 2026.05.2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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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가 쓴 글을 매일 고치고 다듬는 사람의 이야기. 인공지능(AI)이 쓰고 고치는 시대에, 인간이 쓰고 고치는 마음을 찬찬히 담아 봅니다.[기자말]
'지문 같은 목소리'라고 불리는 가수들이 있다. 다른 사람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이적의 목소리 같은.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편집한 글에도 나만의 지문 같은 게 있을까? 내가 편집한 글도 티가 날까? 그게 뭘까? 나만의 편집 원칙 같은 것도 지문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래서 한번 따져봤다. 편집할 때 내가 지키려고 애쓰는 것들에 대해.

가장 기본은 독자. 독자를 우선 고려한다. 제목에는 반드시 후킹 요소가 있어야 하고 궁금해야 하며 재미도 있으면 좋겠다. 부제는 원고의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게 요약, 정리하며 중제는 글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일정한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여기서 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문장의 길이일 수도 있고 문단과 문단 사이의 적절한 간격이다. 제목과 부제, 중제에서 되도록 같은 내용은 피한다.


이런 형식적인 원칙 외에 가장 중요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원고를 정확히 이해했는가다. 추측하지 않고 넘겨짚지 않는 것. 의심이 드는 게 있다면 확인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편집의 중요한 원칙이다(편집이라고 썼지만, 나 자신의 글을 퇴고할 때 역시 마친가지다). 이 원칙들을 놓치는 날엔 일을 다 해놓고도 찜찜함이 남는다. 언제, 어디에서든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 나만 아는 찜찜함이다. 당장은 문제가 안 생긴다 해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런 기분을 가급적 남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일할 때 나에게 이런 원칙들이 있는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누구와 함께 일할 때 내 습관이 드러났다. 같은 글을 보아도 그냥 넘어 가는 내용이 있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경우는 내가 쓴 글이 아닌데 내 생각대로 고치다가 틀릴 수 있으니 안전하게 확인하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을 때다. 불안하기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편집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글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보고 있으면 좋다.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형태가 있어 만질 수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들리는 것도 아니니까. 반대로 엉성한 편집을 발견한 날이면 혼자 얼굴이 빨개지고 난리다. 그렇게 못나 보일 수가 없다. 글도, 나도.

글의 아름다움, 영화의 아름다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이미지. 오마이뉴스

영화 <어쩔수가없다> 개봉 즈음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박찬욱 감독이 한 말이 귀에 쏙 박힌 건, 감독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바로 내가 글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놀랍도록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날 함께 출연한 배우 이병헌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어떤 영화를 보든 맨 마지막에 끝나고 나면 정말 아름다웠다는 느낌이 공통적으로 드는 것 같다'고 했을 때, 박 감독이 말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게 보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제일 정확한 표현이 무엇이냐'에 있다고 생각해요. 이 인물의 감정이 이렇다. 이 장면의 내용이 이렇다. 그것을 제일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 뭔가. 그 정확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고 철저하다. 정확한 것을 하나 정하면 그것을 철저하게 추구한다. 거기서 아름다움이 나온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그런 것입니다." - 2025년 9월 24일 방영분

'정확하고 철저하다'라니. 아, 아... 나는 이 말을 듣자마자 그 문장을 사랑하게 될 것을 직감했다. 이 문장을 추앙하게 될 것이라고도. 그러나 나는 안다. 박 감독처럼 나는 '원하는 걸 정말 명확하고 섬세하게 연출'하는 사람도, '정확하고 예리한 디렉션'을 하는 사람도, '굉장히 노련한 형사 같은 느낌'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히려 그런 것들과는 좀 멀리 있는 사람에 가깝다는 것을.


능력은 그에 비해 한참 모자라지만 으흐흐흐 나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다. 현재 박 감독의 나이는 60대지만 나는 '아직' 그보다 열 살 이상 어린 40대다(으핫핫핫). 그렇다, 젊음이 무기다(라고 우길 수 있는 나이, 얼마 안 남았지만).

아직 현직에 있고(언제까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일의 태도는 내가 정할 수 있으니 내가 생각하는 이 아름다움을 계속 지켜나간다면 60세 이후의 나도 어쩌면 박 감독처럼 '정확하고 철저하게' 근처까지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낙관하련다. 그때까지는 나만 아는 그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만들어가야지. 그러니 함께 읽고 쓰는 이들이여, 힘을 내자. 아름다움을 위해.
#퇴고하는마음 #썼으면고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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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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